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0월 27일 화요일

게릴라 뮤지컬 & 플래쉬 몹: 새로운 시위 문화의 탄생?

어제 오래만에 아침밥을 먹으며 CNN을 보는데, 재밌는 보도가 눈길을 사로 잡았다.

요즘 미국에서는 오바마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하는 의료보험제도 개혁안과 그 내용을 이루는 "Public Option"이 주된 정치 이슈가 되어가고 있는데, 그 주된 내용의 하나가 의료보험회사들의 영업활동을 정부가 관리 감독 및 통제하는 하는 것이다. 당연 보험회사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고, 신자유주의자들과 조세저항층의 입장을 대변하는 이들이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개혁안의 부결을 위해 힘쓰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의료보험 제도 개혁과 Public Option 의 관철을 원하는 여러 단체들의 활동 또한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미국적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많은 시민단체들이 정부의 의료 보험개혁안을 지지하며 담론의 공간에서 "보수의 역습"에 맞서고 있다 (한국에서는 보수단체들이 "진보의 부활"에 맞서고 있는 형국이지만).
그러나 정권이 더이상 공화당 손에 있지 않기에,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시위를 하기에는 딜레마가 좀 있고, 서로 다른 "입장들"을 가진 집단들이 공론의 장에서 반목하며 대리전을 펼칠 때는 "반정부"시위와는 다른 복잡한 양상을 띄기도 한다 (이 고민을 박정희시대 마인드로 하고 있는게 한국의 보수단체들의 최근 행각들이다).

다시 보도로 돌아가면, 일단의 시위대가 오바바 정부의 의료보험 개혁안에 반대하는 미국의 대표적인 의료보험 로비단체의 행사장에서 "깽판"을 쳤단다. 그런데 그 "깽판"의 방식이 사뭇 신선했는데, 단상을 향해 소리치고 달려드는 그런 방식이 아니었다. 행사 중간 갑자기 뮤니컬 Annie 의 노래들을 개사한 노래를 부르며 퍼포먼스를 펼쳐 언론의 관심을 끌어내고 "로비단체"의 반개혁적 활동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환기시켜내는데 성공했다고 한다.

Guerrilla Musical at America's Health Insurance Plan meeting, Washington D.C.


단지 무작정 비폭력 침묵시위를 하는 것이 수동적인 측면이 없지 않다면,
뮤지컬이라는 형식을 빌어 자신들의 주장과 행동을 미학적으로 "아름다운 것"으로 까지 격상시켜내는 효과가 분명 있는 것 같다. 이런 생각을 하다니! 정치적 활동을 하나의 "연희"로 조직해내는 그들 사고의 자유로움과 노력이 신선해 보였다.

사실 의료보험제도 개선과 관련된 시위에서, "정신과" 혹은 "외과"적 응급치료가 필요한 상황이 만들어진다면 그건 또 얼마나 아이러니 할 것인가?
주장의 내용과 그것의 표출 방식을 진지하게 고민함으로써, "시위 관성"에 빠지지 않았던 이들의 활동 결과 나마저도 경건한 "청자"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CNN 보도에도 있었지만, 이런 새로운 방식의 시위의 전례로는, 지난 8월 미국의 유기농 상품 마트 체인인 Whole Food 에서 있었던 Flash Mob 뮤직 퍼퍼먼스가 있었다.

Operation Hey Mackey at Whole Food, Okaland, CA

Whole Food 공동 설립자이자 CEO인 John Mackey 의 월스트리트 저널 기사: http://online.wsj.com/article/SB20001424052970204251404574342170072865070.html

우리도 언젠가 이런 신선한 방식의 시위들이 보다나은 세상을 위한 새로운 꿈들이 발현되는 곳곳에서 등장하길 기대해 본다.


