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3월 31일 월요일

AIDS 백신이냐 치료제냐 그것이 문제?

비내리는 새벽길을 걸어 맥도날드 아침메뉴를 새벽 1시에 먹고 돌아왔다.
텅빈 도서관에 유난히도 귀를 거스르는 한국 학부 유학생들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또 이래저래 정신 못차린 "클릭질"을 하고 있는데, 눈에 띄는 기사가 하나있다.
정확히는 기사가 아니라 뉴욕타임즈의 독자투고란에 실린 글이었는데, AIDS 백신개발에 임박했다는 과거의 보도도 생각나고 빌 게이츠도 나서 연구지원을 독려하겠다는 것도 생각나는데다가, 이래저래 정치기사들에 짜증도 난 터라 클릭하고 들어가 봤더니 나름 흥미로운 내용이었다.

제목이 "Grim Outlook for an AIDS Vaccine" 이란 그 독자투고글(http://www.nytimes.com/2008/03/30/opinion/30sun3.html)은 최근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AIDS 백신 개발 포기 움직임에 대해 다루고 있었다. 1984년 미국에서 AIDS를 발병시키는 바이러스가 발견된 이래, 미국국립보건원의 재정적 지원을 받는 백신개발 연구가 지속되어 오고 있는데, 가장 유력한 백신 개발 후보였던 두개의 백신에 대한 작년 임상 실험 결과, 어처구니 없게도 백신을 맞은 사람이 더 AIDS에 감염될 위험이 높다는 결과가 나왔단다.
지난 2월 미국에서 열린 한 컨퍼런스에서, 노벨상을 수상한 생물학자, David Baltimore 는 AIDS 바이러스가 진화한 결과 사실상 백신을 통한 면역성 구축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이르렀음을 역설했다는데 그것도 본격적인 "백신개발 포기" 여론 형성에 불을 지르게 되었나 보다. 노벨상 수상자가 힘들겠다고 고백했다는데, 우리 "황우석박사"께서는 "YES I CAN"만을 외쳤으니, 적어도 정신자세면에서만 보자면 "안되면 되게하라" 코리안이 우세해 보이기도 한다.

AIDS "백신"이냐 "치료제"냐 하는 논쟁에 결부되어 있는 문제는, 단순한 "연구 개발비" 배정과 관련된 것만은 아니다. 임상실험을 통한 백신개발로 "질병을 퇴치"하겠다는데 방점을 찍는 과학주의와 고통받는 환자들을 살리고 봐야한다는 현실론도 충돌하고 있고, AIDS를  전염병으로 보는 관점과 윤리적인 질병으로 바라보는 관점도 어지럽게 섞여있다. 문제는 최근의 임상실험실패가 "백신개발 포기"의 주요한 "과학적 근거"로 제시되고 있다는 점이 다를 것이다.

대학입학 논술시험이나, 구술문답고사에 내보면 딱일 주제인 것 같은데,

이미 AIDS 치료제 개발은 어느정도 수준에 올라와 있고, 완치는 아니라도 "생명연장"의 꿈은 버리지 않아도 된다고 알고 있다. 다만 그것이 몇몇 제약회사의 폭리에 휘둘리고, "해독제"를 가진 자의 전제적인 "바이오 팔러틱스"를 가능하게 만드는 조건이 되어, 이른바 미국에서 부르는 "바이오 캐피털리즘"의 시대를 여는 기능을 하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제약회사의 입장에서는 분명, 일정기간 특허권을 보장 받고 시장을 독점할 수 있는 치료제 개발이 백신개발보다는 훨씬 더 "효율성"있는 투자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치료제는 개발 단계에서 부터 바로 투자자본을 회수할 가능성이 없지 않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백신개발이 만들어낼 경제적 효과도 적지는 않을 것 같다. "백신접종"을 필수적인 것으로 만드는 각국의 의료행정이 각국가에서 그 목록을 확대해 가고 있으니 말이다. 이젠 겨울이 되면 다들 "독감예방주사"를 맞는 세상 아니던가?

여전히 복잡한 문제인데, 독자투고의 글은 짧은 데다가 백신개발 포기론이 "패배주의적"이라는 "전투적 과학주의"에 호소하고 있어 나와 같은 비전문가는 판단을 유보할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AIDS 치료제 개발에 대한 세금 지원에 반대하는 보수적 기독교 단체가 있는 미국만 생각하고 있다가,
백신이냐 치료제냐의 문제를 접하고 나니  도통 생각이 잘 정리가 안된다.

확실한 것은 만약 미국의 국립보건원이 예산 삭감이나 개발 포기를 선언하게 된다면,
All or Nothing이 되기 쉬운 바이오 벤쳐 마켓은 엄청난 충격파가 일게 될 것이란 것이고,

어쩌면 그래서 누군가 초기 여론차단을 위해 "알바형" 독자투고를 했는지도 의심도 가고....

그나저나 대체 AIDS 때문에 인종말살까지 위협당하고 있는 아프리카는 어찌할 것이고,
AIDS가 바이러스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아낸지 20년이 훌쩍 넘었음에도
아직도 적절한 검사나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는 "숨어사는" 보균자들은 어떻게 할 것이란 말인가...


2008년 3월 29일 토요일

한총련의 몰락 ? 자주의 몰락?

한총련이 16년만에 의장 후보를 못 내는 바람에 그들만의 자랑 "의장 옹립식"이 무산되었다는 기사가 나왔다.

그런데 이건 또 무슨 소린가?

29일 한총련에 따르면 2008년 제16기 한총련 의장 선출을 위한 후보 등록기간인지난 15일까지 한총련 의장 후보로 출마하겠다는 뜻을 밝힌 대의원이 아무도 없어 올해 한총련 의장 선거가 무산됐다.

이는 지난 1993년 4월 한총련이 출범한 이래 16년 만에 처음이다.

한총련 관계자는 "올해 신임의장 후보로 나설 예정이었던 한 대학교 총학생회장이 가족의 만류로 출마를 포기하면서 후보등록기간에 아무도 후보로 등록하지 못했다"며 "한총련 출범 이후 처음으로 의장선거가 무산됐다"고 밝혔다.

(http://nuri.donga.com/nurinews/view.php?k_id=200803290250&m=2)

동아누린가하는 어처구니없는 웹사이트의 "속시원 뉴스" 코너에 올라온 이 뉴스는 뭔가 좀 어이가 없는데, 그 이유는 내가 갑자기 NL과 한총련을 "가재는 게편"인 듯 지지해서가 아니라, 기사 내용중 "가족의 만류로 출마를 포기하면서..."라는 변명때문이다.

정치적 노선은 논외로 하고, 아니 대학생이 그것도 적어도 한총련 의장 후보로 거론될 학생이라면, 한 학교의 총학생회장일테고, 그럼 3-4학년쯤은 (요즘은 5학년 6학년은 쉽지 않을 테니) 되었을 텐데, 도대체 NL이 그렇게 떠 받들던 "자주"는 개인의 삶에는 없단 말인가? 총학생회장은 나중에 취업이나 정계진출을 위해서 해 볼만 하지만, 한총련 의장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100이면 100 구속이고, 예전 처럼 "의장 구출 투쟁"같은 것이 있을리도 만무하니 별 소득 없단 이야기를 에둘러 하는 것이라 생각도 들지만..

어이가 없다. 결국 "가족들의 만류"로 한총련은 망해가는가 본데,
언젠가 조갑제가 "아이들의 돈줄을 틀어쥐라"고 보수적 부모들에게 선동을 했던 것이 한국적 상황에서는 역시 유효한 전략인가 보다.

"노선"이 달라서, "이념적으로 동의를 못해서" 혹은 정말 솔직하게 이명박 정권하에서 "구속의 공포 때문에"라고 말하는게 내가 보기엔 솔직해 보이고 그렇담 이해를 하겠는데, "가족의 만류"는 한국의 답답한 대학생 삶의 전체를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하다.

한국 만큼 자기 삶에 "자주적"이지 못 한 대학생들을 찾아 보는 것도 참으로 힘든 일이다.

부모가 대신 살아주는 인생들이 왜 그리도 많은가?
뭐, 정몽준이가 정치하고, 이재용이가 회장수업하는 세상이고,
술집에가서 다큰 아들 대신 몽둥이 질 하는 김승연이란 그룹 회장도 있는 사회니까...

Cattivo Maestro - Toni Negri

머리가 복잡할 때, 머리를 밀어버릴 수는 없으니,
컴퓨터를 갈아 엎어 버리는 것도 한 해결책이다.

산뜻하게 리셋된 화면이 "날 채워줘" 라고 유혹하는데,
이번엔 "천천히"라고 답 할 참이다.

컴퓨터를 갈아 엎고 나니 한가지 오래된 문제가 해결 되었다.
곰플레이어 대신 내가 개발 초창기 부터 써오던 KMPlayer 를 대신 설치했는데 (어언 1년만에 정식 업데이트도 되었다), 곰플레이어에서는 재생이 안되던 Antonio Negri 에 관한 다큐멘터리 A Revolt That Never Ends 가 플레이가 된다!

이 다큐멘터리는 OGG 포멧으로 BitTorrent 를 통해 유통되고 있는데, 정품 DVD를 구할 길이 없는 상황에서 이소스가 그나마 유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나마도 포르노 그라피나 상업영화 파일이 아니라서 그런지 소스가 없어 다운 받는데 몇날 며칠을 온라인으로 기다려야 했던 기억이 있다.

문제는 그렇게 어렵게 구한 동영상이 정작 곰플레이어에서는 재생이 안되고 에러 메시지만 표시하니 그동안 전혀 볼 수가 없었다. 분명 처음 다운 받았을 때 다른 플레이어로 재생이 되었던 기억이 또렸한데, 별의 별 코덱을 다 설치해 봐도 재생이 안되니 하드드라이브 한구석에 처박아 놓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역시 오픈 소스로 개발 중인 KMPlayer 가 해답이었다.
Ubuntu 가 조금만 더 힘내면 이젠 다음에 컴퓨터를 내 머리 대신 밀어버릴 땐 리눅스로 깔 계획이다.

혹시나 인터넷에서 동영상을 구한 이들을 위해 재생 불가에 대한 내 경험을 알려주자면,
잘은 모르겠으나 곰플레이어를 제거하고 KMplayer 를 설치한 경우에도 똑같이 에러가 났다.
아마도 곰플레이가 설치되면서 시스템 레지스트리를 변화 시켜버리거나,
동영상 코덱의 일부와 재생기 인식구조를 "근본적으로" 꼬이게 만들어 버리는 것 같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네그리에 대한 다큐멘터리 A revolt that never ends


이 동영상을 구한 건 대학원 입학 첫해에 청강(수강이 아니라)했던 Contemporary Italian Thoughts 의 강의에서Michael Hardt 가 소개한 후 였다. 당나귀 밖에 써본 적이 없던 내가 처음으로 BitTorrent 를 써보게 된 계기이기도 했다. "구하라! 얻을 것이다!"

