2006년 6월 25일 일요일

2006년 월드컵 한국팀과 한국에 대한 단상.

나는 축구 팬이 아니다.
오히려 많은 운동중에 축구만큼 싫어하는 운동이 없다고 말하는게 옳다.  
많은 사람들이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를 싫어한다는 우스개소리를 빌어보자면,
나는 "군대에서 축구했던 기억만 큼" 싫었던 것이 없다.
"전투 축구"
매주 2회씩. 그 시간은 내게 악몽이었다.
차라리 통신대 교환 근무를 서거나 방위가 사라진 주말엔 식당에서 밥 준비를 돕는것이 더 나을 정도였으니까.

다행이 운발은 좀 있어서, 롯데 자이언츠 광팬인 부대장이 새로 오고-고맙다 강릉 간첩단!-나도 제법 "짬밥"을 먹은 후로는
축구를 야구로 대체할 수 있었다.
이름하여 "전투 야구"의 시기.

역시 권력을 쥔자 세상의 문법을 바꾼다. 
그러나 그것도 그리 오래가진 못했다. 겨울엔 땅이 얼고, 낡은 장비들은 재미를 감하는 결정적 요인이었으니까. 아무래도 야구는 대중화에 결정적 한계가 있는 운동인 듯. 20세기 초기 YMCA 야구단은 마치 요즘 듀크에서 문제시되고 있는 라크로스 선수단 수준 아니었을까?

어찌 되었던 "사커-포비아"인 내가 이번 월드컵 만큼은 엄청난 시청률을 기록했다.
알아듣기 힘든 베트남 방송보다는 "조선중앙 통신"급 축구 중계가 더 나았으니까.

각설하고, 이번 월드컵에서 한국은 16강 진출에 실패했다.
본선진출이 목표였던 시기에 비하여 괄목할 만한 성장이지만, 어쨌든 실패는 실패다.

문제는 지고 나서 사라지지 않는 사람들의 아쉬움의 자리에 있다.
스위전에서 두번째 골이 오프 사이드였다는 이야긴데,
오프 사이드였으면 또 어쩔 것인가?
솔직히 이번 월드컵 내내 나는 한국팀이 잘하는 팀, 그러니까 실력있는 팀이라는 생각을 한번도 못해봤다.
베트남에 있어서 더더욱 자주 보게된 다른 나라의 경기 모습과 비교하자면,
한국은 스피드면서도 전술 면에서도, 개인기 면에서도 너무나도 딸리는 모습이었다.
국내에서 볼때는-솔직히 들을 때는-조금 하는 팀인 줄 알았더라니...

냉정하게 이야기 하자면 11대 10으로 경기한 토고전에서 공을 돌릴 때 한국팀의 실력은 이미 만방에 알려진 것이었다.
자신없음. 실력없음의 인정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승리에 대한 집착은 간혹 열등감에서 나오는 과잉이다.

판정시비도 그렇다. 사실 한국은 토고전과 프랑스전에서 적지 않은 "판정시비"를 발판으로 해서 그나마 16강의 불씨를 살렸던 것이다.
그리고 이제 스위스전에서 2대 0으로-2대 1도 아니고- 졌다.
재경기를 하자고 떼를 쓰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있나 보다.
재경기 해서 어쩌자는 말인가?

왜 실력 없음을,
아직 한국은 더 배워야 것이 많음을 인정하는 것을 주저하는 것일까?
아니 왜 운동경기를 즐기는데 아직도 서툰 것일까?

사라진 희망의 자리에 남아있는 얼룩마냥,
또한번 대중주의의 유령이 등장했다.

난데없이 황우석 사태가 얼룩들의 반복으로 떠오른다. 

실상 "황우석"은 우리도 복제기술을 가질 수 있다는 희망에 불과했다.
이번 월드컵은 우리도 이제 16강을 "당당히" 노려볼 만 하다는 것에 불과했다.

애초부터 대상과 분리되었던 욕망의 천박한 전화라고나 해야할까? 

그나저나,
이제 한국팀과 한국민이 기억해야할 것은 현저히 떨어진 선수들의 움직임과 조직화 되지 못 했던 전술, 여전히 풀지 못한 골결정력등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있다.
사회적 정신건강을 위해 4년 뒤에도 똑같은 좌절을 경험하고 싶지 않으면 말이다.

축구를 보기조차 이렇게 힘들다니!! "전투 축구" 관람이라도 이젠 그만 하자..!

p.s. 사족으로 또 한 사람의 전투축구 관객으로서 한마디 남겨보자면, 박주영은 아직 국내용인 듯 싶었다.
      스위스전에서 최대의 실수 기용인 듯.
       검증 안된 선수 이름값은 가끔 독이 된다.

       베트남에서 프랑스인 무리떼들과 함께 경기를 보던 날 그들의 광란속에서 파묻혀 나홀로 코리언이었던 기분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경험이었다.
     왜 받아먹는지도 모를 공짜 위로주만 엄청 얻어먹었다. 젠장! 그래도 공짜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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