2009년 10월 26일 월요일

Ballad of Janek Wiśniewski - "바리케이트" 원곡

90년대 초반 "좌파운동권"의 시위 현장에서 불려졌던 노래 중에 하나로 "바리케이트"란 노래가 있었다.
"바리케이트 넘어져 넘어..."로 시작하는 노래는 운동권 가요 특유의 비장함을 지니고 있었는데, 왠지 한국적이지 않았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폴란드 감독 안제이 바이다에 관한 다큐에서 익숙한 노래를 듣게 되었는데, 그제세야 한국의 "바리케이트"가 폴란드 영화 "철의 사나이 Man of Iron"에 삽입된 노래이며, 1970년 국가 권력에 의해 살해된 18세의 노동자를 기리기 위한 노래라는 것도 알게되었다.

유투브 검색을 하다가 그 노래가 나오는 영화 클립을 찾았다.

80년 광주의 전남 도청에서 신군부의 총에 맞아 쓰러진 윤상원 열사와 노동자 박기순의 영혼 결혼식에서 처음 불려졌다는 "임을 위한 행진곡."
그 노래를 불렀다고 "전국 공무원 노조"를 수사하겠다는 한국인데...거참...

2009년 10월 23일 금요일

"Homo Sex is Sin!" : Anti-Gay Rights Protesters

각 보수 교회 단체에서 나온 반 동성애 시위대의 모습.
한국의 보수단체들이 할아버지와 전역군인들을 내세워 물리적으로 "깽판"치길 일삼는 반면에, 적어도 이들은 즉석 거리 토론이라는 방식으로 서로의 차이를 확인했다.

동네 복덕방이나 공원에서 장기판 뒤엎는 "플레이"를 어디서나 하시진 않으셨으면 좋으련만... 

"우리는 호모를 싫어하지 않는다!" 다만, "신께서 죄악을 싫어하신다(?)"
죄는 미워하나 사람은 미워하지 않는다는 교리(?)의 실천인 듯.

죄악을 기록하시는 21세기 사도의 자세? 한손엔 비디오 카메라를!

로마서가 땅에 떨어지긴 하였네요.

"회개" 티셔츠를 입은 "이사야" 추종자
"남이야 뭐라던 네 갈길을 가라 ?!!!"


잠깐 Bible Study:

Romans 1:27


In the same way the men also abandoned natural relations with women and were inflamed with lust for one another. Men committed indecent acts with other men, and received in themselves the due penalty for their perversion.
 Jude 7

      just as Sodom and Gomorrah and the cities around them, since they in the same way as these indulged in gross immorality and went after strange flesh, are exhibited as an example in undergoing the  punishment of eternal fire.

1 Corinthians  6:11

 And that is what some of you were. But you were washed, you were sanctified, you were justified in the name of the Lord Jesus Christ and by the Spirit of our God.

 그나마 "구원의 길을 제시하심"에 기뻐해야 할까?



NC Pride 2009 #9

엘리트 호모섹슈얼들은 주로 Whole Food 에서 쇼핑한다더만...
도시 서민의 벗 Food Lion 도 어쨌든 "Gay Rights"와 함께...

부동산 업자도 함께

남부의 특징일까? 교회도 "여러분"과 함께

NC Pride 2009 #8





Brides for equal rights #2

우리에게도 결혼할 권리를!
개인적으로는 가장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Gay Right Movement 의 하나지만, Tax 등 각종 국가, 주정부 Benefit 이 결혼한 "가정"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이해도 가능하다.

"그들도 결혼 하게 해주세요!"
그렇게 하고 싶다는데!





Brides for equal rights #1









NC Pride 2009 #7





2009년 10월 22일 목요일

미국에서 인류학을 전공한다는 것....

인터넷을 돌아다니다가 흥미로운 통계하나를 봤다. (아~ 이런걸 흥미롭다고 하긴 해야하나?)

미국의 대학에서 전공에 따라 졸업 후 연봉의 차이를 보여주는 통계다.

한국사람들의 기대와 상상력을 크게 벗어나는 통계치는 아니지만, 적어도 미국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은 같다.