벌써 까마득한 일이 되어버렸는데, 어쨌든 마이클도 동영상을 인터넷에서 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친절히 알려줬던 기억이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오프닝의 한장면: 반세계화 시위장에서 나란히 행진하고 있는 "토니"와 "마이클"-저 점퍼는 요즘도 입고 다니던데..^^


네그리에 대한 그리고 이탈리아의 아우토노미아 운동에 대한 다큐로써도 특별한 가치가 있는 작품이지만, 개인적으로는 네그리를 무기징역에 처하면서 이탈리아 법원과 언론이 네그리에게 주었던 작위 "Cattivo Maestro" 에 대한 이야기가 큰 의미로 다가왔었다. 그리고 이 작품만큼 내가 왜 "까띠보 마에스트로"란 필명을 주로 쓰게 되었는지를 설명할 소스는 아직까지 못 찾아 봤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Cattivo Meastro 란 죄명으로 죽었던 최초의 철학자는 소크라테스였다. 한국에도 수많은 "까띠보 마에스트로"가 있었다.
네그리는 이탈리아 기독교 민주당수에 대한 납치 살해 교사혐의를 받았었는데,

대운하를 반대한다고 교수 사찰을 시작한 한국사회니....
70년대 이탈리아 혹은 80년대 한국으로의 회기가 임박한 세상인 것일까?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네그리의 "거부 정치 Politics of Refusal" 에 대한 개인사적 회고.

내가 어렸을 적 농부였던 할아버지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백킬로를 짊어지는데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한지 모를 것이야."
그렇게 무거운 자루들을 당신 어깨에 짊어 지고  하루종일 일하는 것은,
당신의 허리를 부러트리고,
당신의 삶을 망가트립니다.

이러한 노동에 대한 그 (할아버지)의 거부가 그의 자식들을 학교에 보내게 하고,
그 노동을 변화시켰습니다.
다른 관점에서 보면, 만약 사람들이 (주어진 바대로) 일하기를 거부한다면 자본주의적 통제는 지속될 수 없습니다.

2008년 3월 28일 금요일

총 맞고 죽지 않기 위한 지혜

어제 하루종일 집에서 뒹굴뒹굴 하다가, 늦은 저녁을 먹으러 하우스메이트와 함께 동네 베트남 음식점에 갔다.
 
퍼와 고이 꾸언을 먹으면서, 한국의 늘어난 베트남 음식점에서는 퍼를 파는 게 아니라 말그대로 "쌀 국수"만 파는 것 같다고 의견의 일치를 보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어차피 가는 길이니 장이나 보고 가자고 전에 한번 언급한 바 있는 한국 마트에 들렀다.
 
시간이 이미 9시쯤 되어 혹시나 문을 닫지 않았을 까 했는데, 용케도 막 문을 닫으려고 채비중이었던 마트에 들어갈 수 있었다. "다행"이라고 서로 격려아닌 격려를 하고 장보기를 시작했다.
한데 이미 고기는 떨어지고, 몇몇 냉동식품은 덮개로 냉장고가 덮어져 있어서, 나중에 다시 오기로 하고 가능한 것 몇가지만 카트에 챙겨 넣고 있는데, 어디선가 고성이 들려왔다.

가게 정리중이니 서로 작업 지시를 하는 것이겠지 하고 쇼핑을 계속했다. 덮개를 열어 CJ 토막 꽁치를 끄집어내는 데 성공한 후 막 계산대로 향해서 계산을 시작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마트 한쪽 통로에서 한국 아저씨와 흑인이 서로를 밀치며 튀어나왔다.
고성을 서로 주고 받던가 싶더니 가게를 정리하던 다른 히스패닉 종업원들도 그쪽으로 달려들어 일순간 아수라장이 되었다.

계산대의 히스패닉 아가씨도 상황이 어찌 되어가고 있는지 모르는듯 멍하니 계산을 멈추고, 911에 전화를 해야되는 것 아닌가하고 되려 우리에 물었고, 계산대 앞의 두 동양계 남자도 어정쩡하게 "싸움 구경"을 하고 있었다.
싸움은 좀 더 격해지는 것 같았다. 반항하는 흑인 한명을 네 다섯명의 남자들이 둘러싸고 완력으로 제압을 하려할 수록 그 흑인도 거칠게 반항을 했다. 그 싸움을 이끌고 있던 한국 아저씨가 갑자기 한국 말로 "개새끼가..." 하더니 공포의 팔꿈치 찍기로 바닥에 문제의 흑인을 "때려 눕히는데" 성공했다.
종업원들도 다 그 바닥에 눌려있는 흑인 주위로 몰려들어서, 모든 상황은 그렇게 정리되는가 싶었다.
"자 이제 카드 긁고 집에 가자!"

다시 계산에 집중하려던 찰라, 갑자기 순식간에 흑인을 바닥에 짖누르고 있던 사람들이 모두 사방 팔방으로 손살같이 도망 치는 것 아닌가?
누군가 "총"이라고 말했고, 멀찌감치 카운터에서 카드 긁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우리는 "얼음" 상태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 서있었다. 한순간에 전세와 상황은 역전이 되었고, 총격이 있을 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찰라적으로 모두 "정신을 놓고" 있는 사이, 그 흑인은 감시 카메라에 노출 될 것을 우려한 듯 그 틈에도 얼굴을 겉옷으로 가리고 재빨리 달려 가게를 빠져나갔다. 그틈에도 멍하게 서있는 나와 눈 맞춰주는 것은 잊지 않고...
경찰이 출동할 때까지 그 누구도 가게 안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 지도 모를 것이었고, 너무나 순식간에 일어난 일들을 어떻게 정리할 언어들 마저 잃어버린 듯 했다.
"집에 가자! 도서관에 반납할 책도 있다!"가 그 순간 내게 떠오른 생각의 전부였던 것 같다.
경찰이 도주용의자의 인상착의를 감시카메라 정보를 통해 확인하는 사이,
한동안 20 몇달러를 표시하고 "발광"하고 있던 카운터 계산기는 그제서야
"Approved" 메시지를 내보이고 우릴 계산대에서 해방 시켜줬다.

불과 몇시간 전의 일이지만, 꿈을 꾼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모든 것이 삽시간에 일어나고 또 나는 일상으로 돌아와 도서관에 앉아 있다. 그리고 이제서야 수많은 가정법들이 머리속에 떠오른다.

그가 총격을 했었다면 가게 내의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가게 내의 단 두명 뿐인 고객이었던 나와 하우스 메이트는 어떻게 되었을까?
사실 내 스스로에게 놀란 것은 그 순간 너무나도 영화적인 현실에 취해 별다른 "공포"를 느껴볼 틈도 없었다는 데 있었다.
911에 전화를 해야겠다고 생각이 들었을 때, 이 상황을 어찌 리포트 해야하나하는 당황스러움이 조금 일어났을 뿐, 내가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정작 "죽을 지도 모를 상황"에서는 그다지 강렬하게 일어나지  않았던 것 같다. 
경찰이 도착하고 다른 한명의 히스패닉 종업원 아주머니가 그제서야  긴장이 풀린 듯 눈물을 터트릴 때서야, 나는 "공포의 시간"이 지나갔음을 느낄 따름이었다.

미국에서의 총기사용 범죄는 일상적 위험이다. "총 가질 수 있는 자"는 그들 모두이고 그것을 "사용한 자"만이 상황적으로 등장할 뿐이다. 결국 누구나 총질을 할지도 모를 상황속에서 사는 것이다. 그러므로 되도록 "눈깔고, 언성 안높이고" 성질 죽이며 살아가며 "누군가"와 마찰을 피하는 것이 그나마 이 총기 사용 범죄의 희생양이 되는 것을 피하는 방법으로 이야기될 뿐이다.
이른바 자위권을 위해서 월마트에서 총하나를 구입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총기 소유 옹호자들은 떠들어 대지만, 그나마도 미국 시민권자들이나 최소 영주권자들이나 가능한 이야기고, 유학생이나 여행자들은 그러니까 그저 "총든 무리"들 속에서 얌전히 죽어지내다 자국으로 돌아가는 방법밖에는 없다.

그래서 말해지길, 일반적으로 위험한 구역엔 얼씬도 하지 마라고 강조들 하는데, 대개 이민자들의 식료품 점이나 여러 편의시설이 값싼 임대료를 내는 지역에 몰려 있으니, 먹고 살기 위해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누가 장보다가 소매치기도 아니고, 총맞아 죽을거라고 생각을 하겠냐마는 그런게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데가 미국이다. "자유의 나라" 미국엔 "손쉽게 죽일 능력"이 법적으로 보장되어 있으니 결국 죽지 않고 살고 있다는데 감사하며 일요일날 교회에 나가는 것이 생을 축복하는 한 방법이겠구나하고 이해도 된다.

적어도 총 맞고 죽지 않기 위해, 옷속에, 혹은 차안에 총가지고 다니는 이들과 함께 사는 유학생들이 배워야 할 것은 절대 도망가는 사람 쫒아가지 말아야 하고, 남의 싸움에 끼어들지 말아야 하고, 아무리 우리편 쪽수가 많다고 해서 "팔꿈치 찍기"같은 기술을 펼쳐보여선 말아야한다는 것이란 생각이 드니 씁쓸하다. 

그나마 조금이라도 총 맞을 가능성을 낮추고 싶거든, 문닫기 직전의 가게에 들어서서 용케 안 늦고 왔다고 웃음 지을 것이 아니라, 계산대에서 기다려야할 시간이 길어지더라도 남들 장볼때 함께 보는 것이 그나마 생존의 지혜가 아닐까 싶다. 시간 조금 기름 조금 아끼려다가 몸에 총구멍 나는 것은 너무 어처구니 없으니 말이다.

"공포의 훈육" 그것이 미국 사회가 매일 같이 일상을 "전장터"로 만들면서 사람들에게 심고 싶은 어떤 생의 논리인지도 모른다.

2008년 3월 25일 화요일

"도시 공간에 꽃을 던져라" - 영국의 벽화 예술가 Banksy

사용자 삽입 이미지

Banksy 의 작품: 꽃다발 던지기


우연히 외국 어느 블로그에 갔다가 발견한 Banksy 의 작품이다.
과거 한국 대학에서 유행하던 여러 은어들이 있었는데, 그중에 하나로 화염병을 "꽃병" 혹은 "꽃"이라고 부르던게 있다. 쇠파이프를 "파이"라고 부르기도 했었다. 그러니까 "꽃을 든 남자"는 그 시절 김혜수를 만나게 될 안정환이나 현빈이 아니라 백골단에 잡혀 노태우 시절에 제정된 "화염병 관련 처벌에 관한 법률"에 의해 구속될 운명이었던 셈이다. 러시아에서 최초에 제작된 "몰라토브 칵테일"이 "꽃"으로 불리운 한국적 정치상황이 있었던 것인데, 그것을 그림으로 표현한 작품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흥미로웠다.
이병박정부가 "체포조"를 부활시킨다니 다시 거리에 "꽃"을 든 시위대가 등장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는 세상 때문인가?!!

