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내가 김제동을 특별히 좋아해 왔다고는 말 못하겠다.
그가 처음 윤도현의 러브레터로 혜성처럼 등장했을 때, 그의 신선함에 강한 인상을 받았던 것은 사실이나
그가 여러 연예프로그램에 얼굴을 알리며 점차 주류로 편입되어 전성기를 구가할 무렵,
나는 채널들을 장악한 "버라이어티쇼"들에 얼마간 넌더리가 나 있었기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또다시 "혜성처럼" 등장해 "주류의 궤도"에 안착한 모모한 연예인의 궤적을 본 것이라 생각을 했던지 낯익어진 그의 잦은 등장에 때론 시큰둥 해지기도 했었다.
가끔씩 한국에 들어갈 때 텔레비젼을 통해 본 그의 모습은 가끔은 부담스럽기까지 했던 것도 같다.
그것은 아마도 그가 늘어놓은 교훈적인 언설들과 착한 남자 이미지가 "도덕교과서"를 다시 펼치는 듯한 어떤 강박을 주었기 때문인 듯 싶다.
솔직히 나는 여러 인생역정을 거쳐온 그가 기존 질서에 좀 더 덜 마모된 거침을 대중에게 선사하길, 단지 자신의 준비된 플롯들을 매끈하게 완성해가는 사람이기 보다는 대중들과 좀 더 적극적으로 호흡하면서 세상에 "자극적인" 메시지들을 던지기도 하고, "해우소"와 같은 어떤 시원함을 웃음과 더불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그렇게 지난 몇년간 "버라이티과" 연예인 중의 하나로 그를 생각하고 있던 차에, 올 초 그가 노무현 대통령의 노제에서 사회를 맡는다는 소식을 멀리서 전해 들었다. 사실 조금은 당황스러운 소식이었는데 아마도 그가 "웃음을 파는 것"을 업으로 하는 사람이라는 내 선입견이, "분노"와 "슬픔"이 교차하는 노제 사회로는 그가 부적절하다고 느끼게 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는 달랐다. 상투적인 세간의 우려와 논쟁을 뒤로하고, 서울시청 광장에서 그가 "삶"들을 대변해 들려 준 언어적 살풀이는 굳이 홍사덕 같은 이의 입을 빌지 않아도 그 누구도 하기 어려운, 신금을 울리는 진혼곡이자 희망을 부르는 주술이었다.
"대구구장 무명 장내 아나운서"에서 공중파를 넘나드는 인기 방송인으로, 그리고 다시 전직 대통령을 떠나보내는 노제의 사회자로 마이크를 잡고 사람들을 만난 그는, 실소와 허탈이 지배하고, 분노와 슬픔이 삶의 광장에서 짓누르는 세상에서, 함께 마음껏 웃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가자고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김제동은 내가 한때 폄하했 듯, 단순히 웃음을 팔아 개인적 성공기를 써가는데 급급한 사람이 아니라 함께 웃을 수 있는 세상을 고민하고, 삶 속에 웃음이 자리 할 공간들을 찾고 있었던 그런 사람이었던 것이다.
한데 그가 갑자기 방송에서 퇴출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병순과 KBS가 고작 "비싼" 그의 출연료를 이유로 드는 것을 보면, 상투적인 시청률 하락도 그 이유가 아닌것 같은데 말이다. 그것도 노무현재단 출범 공연에 참여했다는 기사를 읽은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서.
말이야 바른 말이지, 가장 퇴출되어야 할 것은 "비싼" 연봉 받고 공영방송으로써 KBS의 신뢰도를 떨어뜨린 이병순이 가장 먼저 퇴출 되어야하고, 예산 절감과 구조조정을 위해 광고라도 하나 더 딸려면 혐오프로그램인 MB의 라디오 연설을 먼저 폐지하는게 맞는 것 아닌가?
정권이 쥐어준 "칼자루"만 들고 "비싼"자리에 앉아있는 사람들이, 정권에 손쉽게 보답하고자 하는 천박함을 드러내는 모습은 말할 필요도 없이 토할 정도로 추하다.
하지만, 단지 김제동의 퇴출이 다가 아니라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도 있어보인다.
"광우병 파동" 이래 깜짝 놀란 MB와 보수정권이, 방송미디어와 대중연예인의 사회적 영향력에 대한 정권의 통제를 다양한 "목표물"들을 설정해 구체적으로 진행해 왔음은 이미 주지의 사실이다. 그에 덧붙여 이젠 대중예술인들을 정권의 "딴따라" 혹은 침묵의 "꼭두각시"로 다시 되돌리려는 "훈육 시도"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김미화 교체논의, 김민선에 대한 고소 등등에서 이제 김제동의 퇴출로, 또 그 다음으로...
김제동의 기획사 대표가 아고라에 썼던 것 처럼, 어쩌면 TV와 라디오에 지배당한 대중 지성들이 수동적 소비자 혹은 리모콘 지배자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딴따라"들과 미디어 밖으로 밀려나는 "대중예술인"들을 미학적으로 구분할 필요가 절박하게 요구되는 상황인지도 모른다.
한편에서는 세상의 흐름속에서 삶들과 만나 호흡하려는 대중예술인들도 "기성미디어"들을 통한 손쉬운 대중접촉의 관행에서 벗어나 본격적으로 대안 미디어의 개발과 적극적인 대중접촉으로 나아가야 할 필요가 있다.
스스로의 운명을 한갖 정권에 의존한다면 그것이 어디 예술이겠는가?
초심으로 돌아간다는 상투성을 대신해 미래로 달려갈 용기를 갖는게 더더욱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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