역시나, 연봉으로 순위를 매긴 상위 10개의 전공에 경제학을 제외한 그 어떤 인문, 사회과학도 들어있지 않다.

DegreesDegrees
Methodology
Annual pay for Bachelors graduates without higher degrees. Typical starting graduates have 2 years of experience; mid-career have 15 years. See full methodology for more.




그럼 인류학은 어떨까?

출처: http://www.payscale.com/best-colleges/degrees.asp

그래도 미국이어서 예상을 깨고 상당히 높은 순위(?)에 올라 있다. 패션디자인 보다, 심리학보다, 사회학이나 교육학 보다는 나름 돈을 잘 버는 인문/사회과학 전공이 인류학일 줄이야. :)

미국에서는 법대, 의대, 한의대, 치대, 수의대등등이 학부에는 설치되어있지 않았기에 통계에서 제외되었고, 이 통계가 학사학위만 가진 사람들, 그러니까 석사나 박사학위를 해당 전공에서 이수한 사람들은 배제한 것이니 만약 포함한다면 순위가 뒤바뀔 공산이 크지만 어쨌든 흥미로운 통계이긴 하다.

벽창호 같은 소리라고 무시당하겠지만, 제발 이런 통계에 의지해 전공을 결정하지는 않았으면 한다. 평균값 인생이라도 하고 픈 욕망을 모르는바 아니나..
보험들 듯 경제학 부전공이라도 하려고 애쓰는 아이들,
전공 결정즈음해서 대학을 고등학교나 학원 드나들 듯 하는 부모들을 보면 정말 "토 나온다!"

2009년 10월 20일 화요일

Drag Queen

Duke LGBT








Jesus in Roller Skates














NC Pride 2009 #6












U-HAUL & BEST BUY in NC Pride 2009

동성애자들의 벗으로 참가한 U-Haul 과 Best Buy ...
Food Lion도 있었다.




죽은 정권 "불알" 만지기

조기숙 선생이 글을 썼다. 나름 정치학자로서 자신이 훈련받은 "과학적"방법으로 그녀가 피곤스러워 하는 "최장집사단"을 논박하는 글이다.

오마이뉴스기사

나는 그 "사단"을 집합적으로는 잘 모르지만, 어쨌든 "최장집 사단"의 논점이 조선생이 보기엔 "노무현 때문에 이명박이 당선되었다"는 것이란다. "노무현 정권의 신자유주의적 정책이 결국 보수정권의 탄생을 도왔다"가 그 내용이고 말이다.
사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의 보수정책이 "이명박정권"의 탄생을 도왔다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실제로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건 좀 내용이 복잡하다. 적어도 보수층에서는 "김영삼 때문에 김대중이 당선되었다"고 공공연하게 주장하지는 않으니 말이다.

문제를 좀 단순화 시켜보면, 일단 시민주권인가 하는 단체와 최장집 사단이라고 불리우는 학자들 모두가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사실은, "노무현 "다음에" 이명박이 당선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껄끄러운 이야기지만, "김대중 "다음엔" 노무현이 당선되었다"도 함께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 두가지 사건사적 연속과 불연속 사이에 얼마간 정서적이고 과학적인 분석이 또아리를 틀 여지가 있지 않나 싶다.

사실 통사적 의미에서 "다음에"도 중요한 주제임에도, 조선생이 특별히 화가 나는 대목은 "때문에"이다.
그리고 목소리를 높이지는 않지만, 그 순간에 "김대중 "때문에" 노무현"도 함께 부정된다.