Banksky에 대해서는 여러 블로거들이 이미 소개를 한 것 같으니 특별히 더할 것은 없을 것도 같은데, 그의 홈페이지 (www.banksy.co.uk)와 영문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그는 영국의 Bristol 에서 활동을 시작한 벽화 예술가로 알려져 있다. 그에 관한 정확한 신상정보는 아직 까지 알려져 있지 않다. 적어도 아직까지 Banksy 는 그러니까 이름없는 벽화 예술가인 셈이다.
신비주의 전략이라고 시니컬하게 볼 수도 있겠지만,
도시내의 건물 외벽에 "낙서"를 해대는 사람들이 "사적소유물" 혹은 "공공기물" 훼손이란 법적 잣대에 의해 최소 벌금형은 받게 되어 있는 것이 일반적이고 보면, 그의 익명성은 얼마간 "직업적"으로 불가피한 것으로 보인다.
그의 신상 정보가 알려지는 순간 그는 더이상 "낙서"계에 머무를 수 없게 될테고,
현재까지는 "공공예술"로 남겨져 있는 그의 작품들(이미 몇몇은 소더비 경매에 나오기도 했다고)이 "공식적인 예술가"에 준하는 대접을 받아야 할 것이니 말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흉물스러운 벽면을 변화시켜내는 그의 상상력이 대단해 보인다.


공공예술로서 벽화운동을 이끌어낸 대표적 사람으로는 디에고 리베라(나중에 멕시코 여행기 정리할 때 다시한번 정리할 수 있을 듯)를 빼놓을 수 없겠지만, 그는 예술가였지 "낙서쟁이"는 아니었다. 그는 대개 건물의 내벽이나 성당의 천장에 그림을 그리던 전통위에 서있기도 했다.

반면 오늘날 그래피티 예술가들은 세계 곳곳의 도시들에서 자라난 새로운 세대의 예술가들이다. 그들은 그들이 낙서할 공간을 요구하지 않고, 그들 스스로 그 공간을 "차지"한다. 대개의 경우 이러한 행위는 "반달리스트"라는 낙인이 찍히고, 붙잡히면 경찰서행을 면할수 없기에 쫒고 쫒기는 이른바 "도망자" 혹은 "도시 게릴라" 예술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중 Banksy 처럼(유투브에 그의 대중적 명성과 인기를 알려주는 많은 클립이 올라와 있다), "낙서예술"만이 가질 수 있는 독특한 상상력과 메시지는 삭막해진 도시공간 자체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고 "공공예술"의 가치를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게 해주는 기회를 제공해 주는 것 같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Banksy 의 작품들을 "반달리스트"라고 철거했던 시의회가 그 "작품성"을 인정하고 "벽화보수"에 나서게 되었다는 신문기사와 Banksy 의 낙서작품.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렇다고 모든 작품이 다 그 가치를 인정받는 것은 아니다. 벽화와 낙서가 가지는 정치적 메시지는 "공간의 지배자"들을 불편하게 하고, 그들에 의해 "파괴"되기 쉽상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벽을 뜯어낸 노력에 경이를 표하고 싶다. 영국 맹인 연합회의 Worship(이걸 뭐로 번역해야 하나?) 거리 표지판 근처에 그린 Banksy 특유의 소재인 "생쥐" 작품.  나중에 심지어 그 표지판도 제거해 버린듯.

Banksy는 홈페이지에 게시한 한 벽화작품에서 그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생쥐" 캐릭터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런던에서는 당신에 대해서 떠들고 있는 어떤이와 20 feet 이상 떨어져 있을 수 없다. 당신은 "쥐새끼"와 20 feet 이상 떨어져 있지 않다." - Banksy 홈페이지 "Rat Fact"


사용자 삽입 이미지


Banksy 홈페이지에 올라온 Observer 의 신문 기사에 따르면, Banksy 가 "어린이 병원" 근처의 벽에 그린 작품에 대해 논란이 일고 있다고 한다. 기사 내용중 흥미로운 것은 이 그림이 "말하고자 하는 바"에 대한 언급은 없이, 한 퇴역군인의 입을 빌어 총을 든 군인이 총을 제대로 들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 Banksy 가 아마추어 일 뿐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증거라고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모르시는 말씀. 그렇게 잘 못 그려진 그림이 나중에 경매에서는 훨씬 더 비싸게 거래되기도 하지요."

Banksy 는 최근 반전에 관한 많은 벽화들을 그려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8년 3월 23일 일요일

NCAA 농구 유망주들의 산실 "McDonald's All-American Team"

공부가 하기 싫으니 별 짓을 다하나도 싶은데,
뉴욕타임즈를 살펴보다가 스포츠 섹션에서 듀크의 충격적 패배에 대한 기사를 읽었다.
부잣집이 망하는 꼴은 역시 호사가들의 더없는 먹잇감임에 틀림 없어 보였는데,
대뜸 기사 첫머리에, 이런 구절이 있었다.

"마운터니어 (웨스트 버지니아 팀 이름)가 8명의 McDonald's All-Americans을 가진 팀을 무찔렀다는 이야기를 들은, 알렉잰더(최고 득점)는 깜짝 놀란 듯 했다....토요일 경기의 거의 모든 블루 데블(듀크 팀 이름) 선수들은 고등학교 All-American이었다. 마운터니어는 한명도 없었다."

대충 감으론 듀크선수들이 고등학교 유망주로 구성된 반면 웨스트 버지니아는 "무명의" 선수들이 주축이었다는 것은 알겠는데 도대체 맥도날드의 올 어메리칸은 무엇일까 하고 찾아 보니 이게 1977년 이래 미국 대학농구의 전력을 점치는 바로미터로 기능해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미국 아이들을 "슈퍼사이즈"로 만들어 온 맥도날드가 왜 미식축구도 아닌 농구에 관심을 가졌을까 궁금할 법도 한데, 매출과 명성을 한꺼번에 "슈퍼사이즈"로 만드는데는 유효한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NCAA 대학농구는 뭔가 "지성있는" 스포츠맨 (B학점이 안되던가 하면 그해 경기 출전이 금지된다)이란 이미지가 강력하니까.
이유야 어떻든 확실한 것은 이 프로모션 덕택에 보다 많은 아이들이 맥도날드에 장난감 받으러 가자고 부모를 졸라대며 비만과 당뇨병의 미래를 만들어갈지도 모른다는 것일 테다.

각설하고, 이 McDonald's All-American Team 은 매년 미국 고등학교 농구선수중에 가장 뛰어난 선수들을 한해의 고교리그가 끝나는 시점에 선발하여 구성된다. 이른바 전미 고교 농구 올스타 팀이라고 불러도 될 만 하다. 당연 NBA와 NCAA의 농구 스카우터들의 "모시기 경쟁"이 펼쳐지는데, 이 맥도날드 올 어메리칸 팀에 선발된 유망주들이 이 미국 농구사에 이름을 남기는 선수들이 되었던 것은 우연이 아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McDonald's All-American 공식 사이트의 "동창생" 소개 페이지


이 팀을 거쳐간 역대 선수들로는 Gerald Wallace, Baron Davis, Kevin Durant, Kobe Bryant, Michael Jordan, Shaquille O'Neal, Chris Webber, Magic Johnson, Grant Hill, Paul Pierce, LeBron James, Carmelo Anthony, Kevin Garnett, Amare Stoudemire, Jason Kidd, Dwight Howard (위키피디아에서 복사)가 있단다.
나는 역시 급작스런 농구 팬이어서 마이클 조던, 샤킬 오닐, 코비 브라언트, 매직 존슨 정도 밖에 모르겠는데, 그나마 내가 아는 NBA스타가 다 이 맥도날드 올 어메리칸을 거쳐갔다는 사실이 일단 이 프로모션의 위력을 감지하게 한다.

재밌는 사실은 1977년 처음 맥도날드 올 어메리칸 선정이 시작된 이후로 "All-American"이 한명도 없는 팀이 NCAA 리그 우승을 차지한 것은 단 두차례 (1978년 켄터키, 2002년 메릴랜드) 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공포의 외인구단"은 근 30년동안 두번밖에 미국 대학 농구사에 등장하지 못 한 것이다.

"All-American"에 선정된 고교 유망주들도 자신의 "보다 나은" 미래를 보장 받기 위해서는 역대 NCAA 전력이 화려한 대학으로 가길 선호하게 되고, 유명한 코치가 있는 팀으로 가길 원하게 되니 NCAA 농구 리그의 "빈익빈 부익부"의 구조는 쉽게 전복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하지만 듀크를 "무찌른" 웨스트 버지니아의 사례에서 보듯 "외인구단"의 돌풍은 항상 NCAA 전국 토너먼트에 팬들을 불러 모으는 "짜릿함"과 "경제성"을 가져오기에 역설적이지만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다. 따라서 이른바 Sweet Sixteen 이라고 불리우는 8강에 오른 무명의 팀에 언론의 집중 조명이 시작된다.

올해 McDonald's All American 은 이미 선정되었다. 고등학교가 한두개가 아니다 보니 동부와 서부로 나누어 뽑아 이른바 "올스타전"을 치루는 모양이다. 각 고교 유망주의 지원 대학정보도 벌써 나와있는데, 살펴보니 역시 올해의 강력한 우승후보 UNC Chapel Hill 의 Tar Heel와 UCLA를 지원한 선수들이 많다. 듀크는 겨우 한명의 선수를 확보하는데 그친 듯. 하긴 8명 가지고도 8강에 못 올라갔으니.......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UNC 가 세명으로 가장 많고, UCLA 와 Ohio 가 두명씩. 듀크(1)와 웨이크 포레스트(1)까지 합치면 이동네(1시간 이내거리의 대학들)에서 총 24명중에 약 5분의 1을 데려왔고, 버지니아 조지아 워싱턴 DC까지 합치면  인접 3개주에서 약 3분 1의 유망주를 차지한 셈이다.

보통 NBA로 가고자 하는 선수들이 대학 2,3 학년때 "승부"를 보고 학교 중퇴 후 NBA Draft 에 뛰어드는 것이 이 유망주들의 일반적 "라이프 사이클"임을 생각하면, 이 전력 보강은 2010-2011년에 절정에 다다를 것 같다.

한국의 경우 "청소년 대표팀"으로 주로 유망주들을 국가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보면, 미국의 맥도날드가 "선점한" 이 독특한 "All-American" 팀 선발권은 역시 이게 신자유주의의 본산 미국이라고 밖에 할 말이 없는 것 같다.

맥도날드로 나를 이끈 뉴욕타임즈의 기사는 이렇게 끝맺음을 하고 있었다.

"리포터가 떠나려 할 때, 후보선수 Cam Toroughman 은 듀크의 포인트 가드 Greg Paulus (주- 2005년 McDonald's All-American)가 여덟명의 McDonald's All-American중에 한명인지 아닌지 물었다. 그렇다고 하자, Toroughman이 말했다: 말도 안돼! 농담이지요?

농담 아니다. 그리고, 대학농구의 오프시즌의 남은 기간동안, Toroughman같은 무명선수들은 한때-막강했던 듀크를 놀림감으로 삼을 것이다."


** 추가 **

급하게 쓰다 보니 DUKE 농구팀 역사의 자랑 Grant Hill 이 McDonald's All American 이었다는 사실을 빠뜨렸다. 그 덕택에 DUKE는 1990년대 2년 연속 NCAA 참피온 쉽을 거머쥐는 학교가 되었고, 말 그대로 "전국적 명성"을 얻게 되었다. 한가지 Grant Hill 에 관련해서 재밌는 개인사는, Grant Hill 이 맥도날드 올 어매리칸에 뽑히고 난 후, 그의 어머니는 Georgetown 을 아버지는 UNC Chapel Hill 에 가길 원했는데, 그 두 의견 사이에서 "중립적인" 입장을 가지던 Grant Hill 이 택한 것이 바로 Duke 대학이었다고 한다. 정확히 절반은 아니지만, 어쨌든 듀크가 조지 타운과 UNC의 사이에 있는 것은 맞다. ^^

2008년 3월 21일 금요일

"3월의 광란" NCAA 농구 토너먼트

사용자 삽입 이미지

NCAA 3월 25일자 Bracket: Sweet Sixteen 결정!



오늘 부터 미국 전역의 대학들이 이른바 3월의 광란( March Maddness ) 라고 불리우는 NCAA 남자 농구 토너먼트에 들어간다. 미전역의 리그 예선을 통과한 64개 대학이 경기를 펼쳐 최종 승자를 가리기 때문에 이때만 되면, 미국의 대학에서는 교수 학생 할 것 없이 예상 대진표를 서로 교환하고 내기 돈을 건다. 모든 언론사도 자체 bracket 페이지를 만들어 경품을 걸거나 "작성 팁"을 제공하고, 방송에서는 심지어 통계학자, 수학자들이 참여하는 승률 예측 논의까지 펼쳐진다.

NCAA의 가장 강력한 팀들이 모인 지구 예선은 ACC (대서양 리그)로 알려져 있고, 이른바 전통의 강자들로는 마이클 조던이 다녔던 UNC, 그곳에서 30분도 안떨어져 있는 DUKE, 그리고 캘리포니아의 UCLA등을 뽑는데 대체로 동의한다. 한해의 대학 스포츠 "농사"를 가름하는 이 "광란"은 대학스포츠 특유의 "의외의 변수"가 항상 등장하기 때문에, 일부에서는 NBA보다 더 흥미진진하다고들 하는데, 지구 1위를 했던 팀이 NCAA 본선 에서는 어처구니 없이 패배하는 일도 많고 "듣도 보도 못한" 대학의 팀들이 선전을 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작년이었던가? 제 작년이었던가 리그 예선 전승을 구가하던 DUKE가 어이없이 패배함으로써 학교 전체가 허탈함으로 가득 찼던 적도 있다. DUKE 신입생들의 상당수는 이 농구 때문에 대학을 선택했다고 자신있게 말하기도 하는데, 가을 부터 시즌 티켓을 얻기 위해 몇날 며칠을 텐트치며 밤을 지새우기도 하고, 라이벌 UNC와의 경기가 있는 날이면 동네 자체가 들썩거리고, 경기에서 승리하면 나무로 만든 벤치를 불태우는 의식을 치루기도 한다(매년 소방서와 실갱이를 벌이지만 이때문에 방송중계헬기가 경기 후 항상 학교에 뜬다). 어느 학부생 말로는 이 농구와 관련된 듀크의 "광란"이 자신들이 다른 사립대학교 애들 보다 "쿨"하다는 증표라나 뭐라나...
어떻든 대학 농구와 관련된 이 "3월의 광란"은 한해를 정리하는 봄학기말과 맞물려 과히 미국 대학만의 독특한 의례라고 말해도 될 듯 싶다.

올해의 NCAA 토너먼트를 한층 더 흥미롭게 만드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올해 미국 대선에 예비 후보로 뛰고 있는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Bracket 을 공식적으로 내놓았다는 점이다. 거의 대부분의 신문들이 이 Bracket 를 통해 또 각 후보자들의 정치적 성향과 미래 예측능력을 평가하고 있다. 오바마는 이미 자신이 직접 사인한 Bracket을 공개했고, 맥케인은 경기 시작과 더불어 내놓을 것이라고 예고하고 있다. 젊은 유권자들에게 어필하기 위한 더 없이 좋은 소재로 이용하고 있는 셈인데, 재밌는 것은 민주당과 오바마와 공화당 맥케인(공식 Bracket 은 아직 안나왔지만) 모두 UNC 채플힐을 최종 우승 대학으로 뽑았다는 것이다.

올해의 전력상 ACC의 챔피온쉽을 거머쥔 UNC가 NCAA도 우승할 것이라고 예상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예측이 아니다. 한데도 NCAA 매니아들에겐 두 후보의 "예측능력"을 벌써 부터 가쉽거리로 분석하고 있다. 우승은 그렇다 치더라도 32강 부터 Bracket 의 정확도는 측정되기 시작되니 말이다. 이 내용을 보도한 CNN의 간판 앵커 Wolf Blitzer 의 Bracket은 두후보와는 달리 "의외의 변수"에 주목해, Tennesse 와 DUKE가 결승전에서 맞붙어 Tennesse 가 우승할 것이라는 나름의 예측을 선보였다. 그의 논리에 따르면 두 학교가 미국 최고의 코치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는데, 미국 정치에서 "Strong Leader"라는 항목의 여론조사가 이른바 "본선경쟁력"을 가름하는데 가장 결정적인 것 처럼, 대학 농구도 "강력하고 뛰어난" 코치에 주목한 것 같다. 결과는 두고 볼 일이다. 사실 이번 시즌 DUKE는 역대 최악의 전력이라고 평가 받고 있는 중이라 16강이나 정말 잘해서 4강만 가도 성공한 것이라는 학내 평가가 자자한 터라, 얼마간의 "운"이 없다면 결승까지 가기란 어려울 듯 하다.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UNC에 허무하게 무너진 전력도 있고, ACC 토너먼트 4강에서는 싸우스 캐롤라이나의 복병, Clemson 에 또 처참한 패배를 한 터이다.

농구팬이 아닌 나마저 NCAA에 빠져드는 것을 보면, 미국 사회에서 NCAA 토너먼트가 가지는 "재미"와 "광란"은 쉽사리 비켜가기가 쉽지 않은 것 같다. 사실 대학 총장 보다 더 연봉을 많이 받는 것으로 알려진 Coach K 같은 사람이 있는 DUKE에서, 대학 스포츠에 천문학적인 예산을 퍼붓는 요즘의 미국 대학들의 풍토에서 어쩌면 자연스러운 결과일 수도 있을 듯.

30분 후에 DUKE는 Belmont 와 첫 예선을 치룬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Barak Obama 의 Bracket

DUKE는 8강에서 UCLA에 탈락하는 예상을 내 놓았다. 내 예측도 그러하다.

* 업데이트:

듀크가 정말 어렵게 Belmont 를 1점차로 이겼다. 경기 보는게 살떨려서 죽는 줄 알았다.
20일 현재, 내 브래킷에서 두팀이 탈락하는 바람에 대학원 브래킷 경쟁 사이트에서 공동 19위에 랭크중이다.
BYU가 떨어진 것은 그렇다 치는데, USC가 Kansas State 에 져버렸다. 스탠포드와 코넬이 경기해서 스탠포드가 이긴 것은 농구는 둘다 마이너 팀들 임에도 재밌는 부분인 듯.

매일 밤 상단의 대진표를 업데이트 하기로 했다. 내 브래킷은 띠엄띠엄 업데이트하고..

* 업데이트 II:
끝내 듀크 탈락! 하필이면 토요일 낮에 학교가려던 차에 경기를 중계하는 바람에 눌러 앉아 봤는데, 후반전에서 졸전을 펼쳐 역전패를 당하고 말았다. 적어도 NCAA에서 기본 "가락"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Sweet 16"라고 불리우는 8강전에는 나가줘야 하는데, 이게 무슨 처참한 결과란 말인가?
올해 처음으로 "몰입 시청"을 해줬더니 스트레스만 안겨줬다.
이제 내 Bracket 은 엉망이 된 셈인데, 어제 날라온 메일에 따르면 현재 59위. 이젠 백등 밖으로 떨어지게 됐다.
아이팟 나노 하나 받아보나 했더만..ㅋㅋ

듀크 경기를 보고 있자니, 누구 말마따나 "헝그리 정신"이 부족한 애들이라고 밖에 할말이 없었다.
아직  어린 학생들이 주축이어서 그런지 감정의 기복도 심한 것 같고.
듀크 탈락의 여풍으로 이제 업데이트는 결승전 때나 해야될까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대충 만든 내 브라켓


2008년 3월 18일 화요일

노트북 도둑과 FEDEX 박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도서관에 얼마전 부터 연쇄 노트북 도난 사고에 대한 경고문이 붙은 후, 화장실에 갈때도 노트북을 가지고 가는 진풍경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나는 평소부터 "도둑질 할려고 맘을 먹은 자"를 막을 방법이란 없다고 생각하는 터이어서 노트북 운명을 운에 맡긴 채 버젓이 나가서 담배 피우고 오고 그러는데, 그러고 돌아와 보면 순찰을 돌던 경비원이 노트북 위에 "훔칠 기회가 있었다"란 파란색 쪽지 경고문을 놓아 두고 가곤 했었다.

어제는 도서관에 일단의 경비원들이 나타나 아무래도 또 폴리스 리포트가 있었나 보구나 했는데, 오늘 학교에서 온 메일을 보니 최근 연쇄 노트북 절도범의 인상 착의가 밝혀졌단다.