그녀 스스로 인정하듯 선거결과"만"을 가지고 이전 정권에 대한 평가를 하기란 쉽지 않고 올바르지도 않다.
조교수에 따르면 "정치과학적 방법"에서도 그러하다고 한다.
그건 마치 경제학이 합리적 개인을 시장의 주체로 설정해 분석하다가 부딪치는 딜레마와 별반 다르지 않은데, 유권자가 "이성적"으로 투표하지 않는 순간 사실 정치과학적 방법이란 기본적으로는 "정감록" 혹은 주역"이나 "타로점"의 다른 이름이고, 그것이 만들어내는 통계적 그래프는 "손금읽기"와 비슷한 것이 되는 것이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한데 어쨌든 재밌는 것은 그 쉽지 않은 인과적 결과가 "추론"될 만하다고 "정치학자들"이 그것도 진보적인 학자들이 주장하고 나서고 사람들도 대체로 동의하는 상황이 존재한다는 데 있다.
그리고 이 문제의 정치 논리와 정서의 한 축엔 왜 "김대중 다음엔 노무현이었는데, 노무현 다음엔 이명박이냐"하는 어떤 사건사적 단속(Short-cut), 다시말해 불연속이 만들어낸 인지적 여백이 있다. 의지가 증발해버린.

노무현 "신봉자"들은 이 "단속"의 기저에, 대체로 노무현 같은 후보가 노무현 이후에 성장하지 못하였음을 개탄한다. 일리가 있는 말이지만, 그렇다면 "이회창"이후의 "이명박"이 뭔가 한국사회에 대단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 후보라는 사실에 대한 평가를 함께 해줘야한다. 한데 이건 동의하기 힘들다. 그래서 문제는 "차악"의 선택을 혹은 "허무주의적" 선택을 가능하게 만든 조건을 설명해야하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대체로 "언론"과 "시민사회" 혹은 "진보진영" 전체를 탓한다. 이전 정권을 다들 못잡아 먹어 안달이었다는 것이다. 거칠게 말하자면, 노무현정권은 문제가 없지만, 국민과 사회를 잘 못 만난 탓이다. 아마도 "시민주권"이란 단체는 그런 인식에 바탕하고 있는 것도 같다. 이제 새로운 국민을 "뽑자"는 사고 말이다.

"최장집 사단"을 논박하며, 조교수는 다음과 같은 가설을 내세운다.
"만약 이명박정권의 출범이 노무현정권 때문이라면, 노무현 정권의 주된 지지층이 이명박에 투표하는 것으로 이동했을 것이다."
그러면서 이명박을 지지하는 층은 그저 안정과 보수를 지향하는 저소득층과 고소득층등 "고정 보수층"에서 크게 벗어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언급한다.

둘째, 중산층 서민이라고 할 수 있는 가구소득 150만에서 250만 원 사이의 유권자의 투표행태를 살펴보았다. 이들의 수가 작기는 해도 새로운 지지층으로 가장 많이 유입되었다. 또한 노 후보의 충성스러운 지지층은 이 집단에 가장 많다. 따라서 이들의 두 번째 가설 또한 틀렸음이 증명되었다.

 

셋째, 고소득자는 원래부터 주요 지지층이 아니었지만, 250만에서 400만 사이의 중산층은 가장 많은 사람이 지지층에서 이탈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러한 결과는 2008년 8월 <내일신문> 조사에서도 뚜렷이 발견된다. 소득이 올라갈수록 노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부정적이었다. 과거에 소득이 투표 행태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던 한국의 선거 연구에서 이는 매우 이례적인 발견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고소득자가 도덕적 이유에서 양극화를 해결하지 못한 노무현 대통령을 심판했을 가능성과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해 세금을 올린 노 대통령에게 등을 돌렸을 가능성이다. 어느 쪽이 더 그럴듯한 설명일까? 필자는 후자라고 생각한다

중산층 서민이란 애매한 규정도 문제지만, 정작 "블루칼라"들은 노무현 정권에 대한 평가에 부정적이었음을 간과해 버린 자의적 해석은 문제적이다. "화이트 칼라 중산층 서민"이 "그나마" 긍정적 평가를 해줬다는데 열광하는 것도 안쓰러운 일인데 말이다.
이 자의적 평가는 그 다음의 평가에서 고소득자와 중산층이 혼용되며, 난데없이 "세금 부담"에 대한 "합리적 판단"을 한 유권자층이 존재함을 지적하는 대목에 가면 더더욱 그 신뢰도가 의심스럽다. 자의적 통계 해석으로 보다 나은 삶의 질을 꿈꾸는 많은 사람들이 졸지에 "조세 저항층"이 된 셈이다. 대공장 노동자의 연봉이 5천만원정도가 된다는 한국사회에서 고소득층의 조세저항이 아닌 그 "중산층 고소득자"가 가장 고통받아야하는가라는 문제는 안중에도 없고 말이다.