연쇄 절도범 용의자는 큰 키에 저 페덱스 박스를 들고 돌아다닌다는데, 도서관을 어슬렁 거리다가 주인이 자리를 비운 노트북을 보면 박스 안에 쑥 노트북을 집어 넣고 사라진단다. 현재까지 최소 2개에서 3개정도의 노트북을 그런 방식으로 훔쳐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사이즈를 보니 왠만한 노트북은 들어가고도 남은 크기다.

미국내 택배 경쟁업체인 USPS,  UPS나 DHL이 어찌 생각할까 궁금하기도 한데,
아마도 최근에 Fedex 가 항공 운송 뿐만 아니라 지상택배를 시작했기 때문에 USPS나 UPS는 바짝 긴장하고 있던 터라, 페덱스와 도둑의 이미지는 얼마간 그들에게 안도감을 줄지도...

어쨌든 행여라도 도서관에 페덱스 박스 들고 가지는 않아야 할까보다. ^^

희망의 아비트티리지


지난 대선시기에 이른바 BBK와 이명박, 김경준의 진실논쟁이 한창 뜨거웠다.
당시 흘려들었던 이야기 중에,이명박이 김경준을 아비트리지의 천재라고 치켜세우며 소개하고 다녔다는 내용이 있었다. 그때는 그저 채권 같은 것의 "시세차익" 혹은 "차액거래"를 실현하는 금융기법 정도로만 이해를 하고 말았었는데, 오늘 과에서 있었던 초청강연을 듣고보니 그게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닌 것 같다.
"삽질밖에 모르던" 이명박이 나름 첨단 금융사업을 펼치고 싶어했다는 것은 분명한데, 그게 왜 아비트리지였을까도 좀 생각을 해봤었으면 적어도 강연 중에 이해도가 좀 빨랐을지도 몰랐겠다는 후회도 된다.
그나저나 이명박의 요즘 정치행태를 보아 아비트리지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했던 것은 아닌게 분명하니, 그의 일관된 주장 마냥 "사기"를 당한 것은 예정된 수순이었던 것이 분명한 것도 같다. 

오늘 초청강사는 이병박이 극찬했던 김경준 같은 "아비트리지 천재"가 아니라 코넬에서 인류학을 가르치는 일본인 교수 Hiro Miyazaki 였다.
사실 이 강연은 예정되어있었던 것은 아니었는데, 지난주 봄방학 기간동안에 급하게 일정이 잡힌 것이다. 미국의 대학에는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매우 독특한 교수임용 방식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패키지 딜"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 패키지 딜의 대상이 되는 자격은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몇개의 대학에서 동시에 임용제안을 받거나, 이미 학계의 "스타"인 경우에 스카웃트시에만 주어진다. 보다 나은 조건을 피임용자가 고용주에 제시하는 기회를 갖는 것인데, 대개 "패키지 딜"이라고 하면 배우자를 자신이 일하게될 학교에 데리고가 일할 수 있도록 요구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드문경우지만 때론 지도하고 있는 대학원생을 데리고 가기도 하고, 심지어는 형제자매를 취업시키기도 한다. 
한국의  고용문화에는 가당치도 않은 일이겠지만, 어쨌든 미국의 대학은 보다 능력있는 교수 한명을 확보하기 위해서 그/그녀의 "식솔"들을 함께 거두는 방식을 거침없이 사용한다. 그렇다고 아무 능력없는 사람을 자리에 앉히는 것은 아니고, "최소한"의 능력정도는 평가하는 형식적 절차는 있다. 이러한 "공격적" 임용방식은 물론 "돈많은" 사립대학 혹은 돈잘 끌어오는 특정과에서 주로 쓰는 방식이다. 유명교수만 확보해도 과나 대학 랭킹이 몇단계 움직인다고 생각하니까 말이다. 따라서 이 공격적 임용경쟁을 통해 대학들간의 격차나 각 과들간의 격차가 극대화되는 지적 불균등성이 생산된다. (사족이지만, 심지어 대학원생이 "어드미션 딜"을 하는 것도 봤다.)

이야기가 길어졌지만, Hiro 선생의 강연은 그의 부인(같은 인류학자이면서 변호사이기도한)을 로스쿨에 데려오고 싶어하는 학교의 전략에 따라, 그가 우리과에 "임용가능한지"를 측정하는 준 임용심사로 마련된 것이었다. 부인도 Hiro 강연 직전에 공식 행사는 아니었지만, 비공식 "브라운 백" (점심을 갈색 봉지에 담아다녔다는데서 유래한) 집담회를 과 교수, 대학원생들과 함께 했다. 부인이 브라운백 하는 동안 아이를 안고 강의실 밖을 배회하던 Hiro 선생이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Hiro 교수는 일본과 피지의 파이낸셜 마켓 현지조사를 통해 "희망"이라는 독특한 인류학적 주제를 끌어내는 연구를 해오고 있다고 한다. 파이낸셜 마켓의 연구를 경제학이나 경영학적인 접근에서 벗어나 인류학적 논의의 대상으로 만들어낸 것은 그 자체로써 인상적이었는데, 특히 현재의 지구적 파이낸셜 마켓에서 그 일상적 실천의 양식을 분석해 내려는 시도는 개인적으로는 처음 들어본 연구주제인 데다가 그 연구관심자체만으로도 놀랍지 않을 수 없었다.

강연의 주제는 "희망의 일시성"이었다. 주로 일본의 파이낸셜 마켓과 정치사회적 담론의 연관성에 대한 분석을 통해, Hiro 교수는 신자유주의 글로벌 시대의 희망의 논리를  이명박 마저 자신의 능력에 걸맞지 않게 빠져들었다던 "아비트리지" 와 "천재"는 아니었던게 분명한 김경준과 같은 "아비트레져"로 부터 도출해 내고자 시도중이라고 했다.
사실 강연 내용이 낯선주제였기 때문에 제대로 이해를 한 것은 아니고, 개인적으로 너무나도 부러운 영어실력이었지만, 그도 일본인인지라 그의 독특한 영어발음은 내 귀에서 미끄러질 때가 많았다. 어차피 잘 "듣는" 성향이 아닌고로 강연 내내 내 맘대로 생각을 펼쳤던 것도 같다. 따라서 이 노트는 얼마간 Hiro 선생의 강연내용과는 차이가 있는 것인 셈이다.

신자유주의시대와 글로벌라이제이션이 전지구적 환경을 시장화 시켜냈다고 한다면 그 시장작동 원리의 핵심인 "보다 많은 이윤"을 창출하고자 하는 "희망"이 거래되는 새로운 방식을 단지 경제적인 차원의 기법으로만 바라 볼 것이 아니라 사회문화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주장은 매우 설득력있게 들렸다. 
내겐 금시초문의 내용이었지만, 놀라운 것은 이미 일본에서는 이러한 시도들이 "대중지식인"들과 학자들 사이에서 진행되었다는 사실이었다. 도대체 한국의 서점에는 어째 "10억 만들기"서적들 밖에는 안보이는 것일까 하는 통탄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출판사에서 "BBK와 아비트리지" 정도의 제목으로 기획출판을 하면 그래도 좀 팔리지 않을까 싶은데 그나마 시장 감각도 없는것일까?

Hiro 교수의 발표에서 핵심 참고자료로 소개했던 일본 책들을 나열해보면,

Yamada Mashiro, 2004, Kibo Kakusa Shakai, Tokyo: Chikumashobo
Genda Yuji, 2001, Shigoto no naka no aimaina fuan 

어차피 일본어를 못하니까 나는 위의 두학자는 "파워포인트 상의 떡"일 따름이었는데, 그나마 내가 귀를 쫑긋 세울 수 있었던 것은, 한때 내가 열독했던 무라카미 류의 최근 작품들이었다. 이제 무라카미 류는 일본의 "대중지성"으로 인정을 받는 수준에 이르렀나 보다.

무라카미 류의 Kibo No Kuni No Ekusodasu (한국에선 Exodus 로 번역되어 있는 것 같다)를 일본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한 문학작품으로 소개하면서, 그 작품의 내러티브와 일본 사회의 아비트리지 열광을 비교분석했다. 문제는 내가 류의 작품을 한동안 못 읽어봤다는 것인데, Hiro 선생의 소개에 따르면 이 소설이 일본의 금융시장까지 다루고 있고 "희망"없다는 일본 사회에서 "희망"이 거래되는 방식을 보여주고 있다고 한다. 5월에 한국들어가면 꼭 읽어봐야겠다.

일단 내가 새롭게 알게된 사실은 아비트리지가 이명박과 BBK 때문에 지나치게 강화된 이미지처럼 단순한 "투기"나 "사기"는 아니라는 사실아다.
이명박은 땅투기로 성이 안차 금융투기 한판 해보고 싶어 아비트리지에 관심을 가졌는지도 모르지만, 그가 정치적 야망이 있는 한 나름 사회적 도덕률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는 없었을 것도 같다. 아비트리지는 아마도 그에게"안전"한 "첨단" 이윤창출의 기회로 보였을 법도 한데, 그가 그 세계에 발 들여놓은 것은 얼마간은 그의 "눈칫밥"인생의 긍정적 결과라고 말해 줄 수도 있을 법 싶다.

아비트리지에 관해서는 문외한이어서 복습겸해서 찾아보니 역시 일본 사람들이 이미 연구를 많이 한 주제인 것은 분명한 것 같다. 벌써 중고서점에서 판매중인 "보이지 않은 대륙"이란 책에 따르면:

* 아비트리지
아비트리지는 공급자에 대한통제나 협상이 아닌 ||^선택||^만으로 더 좋은 상품과 서비스의 가격을 더 저렴한 가격에 얻는 거래이다. 기존 공급자가 만족스럽지 못하면 더 나은 파트너와 손을 잡는 새로운 선택을 함으로써 그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 물론 기존의 공급자에게 등을 돌림으로써 불행해지는 사람이 생길 수 있다. 하지만 아비트리지로 인한 절감 효과가 너무 크기 때문에 새로운 선택은 필수적이다. 아비트리지는 기업, 교육, 서비스, 행정 등 모든 분야에 걸쳐 엄청난 속도로 반복적으로 수없이 일어나고 있으며 그에 의해 얻을 수 있는 이득은 실로 엄청나다. 인터넷 기업의 등장으로 기존의 수직적인 가치 사슬이 수평적 거미줄 구조로 아비트리지되는 것은 시간 문제이다. 일본의 아이모드 인터넷 서비스가 전자우편에 자료를 첨부하는 데 단 1센트의 요금을 부과함으로써 요금이 비싼 다른 서비스와 빠르게 아비트리지되고 있다. 아비트리지가 활성화되면 지구 반대편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를이용함으로써 시간의 제한을 극복할 수 있고, 관료들을 정확하고 능률적인 전산 시스템과 아비트리지하여 관료주의를 타파할 수도 있다. 수천 명의 무능한 선생님은 텔레커뮤니케이션의 등장으로 단 한 명의 유능하고 상대적으로 저렴한 한 명의 선생님으로 아비트리지될 수 있다. 또한 자국의 통화가 매우 불안정하여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자금의 가치가 유동적이라면 보다 안정적인 통화로 아비트리지하여 안전하게 자산을 보유할 수도 있다. 보이지 않는 대륙에서는 아비트리지를 효율적으로 적시에 활용하는 것과 아비트리지의 대상이 되지 않기 위해 더 나은 서비스와 품질을 갖추는 것이 성공의 관건이 될 것이다.

(출처: http://www.gorebook.co.kr/shop/shopdetail.html?brandcode=030004000734)


이 설명은 이미 경제학에서의 아비트리지를 확장한 것으로 보이는 데, 일단 아비트리지가 신자유주의적인 이상의 시장 구현 논리와 맞아떨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확인할 수 있다.

아비트리지는 지구적 시장과 거래 기술의 진보와 맞물려 등장했다. 또한 역설적으로 그렇게 형성된 시장 조건들과 상황들의 불균등성에 바탕을 둔 시장의 모순에 입각한 제도이다.
여기서 핵심적인 것은 "공급자는 불행해 질 수 있으나" 구매자 혹은 아비트레이져는 이론적으로는 "불행해질 위험"이 없다는데 있다. 이것이 아비트리지가 "스펙큘레이터"와 구분되는 지점이고 "위험없는 수익 risk-free return"을 약속하는 방식이다. 아직은 경제학에서의 직접적인 적용의 예를 읽어보고도 알듯 모르듯 한데, 정확한 이해를 위해서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경영학 박사과정이자 여러 초국적 컨설팅 펌에서 일한 화려한 경력의 내 하우스메이트에게 지도를 받아야 할 듯.      

이 아비트리지의 논리로 부터 Hiro 교수는 신자유주의 시대의 희망의 경제학을 제시한다. 시장에서의 희망-주로 이윤 증대로 표출되는-의 논리가 개개인의 삶의 희망의 논리로 확장되어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의 논지에 따르면 아비트리지화된 희망은 스펙큘러티브한 희망과는 다르다. 현실과 "도래할" 혹은 "약속된" 미래를 매개하는 스펙큘레이션의 자리에 있는 희망이 아닌 아비트리지화된 희망은 현실자체에서 그 이상의 가치를 실현할 가능성으로 자리한다. 그 자산에 대한 현실적 평가 조건으로 부터 그것의 "이윤 회수율"을 시장간의 차이 혹은 모순으로 부터 실시간으로 회수하고 실현하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의 일상화는 국가간의 경쟁 혹은 시장간의 경쟁이 일상화된 지구적인 조건에서 가능해 진다. 한데 문제는 "보유자산"에 대한 가치 평가의 복잡성과 아비트리지의 일시성에 있다. 시장에서의 가치 결정이 그러한 것 처럼, 삶과 사회 내의 여러 자원들에 대한 가치들에 대한 평가도 마찬가지이다. 또한 아비트리지는 본질적으로는 가치의 차이를 통한 이윤 실현을 통해 시장간의 가치 차이를 없애는 결과를 만들어 내기 때문에 일시적면서 반복적인 과정으로 행하여진다. "희망"은 이 속에서 "한방"에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 결국 가치의 발랜스를 조정하는 과정에 놓이게 된다.

사실 이부분은 아직 좀 불확실하다. 맹점중에 하나는 Hiro 교수가 "희망"을 불확실하게 정의한 데다가, 시장에서의 가치 절상 혹은 이윤추구와 동일시 하면서 사회적 희망으로 즉자적으로 확장해 버리기 때문이다. 그런 문제에도 불구하고 한가지 시사점은 결국 "희망"이라는 것은 "보유자산"에 대한 평가에 기초한다는 존재론적 관점을 되살릴 수 있다는 점일 테다.
논리적인 측면에서, 경제학의 일반적 판타지와는 달리 아비트리지는 결국 "보유자산"에 대한 임의적인 평가에 기초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가치의 고/저는 일시적일 수 밖에 없다는 전제가 있다. 만약에 이러한 논의를 보다 정교하게 사회담론의 형성과 유통에 대한 분석에 적용할 수 있다면, "희망"이라는 "임의적 정의"들의 거소의 작동방식을 규명하는데 유의미할 것 같다. 또한 "개인화된 희망"-윤리적인 측면에서나 행위적인 차원에서도-의 공통감각이 형성되는 과정을 추척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논리적으로 "risk-free"에 결합된 "freedom"의 자리가 아비트리지를 통해 형성되는 희망의 지향점이니 말이다.

문답시간에도 잠깐 나왔지만, 왜 오바마에 미국이 열광하는가 그리고 일본사회는 또 왜 "희망"에 집착하는가등등을 전지구적인 상황과 시장의 질서들과 연관시켜 연구한다면, 글로벌 파이낸스 마켓이 우리의 의식과 실천속에 스며드는 어떤 지점들을 규명할 수 있으리란 기대를 해볼 수 있을 것 같다.
Hiro 교수의 논지를 빌어보자면, 나는 지금 그의 강연 내용을 아비트리지화 하고 있는 셈일지도 모른다.

그나저나 좀 더 공부를 해 봐야 할 듯.
 


2008년 3월 16일 일요일

Piste - Chichen Itza 의 밤 #1

  Piste 성당앞 풍경


치첸이차 유적에서 2km 정도 떨어진 곳에 Piste (삐스떼)라는 조그만 마을이 있다. 치첸이차에 하루밤을 머무르는 관광객들은 이곳에 있는 호텔과 편의시설을 이용해야하는데, 그때문인지 그 정보를 제외하고는 별다른 정보가 없다. 여행정보 사이트에 따르면, Piste 에는 은행도 현금지급기도 없다. 현금지급기는 마을이 아닌 오직 치첸이차 유적지 내부에만 있다는데, 단적인 예지만 그 사실로 Piste 와 치첸이차 유적지의 "공간적 위계"를 어느정도 예측할 수 있을 것도 같다.

늦은 저녁을 먹기위해 Piste 중심가로 걸어갔다. Piste 에는 택시를 제외하고는 별다른 대중교통수단(콜렉티보와 같은)이 없다. 한국의 전형적인 "면 소재지" 분위기이기 때문에 야간에 혼자 걸어가긴 조금 위험할 것도 같았다.

날씨가 의외로 쌀쌀했지만, 그래도 일요일 밤이어서 그런지 Piste 중심가에는 아직 상당수 노점상들과 어린 학생들이 성당을 중심으로 형성된 광장을 채우고 있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축구선수와 꽃과 과달루뻬의 오묘한 조합: 성당한쪽 벽면에서 팔고 있던 시디들

이미 대부분의 식당들이 영업을 마친 상태여서 허기를 채우는 것도 쉽지가 않았다. 론니플레닛에 배낭여행자를 위해 소개된 식당은 이미 문을 닫은 터였다.
그나마 광장 맞은편에 있는 한 식당들이 불을 켜놓고 "떨이 장사"를 하고 있어서 그곳에서 저녁을 먹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갑자기 테이블 중앙에 세워진 것이 무엇일까 궁금해지는데..
정작 내가 앉았던 테이블에는 없었던 것도 같고. 무엇에 쓰는 물건일까...  돌이켜 생각해보니 정작 사진을 찍은 이 식당에서 밥을 먹은게 아니라 바로 옆집에서 먹었던 것 같다. 영업 끝났다고 그랬던가? 어쨌든 아무도 안 앉아 있었다. 언어로 의사소통이 안되니까 이래저래 "대세"와 "눈치"에 따라 옮겨 다녔던 듯.


저녁밥을 먹었던 식당 내부. 식당 벽면에 액자로 붙여논 사진들이 온통 치첸이자 관광 안내 책자나 우편옆서에 실릴것 같은 사진들인데 왜 그걸 새삼스레 붙여놨는지 궁금했다. 맨 오른쪽에 아마도 주인아저씨와 어떤 유명인(멕시칸일듯)이 찍은 것 같은 사진을 걸어 놓은 것은 전세계 어느 식당들에서도 볼 수 있는 실내 장식.




2008년 3월 12일 수요일

Chichen Itza 의 야간 조명 쇼

사용자 삽입 이미지

치첸 이차의 정문.



머리위에 해를 이고 칸쿤을 출발했던 버스는 어둠의 이불을 덮고서야 치첸이차에 도착해 외국인 배낭여행자들을 부리고선 최종 목적지인 메리다로 향했다.
도대체 멕시코 버스 기사는 몇시간 동안 운전을 해야하는 것일까?
칸쿤에서 치첸이차까지 6시간이 넘게 서다가다를 반복했었는데, 버스는 또다시 그렇게 몇시간을 더 가야만 했던 모양이다.

지루한 버스 여행에 그나마 잠깐 동안 활력을 불어넣었 던 것은, 옆자리에 앉은 이스라엘 출신 배낭여행자를 만난 것이었다. 그는 코넬에서 1년동안 박사후 과정을 보내고 있는데, 겨울 방학 동안 1달 남짓 멕시코와 에쿠아도르등을 여행할 계획이라고 했다. 그동안 주로 캠핑을 하면서 여행을 해왔다는데, 그 도전 정신에 사못 경외감도 들었다. 치첸이차에서도 텐트를 치고 잘 계획이라고 하던데, 군대에서 행군할 때를 마지막으로 텐트생활을 졸업한 나같은 경우는 그런 생각을 한번도 안해본 것이기도 했고, 대체로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뭐 그렇게 까지"가 주요한 변명이 된 상태여서 그의 적극적인 여행자적 자세에 얼마간 질투가 났던 것도 같다.
그런저런 이질감(?)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이스라엘과 유태인에대한 해묵은 정치적 편견 때문이었는지, 여행 "동반자"를 만났다는 "반가움"을 적극적으로 표현했다기 보단, 다소간 "사무적"인 어투로 대화를 나눴던 것도 같다.  인간이 갈수록 "못 쓰게" 되가고 있는 것도 같고.....

나는 치첸이차의 유적지에서 가장 가깝다는 피라미드 인에 예약을 해 놓은 상태여서, 치첸이차 유적지에 버스가 잠깐 멈춰설 때 서로 마지막 인사를 나눴는데, 나중에 다시 만나게 됐다.
들어보니 치첸이차의 유적지에서 캠핑이 금지되어 잘 곳을 새로 찾아야하는 상황이었다.
나중에 공연을 함께 본 후 함께 피라미드 인으로 돌아와 묵었다.