아마추어들이 하는 산술적 비교를 한번 해본다 해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다.
2007년 대선 득표율을 보면 이명박 48.7% 이회창 15.1%, 합하면 63.8%가 이른바 "정통 보수"와 함께 했다.
정치과학자들에게는 문제적이겠지만,
어쨌든 단순 비교를 해보자면,
1997년 대선에서 이회창 38.7% 이인제 19.2% 합하면, 57.9%가 "정통 보수"층을 지지했다.
2002년 대선에서는 이회창이 46.6% 을 득표했다.

그랬던 보수지지층이 2007년 대선에서 무려 15% 이상 차이가 나게 커진 것을 이전정권에 책임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너무한 논리적 비약이다. 그사이 고소득 층이 15% 이상이나 늘었나? 그래서 조세저항층이 더욱 커지게 된 것이 한국 사회인가?

한가지 가능성은, 우리 사회가 적극적 투표층에서 15%나 되는 고정적 부동층이 존재하고 그들은 대체로 "무뇌증"을 앓고 정서적으로만 정치를 이해한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일이겠지만 그건 인격적 모독이다.

화이트칼라 고소득 층이 노무현의 과감한(!) "복지정책"추진으로 등을 돌렸다고 말하지만, 저소득층을 정권 지지층으로 끌어오지 못한 복지 정책이라는게 뭐가 얼마나 과감한 결단이었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수단이 없었다고 말하지만, 국민이 최초로 소수였던 여당에 선거를 통해 과반의석까지 만들어주었던 역사는 없다. 기간이 짧았다고 말하지만, 미래에 대한 희망을 공유하지 못했다면 참여는 커녕 공유도 못한 정권이었음을 인정하는게 맞다. 정치는 그 기본이 "미래"에 대한 비젼으로 출발하는 것 아니던가?

지금와서 노무현 정권이 잘했네 못했네 하며 이명박 정권은 노무현 탓이네 하는 것은 우스운 문제 설정이다. 만약 "최장집 사단"이 그랬다면 잘 못이다. 노무현정권이 "삽질만"한 것이 아닌 건 분명한 사실이고 그사이 진보진영도 손놓고 정권만 쳐다보고 있었던 것도 사실 아닌가?

그런데 그렇다고해서, 노무현 정권은 누구보다도 "잘 할려고 했었다"로 자꾸 문제를 환원하는 것은 현실정치에 아무런 도움이 안된다.
"왜 안되었는가?" 혹은 "어떤 실수가 있었는가?"를 정권의 핵심에 있었던 사람들이 진지하게 평가하고 반성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래야 조선생 말처럼 "근거도 없이 비난하는" 다른 정치그룹들도 귀를 기울이고 배우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요는, 선거하고는 하나도 관계가 없다는 노무현 정권에 대한 평가가 추모하고는 관계가 있다고 주장하는 식의 논지를 펼치는 황당함을 전 정권에 참여했던 정치과학자가 보여주면 민망하다. 그럼 최근의 이명박에 대한 지지율 상승은 또 어떻게 설명하시려고 그러시나? 사실 정치라는게 관계를 설정하는 것이 주된 임무 아닌가? 있어도 없는 것 처럼, 없어도 있는 것 처럼. 특정관계가 더 중요하거나 그렇지 않다고 주장하고 활동하여 "진리"를 생산해가는 과정이 아니지 않느냐 말이다. 왜 민초들이 지난 선거에서는 지난 정권의 업적을 직관적으로 그리고 총체적으로 파악할 수 없었는지도 설명하지 않으면서, 이렇게 느닷없는 어거지를 쓰면 이래저래 부끄러운 일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를 수많은 시민이 추모하자 엘리트들이 깜짝 놀랐다. 자신들의 주장이 틀렸기 때문이다. 우리는 전혀 놀라지 않았다. 이미 2008년 8월 노 대통령에 대한 긍정적 평가는 45%를 넘어섰고 그 후에도 상승세를 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이번에는 추모와 평가는 별개라고 주장한다. 엘리트들에게는 별개일지 몰라도 민초들은 대통령의 업적을 직관적으로 그리고 총체적으로 파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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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숙 교수가 한다는 시민주권이 미국의 Move-on 이란 단체를 벤치마킹 하려고 한다고 이해찬씨의 인터뷰에서 보았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미국의 Move-on 은 사실 세금 정책에 민감한 화이트 칼라 층이 주를 이루고 있고, 무엇보다 조 교수나 일부 극단적 "노빠"들 처럼 "죽은 정권 불알 만지는"식으로 조직되고 활동하는 단체가 아니다.
미국에서 Move-on 의 정치적 성장 과정에는 역설적이지만, 노무현정권이 제대로 다루지 못한 "이라크 파병"문제가 있음도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 백악관에서 나온 사람들이 만든 단체도 아니고 말이다.
애초에 그런 정치적 목표가 전정권 참여자들과 극렬 "노빠"들에게 있는가 물어볼 대목이다.

미국 이야기 한김에 하나 더 해보자면, 지미카터가 레이건의 시대를 몰고 왔던 것을 지미카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도 우습지만, 지미카터가 잘했는데도 그렇게 됐다고 말하는 건 더더욱 우스운 일이다.

김영삼이 자꾸 주장하듯, 최초의 문민정부로 여러 개혁적인 정책을 실시했는데 야당이 발목 잡아서 IMF가 오고 말았다와 내용은 다르겠지만 현재의 "시민주권 사단"은 얼마나 다른 논리 구조를 가졌는가?
그래도 보수는 김영삼 탓은 안하더라고 진보정당 계열의 학자들에게 말하고 싶은가?

도대체 왜 자꾸 "죽은 정권"을 고이 떠나보내지 못하는가?
그게 오히려 "객관적" 평가의 길을 열게 될 것인데도 말이다.

국가보안법 철폐 하나 못하고, 이라크 파병에 당당한 목소리 한번 내지 못하고, 그들의 지지층 "화이트칼라"를 부동산과 펀드 광풍으로 몰아넣은 정권에, 사람들이 정치적 "큰" 희망을 접었던 것은 최소한 정서적으로는 분명한 것 아닌가?
그렇게 오매불망 지역적 정치구조 재편을 부르짖었음에도 서민들이건 민중이건 화이트 칼라건 지역갈등을 뛰어넘는 정치적 아젠다 하나 제대로 설정하지 못했던 것은 사실 아닌가?
보수정권이 집권한지 불과 1-2년 사이에 전두환 박정희 시대로 되돌려질 사회고, 정치구조라면 애초에 뭐 하나 제대로 바꿔놓은 것이 없지 않은가라는 외침이 거북하겠지만, 겸허하게 들을 필요는 있는 것 아니겠는가 말이다.

답답한 일이다. 조기숙 교수의 충정과 의리를 높이 사긴 하고, 노무현 정권 때리기도 이제 지긋지긋 하지만, 지금 이런 식의 논쟁이 더 필요한 것은 아닌 것 같다.

대통령까지 지낸이가 "정치하지 말라"는 자조를 펼쳐놓고 떠나버린,
황량한 세상에서 희망은 실패로 부터 배우는 과정에서 나오는 것이지,
최소한 실패의 미화에서 시작되는 것은 아니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