부럽고 고마웠던 것은, 그가 자신의 초보 에스빠뇰를 이용해서, 히치하이킹을 해주었다는 것이다.
주차장에서 막 떠나려던 차를 대범하게 불러 세우더니, 호텔까지 태워다 줄 것을 부탁했다.
다행히 친절한 멕시코 부부가 혼쾌히 동의해서, 칠흙같이 어두워진 길을 걸어가지 않아도 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호텔에서 유적지까지 걸어오면서 나중에 다시 돌아갈 일이 까깝할 것 같았었는데,
역시 구하는 자 얻을 것이고, 구하는자 곁에 있는자 덩달아 얻기도 한다.
 
론니플레닛에 보면 치첸이차의 야간 조명쇼에 대해서, 양가적인 평가를 내놓고 있다.
"가격 대비 만족도가 좀 떨어진다" 는 평가가 있다는 일각의 의견을 소개하는 한편에, 그래도 "한번쯤은 볼만하다"라고 나름 긍정적인 의견도 내놓고 있었던 듯.

어쨌든 한번은 봐줘야겠다고 차안에서 계획을 세웠는데, 버스는 그런 계획이란 아랑곳 하지 않고 길가의 사람들을 머금었다 뱉어내기만을 반복했다. 시간이 지나 갈수록 공연시작전에 도착할 수 있을까 조마조마 하던 차에, 갑자기 새로운 걱정거리가 하나 떠올랐다. "혹, 일요일날은 쉬지 않을까?"
멕시코 사람들은  대부분 카톨릭이니 어쩌면 일요일날 저녁엔 공연을 하루 쉴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든 것이다. 지나고 보니 그 "사서 한" 걱정은 정시 도착을 못해서 공연을 놓칠 지도 모른다는 차내 불안감을 이완시키위한 것이기도 했던 것도 같다.

다행히 버스는 공연시작 한시간 전쯤 호텔 앞에 우리를 내려줬다. 버스기사가 항상 지나치는 곳이라고-나중에 알고 보니 호텔 바로 옆에 간이 버스 정류장이 있었다-호텔 건너편 길에 차를 세워주기 까지 했다.
체크인을 하고 주인에게 물어보니 일요일날에도 공연이 있다고.


12월 중순의 멕시코밤은 예상과 달리 정말 추웠다.
영상의 기온을 유지한다고는 하지만 일교차가 10도 이상씩 나는 날씨는 나무잎만 붉게 물들이고 털어내는 것이 아니라, 사람도 사시나무 떨 듯하거나 어깨를 움츠릴 수 밖에 없게 만들었다.
생각해 보니  베트남의 겨울을 처음 겪었던 2005년에도 비슷한 경험을 했던 듯 하다. 너무 추워서 전기담요를 빌려 잘 수 밖에 없었던 하노이의 겨울 밤 그리고 반팔을 입어야 했던 겨울 낮. 

라이트쇼에는 단체 관광객 보다는 대개 개별 여행자들과 멕시코 국내 여행자들이 대다수로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대부분의 단체 여행객은 칸쿤에서 하루일정으로 치첸이차를 들러가거나, 아니면 메리다 가는 길에 들르기 때문에 저녁시간에 하는 이 공연을 일정에 배치하기가 쉬운 것은 아니었을 것 같았다.
치첸이차 밖의 풍경이 여행지의 전형적 풍경과는 달리 황량한 느낌을 주는 것은 아마도 그렇게 스쳐지나가는 관광객들이 만들어낸 것이기도 했을 것 같다.

한데 많은 외국 단체 여행객들이 "단일치기"해서인지 라이트쇼의 구성도 매우 단조로운 것이었다. 영어 번역기를 입구에서 대여해주기도 했지만, 에스빠뇰로만 나레이션을 하는 데다가, 레이져 쇼 같은데 익숙해진 터라서 그런지 그냥 건물에 형형색색 조명만 들어왔다 나갔다하는 "비주얼"이 추운 날씨와 버무러져 별다른 감동을 못 만들었다. 그나마 버스에서 만났던 이스라엘 대학원생이 간간히 자신의 "초보 스페인어 실력"으로 번역해주는 것 마저 없었다면, 그저 치첸이차의 역사와 건물들에 대한 설명을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추측할 수 밖에 없었을 것 같다. 이스라엘 청년의 띠엄띠엄한 번역은 그 추측이 맞다는 사실만 확인시켜줬지만....

야간 조명쇼 티켓은 정규 관람티켓과 분리해서 판매하는데, 티켓과 함께 구입하면 약간의 할인율이 적용되었다. 또 학생증을 내보이면-대학원생증이었지만, 학생 할인 요금 적용을 받을 수도 있었다. 나처럼 야간에 도착해서, 다음날 다시 돌아와 유적지를 둘러보는 사람들도 저녁에 미리 입장권을 조명쇼 티켓과 함께 구입할 수도 있다.


치첸이차의 입구에는 파바로티의 공연을 기념하는 포스터와 표지석이 있다. 1997년 루치아노 파바로티의 치첸이차 공연은 그 음악사적 지위 뿐만 아니라, 치첸이차를 "세계의 불가사의" 건축물의 하나로 각인 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자세히 보니 입구의 기념 표지석은, 2007년 9월 파바로티가 사망한 이후 유카탄 주정부에서 만든 것이다.
파바로티의 팬들이, 파파로티 생전의 멕시코 치첸 이차에서의 역사적 공연을 지나칠 수 없는 한,
치첸이차는 한시대 유럽적 대중문화 전통을 추헉하는 "배경"으로 또한 각인되어 질 듯.

물론 치첸이차는 한국이 호돌이 세상이 되었을 때 이미 세계문화유산의 지위를 획득했었으니, 파바로티가 굳이 필요하진 않았을 수도 있었겠지만, 어쨌든 "서울이 올림픽 했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보다 "파바로티가 치첸이차에서 공연했다"는 것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인구학적 분포가 보다 글로벌 할 수도 있지 않겠나 하는 생각도 든다.

그동안 여러 세계 정상들도 다녀 갔지만, 파바로티가 만들어내는 "상품성"보다 못 했던 것은 분명한 듯.


2008년 3월 10일 월요일

칸쿤을 떠나다...

성인전용리조트 Blue Bay 를 마지막으로 칸쿤에서의 일정을 마무리했다.

정신없이 떠나온 여행이어서 한동안 몸도 마음도 여행자 모드가 아니었는데, 리조트에서 먹고 마시고 빈둥거리다 보니 미처 못 끝내고 떠나온 미국에서의 일에 대한 스트레스도 조금 이완되었던 것 같다.
그동안 "리조트 여행"에 대해서 반감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는데, 해보고 나니 리조트 매니아들의 마음이 조금은 이해가 되기도 했다. "Relax~~"

치첸 이차로 가는 ADO 버스표를 끊지 못했기 때문에 오후에 출발하는 Oriente 를 타야했다.
"이등급 버스"라고 해서, 그저 버스가 좀 불편하려니 했는데, 그게 다가 아니었다.
ADO가 장거리 구간에서 종종 도시의 버스터미널에 멈춰선다면, 이 Oriente 는 길에서 멈춰 섰다.
사람들이 손을 흔드는 곳에서, 또 승객이 내리고 싶은 곳에서....
세월아 내월아 하고 달리는 Oriente 는 맘 바쁜 여행자들에게 얼마간의 짜증과 걱정거리를 만들어줬다.

치첸이차에 언제나 도착 할까? 저녁에 라이트 쇼를 봐야하는데.......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한산한 낮시간 터미널에 주인없이 놓여져 있던 과자 봉다리 (양파링?)



 칸쿤의 마지막 사진들 몇장. 한산한 터미널에서 나른함을 못 이겨 셔터를 눌러 댔던 듯.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2008년 3월 8일 토요일

"세계 여성의 날"에 "화병"난 조선일보

3월 8일은 세계 여성의 날이다. 대부분의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 아직 적어도 이념적인 지향을 내걸고 있다면 - 이날 남자들은 꽃과 선물을 여성들을 준비해 건네기도 하고, 사회주의의 국가가 아니더라도 유럽이나 남미등지에서는 이날 남성들이 여성을 위한 특별한 "서비스"를 기획하기도 한다. 또 몇몇 국가에서는 국경일이기도 하다.

원래는 여성의 인권과 정치적 투쟁을 기념하는 날이지만, 꼭 그런 정치적 의미가 있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고 하나의 축제의 날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이 전세계의 일반적인 풍경이다.

게다가 올해는 토요일이니 어머니를 대신해 설겆이라도 하는 것이 "엄마 밥~" 하고 살아 온 한국 남자들이 한번쯤 생색을 내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듯 싶다. 하루라도 양성평등을 체험해 보는 것은 나쁘지 않지 않은가?


산업 혁명시민 혁명으로 인해 서유럽 세계가 자본주의 체제로 급속하게 발전하면서, 여성들의 지위는 기존 사회와 크게 달라지게 되었다. 이제 집안에서 가사 노동만을 담당하던 것에서 벗어나, 자본주의 체제의 노동자 계급의 일원으로 나서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러나 자본주의 체제는 여성들에게 남성보다 가혹한 조건을 요구했고, 여성 노동자들의 불만이 1857년 미국의 뉴욕 시에서 처음으로 폭발한다. 이때 방직, 직물 공장에서 일하던 많은 여성 노동자들이 열악한 노동 환경과 저임금에 항의하는 시위를 일으켰고 이는 곧 경찰에게 공격받고 해산되었다. 2년이 지난 1859년 3월, 이 여성들이 최초로 그들의 노동 조합을 결성하게 된다. 이후 1908년 2월 28일 미국에서 여성들의 또 한번의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이때 15,000명이나 되는 여성 노동자들이 근무 시간 단축, 임금 향상, 투표권 등을 요구하며 뉴욕 시로 행진하였다.

이후 1910년 제2인터내셔널의 노동여성회의에서 독일의 노동운동 지도자 클라라 체트킨((영어)Clara Zetkin) 으로부터 매년 같은 날, 모든 나라에서 동시에 여성의 권리 신장을 주장하는 '여성의 날' 행사가 제안되었고, 이 주장이 받아들여져, 1911년 3월 19일에 첫 번째 '세계 여성의 날'이 치뤄지기로 결정된다. 1848년 3월 19일은 프러시아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프랑스 2월 혁명의 영향을 받은 노동자 계급의 봉기 움직임에 위협을 느끼고 여성 참정권 등을 약속한 날(이 약속은 봉기의 위험이 사라지자마자 취소되었다.)이었기에 이 날로 결정된 것이다.

(한글 위키피디아에서 가져온 여성의 날 기원. 내용이 나름 충실하다.

http://ko.wikipedia.org/wiki/%EC%84%B8%EA%B3%84_%EC%97%AC%EC%84%B1%EC%9D%98_%EB%82%A0 )


그런데......우리의 "대한민국 일등신문" 조선일보는 여성의 날 이브에 엄청난 기사를 내 보냈다.

제목마저 "선데이 서울" "일요신문"이 무릎 꿇을만 하게 선정적이다.


"'마술 걸린' 여학생 배려에 남학생은 화병난다" (기사 보기)


대학에서 생리결석을 용인해주는 "기이한 제도"가 한국에 있다고 소개를 하면서,

한학기 동안 여학생들은 결석 5번에 A도 받을 수 있는데, 남학생은 결석 5번에 F를 못 면한다는 불평이 커져가고 있다고, 서강대 정모군의 입을 빌어 소개하고 있다. 그래서 서강대는 5번이 아니라 3번으로 결강 가능일수를 줄였다고. 기사에도 있지만, 아니 생리라는게 학교에서 두번 덜하라고 하면 안해지는 것인가?

일단 A을 "받을 수도"와 F를 "못 면한다"를 비교하는 인간들의 논리학으로 대학은 어찌 다니고, 기자는 어찌 되었는지 궁금하다. 5번이나 수업을 빠지고도 A를 받는 여학생들의 천재성에 경의를 표해야 하는 것 아닐까? 특별한 이유도 없이 수업도 안들어와서 F를 못 면하는 남학생들은 도대체 학교를 뭐하러 다니는지도 궁금하고 말이다.

도대체 조선일보는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인가?

사실 비싼 등록금 내놓고 학교에 못 갈 정도로 아픈 여학생들의 학습권을 보장할 다른 방법을 학교에서 마련해야한다는 내용이라면 내가 이해를 좀 하겠는데,

수업에 결석하는 것을 무슨 "특권"으로 바라보는 기자들의 시선이야말로 회사에 결근 하고 싶은 조선일보 기자들의 욕망의 대리 만족은 혹 아닌가 되묻고 싶다.

물론 말도 안되는 기사들을 써내는 고충은 이해하지만, 그런데만 쓰라고 머리가 있는 것은 아니다.

8,90년대 대학가를 통제하고 싶어했던 정권과 교육부가 대학교 출석 체크를 통해 운동권 학생들을 걸러내고자 했던 역사가, 저급한 대학교육의 질과 취업전장터화 되는 대학 문화와 맞물려, 대학교육을 "출석체크"로 학점주는 수준으로 떨어뜨린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왜 "출석 안부르냐"고 학장, 총장에게 투서하는 대학생들도 있다니 할말 다한 우리내 대학 풍경인데, 그러면 대학이 학위를 주지 말고 수료증을 주어야하는 것 아니겠는가? 마치 운전면허 시험을 보기 위해서 일정한 수준의 수업 참가 도장을 받아야 하는 것 처럼 말이다.

그리고 기자 이름을 보니까, 최수현인가 하는 기자(여성기잔가? 그동안 기사를 보니 주로 조선일보에 연대동문회기사를 올리시던데)가 이 기사를 함께 쓴 것 같은데, 자기는 생리통이 없으니 남들도 견딜만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생리휴가나 휴강제도는 조한혜정 교수도 기사에서 언급했지만, 말그대로 "아픈" 사람들을 위해 필요한 제도가 아니던가?

그것이 단지 특정한 질병이 아니라, 건강한 젊은 여성이면 한달에 한번씩은 피할 수 없이 "참아 내야"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생리적 보편성에 입각해서 마련한 제도이고 말이다.

도대체 무엇이 조선일보를 "여성의 날" 이브에 맞춰 화병나게 했는지는 모르지만, 해도해도 너무한 기사가 아닌가 싶다.

노동절 이브에는 또 무슨 기사를 준비하고 있을까?

전두환 취임전날, 이명박 취임전날 부르던 "용비어천가"를 기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밑도 끝도 없이 그나마 "바람직한" 사회제도들에 시비는 걸지 않았으면 좋겠다.

생리휴강제도는 "한국에만 있어서 이상한 제도"가 아니라, 한국에 있어서 다른 나라에서도 따라 배울만한 제도라는 생각은 왜 해보질 못하는지.

"여성의 날"에 맞춰, 여성 건강관련 소비재에 대한 광범위한 감세와 공공재로써 가격조정이 대기업과 고소득자들에 대한 대대적인 감세 정책을 추진하는 이명박 정부에서는 왜 논의꺼리도 되지 못하는지, 여성을 애낳는 기계로 생각하는 보건복지부의 신생아 정책에 문제는 없는지를 한번쯤 되돌아 보는 그런 기사를 쓸 기자가 조선일보에는 남녀를 불문하고 없다는 사실만 확인한 셈이다.


* 수정: 여성이 아니다 보니 생리대 부가세 면제가 이미 결정된 사안이라는 것을 몰랐네요. 수정했습니다. 실제로는 감세이후 가격이 더 상승했다고도 합니다. 한국적인 시장구조에서는 부가세 감세가 답은 아닌것 같고, 공공재로써 적극적인 시장개입과 통제가 보다 더 효과적일 것도 같네요. (http://blog.naver.com/grandchyren?Redirect=Log&logNo=46097412 참조)



** 추가 **

최근 2MB 정부가 52개 생필품 목록을 만들어 가격 관리에 들어가겠다고 발표를 했는데, 거기 보면 45번재 항목에 "위생대"가 있다. 어떻게 잡겠다는지 모르겠지만, 그 목록에 보면 "바지"가 생필품에 들어가 있는데 또 "치마"는 없다. 무슨 머리로 "빈칸 채우기 놀이"를 하시는가는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나저나 생리대의 공식 명칭이 "위생대"였나? 네이버 한글 사전에서 검색해보니 "위생대 명. 생리대의 북한말"이라고 나오던데, 뭐 뜻이 통하니 그것은 됐고...

2008년 3월 7일 금요일

한국어판 위키피디아

네이버보단 구글을 더 자주쓰는 취향상 한국 관련 검색도 대개 구글에서 하는데, 그러다가 들어가보게 된 것이 한글판 위키피디아였다. 사실 한국은 네이어 백과사전, 지식인, 엠파스 백과사전, 야후등등해서 이곳저곳에 산재한 온라인 백과사전이 있지만, 그 내용과 질에서 영어권에서 사용하는 백과사전 류와 비교하면 빈약하기 짝이 없다. 몇년전에 두산동아 백과사전을 만들었던가 하는 사장이 나와서 국내의 척박한 백과사전 출판 시장에 대해 한탄을 했던 것이 기억나는데, 사전류 편찬 사업은 사실 국가 수준의 지원 속에서 각 학회가 담당해서 추진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가장 기본적인 지식의 지도들을 만들어가는 것이고, 달리 영어나, 프랑스, 독어, 스페인어가 인문학적 소양에서 혁혁한 차이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러한 사전류, 백과전서류의 탄탄한 기본 토양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니 말이다.

더구나 이젠 모두가 "공동집필"을 할 수 있는 위키피디아 같은 새로운 문서시스템도 정착되고 있는데 아직은 네이버 지식인 "내공"경쟁이 보다 더 네티즌들의 관심을 붙잡고 있는 듯.


 

가까스로 50,000 항목 이상에 들어간 한국의 위키피디아를 보고, 그나마 작업에 참여하고 있는 이들에 경의를 표하면서도, IT 강국의 이미지와는 너무 다른 인터넷 활용패턴에 사뭇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지식지도를 만들어가는 노력은,
마치 김정호가 대동여지도를 그려내던 그런 열정과 지적 자주권에 대한 열망과 비슷한 것일 텐데...

2008년 3월 6일 목요일

Blue Bay Spa & Resort 의 해변 풍경

Off-Season 의 해변은 황량하다. 달리 본다면, 한적해서 좋을 수도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멕시코의 모든 해변은 공식적으로는 사유화될 수 없기 때문에, 이 리조트의 앞 바다도 모두가 다 사용할 수가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계단을 내려가면 해변이 시작된다.


그렇다고 해변이 다 같은 해변이 아니고, 백사장이 다같은 백사장은 아니다.
역시 가격이 싸고, 힐튼이나 하얏트 처럼 초국적 자본의 브랜드가 아니어서 그런지 리조트 앞 해변의 상태가 그다지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백사장 사질도 그전에 감탄해 마지 않았던 하얏트와 비교할 수 없는 상태였고, 시야는 곳곳에 정박해 있는 요트들이 가로막는 조금 과장하면 어촌 풍경같은 느낌이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해수욕을 즐기기엔 뭔가 조금 부족한 해변 풍경: 튜브가 없다!!!! ^^


재밌는 것은 이 All Inclusive 리조트가 외부인에게 직접 노출되어 있는 곳이 바로 이 해변이기 때문에, 안전 점검이 아니라 잡상인이나 외부인의 진입을 검사하는 해변 경비원이 수시로 순찰을 한다는 것이었다.
일부 멕시코 잡상인들이 해변에 자빠져 있는 사람들에게 진주 목걸이랄지 멕시코 전통 수예품들을 팔러다니고 있었는데, 정작 누워 있는 사람들에게 다가올 수는 없었다. 누워있는 아저씨 아줌마가 "부르는데 왜 안오냐"는 투로 화를 낼려던 찰라 어느 "2개 국어 가능자" 아저씨가 상황을 설명해 주던데, 잡상인이 못 다가가는 것은 "사적 소유지"에 대한 불법 침입이 되기 때문 이란다. 그러니까 해변의 얼마만큼은 또 리조트의 소유인 셈인것이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순찰중인 해변 경비원


안전요원은 도대체가 찾아 볼 수가 없었는데, 사실 들어가 보진 않았지만 보니까 수심이 그다기 깊지도 않았다.
다시말해 해변 물놀이를 즐기러 리조트에 오는 사람들 보다는 리조트 내부의 "볼거리" "놀거리"를 위해 오는 사람이 더 많다는 것이기도 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40대 진입을 기념하며 사진촬영을 기획했던 아주머니 그룹의 모습.
뻘쭘해 하면서도 아저씨들도 다 잘 호응을 해주었던 듯.
재밌는 것은 상당수의 리조트 고객들은 싱글이라기 보다는 따 짝이 있는 커플들이었는데, 따라온 아줌마들도 아저씨들이 외간 여자의 부름에 "홀려" 돌아다니는 것을 눈에 "쌍심지" 켜고 뜯어 말리지는 않는 것 같았다.
그래도 감시도 할겸 아저씨들을 따라 나서긴 하던데....


사용자 삽입 이미지

내 앞에 누워 있던 커플. 그래도 그나마 가장 젊어 보였던듯...... 쩝..
그녀 마저 없었으면 시야가 아주 황량할 뻔 했었다.. ^^

사용자 삽입 이미지

남자랑 바꿔 누우면 목 안아팠을 텐데..아.. 그럼 내가 못 보는구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