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20일 일요일
세월호 사고와 국가-사회
닷새전 진도해상에서 발생한 세월호 침몰 사건으로 한국사회가 큰 충격속에 빠져있다.
며칠째 온라인으로 제공되는 뉴스속보를 지켜보고, 각종 기사들을 읽고 있는 나도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현재 알려지고 있는 실종자들의 숫자들을 지켜보면서, 도대체 왜 그 많은 사람들이 잔잔한 한반도 근해에서 그것도 해떠오른 아침에, 허무하게 두시간만에 사람들의 눈 앞에서 바다속으로 빨려들고 말았을까 하는 생각을 떨어내기란 좀 처럼 쉽지가 않다. 배에서 먼저 내려버린 선장과 승조원을 원망하는 것으로 해소될 분노가 아니고. 기적적으로 구조된 한명의 생존자를 보고 채워질 허탈함도 아니다. 어떤 사고의 공간. 머리를 가득채워버린 차오른 바닷물을 비워내고 현실을 냉정하게 바라볼 여지를 만들어내는 것이 필요한 것 같다.
오늘날 사회에서 대형 사고들은 일상의 한 부분이 된 것이 사실이다. 사고를 막으려는 노력이 끊임없이 지속되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사고를 막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커져 갈수록 단일한 사고가 만들어내는 충격과 파장의 크기도 함께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효율성의 문제가 여전히 핵심적이고 경제성에 대한 고려를 기반으로 구축된 영역들 예를들어 주거공간이나 일터 혹은 이번처럼 대중교통수단에서 발생하는 사고들은 삶을 근간이 흔들리는 충격을 준다.
실상 오늘날 모든 사고에 대해 "어쩔 수 없다"고 체념하기란 쉽지가 않다. 대부분의 사고들은 인재로 간주된다. 그리고 인간의 실수는 사후적으로 연역되어 규정된다. 세월호의 경우에도 수많은 문제가 중첩된 것이나, 사고가 나기 전까지는 아무도 문제 삼지 않았다. 선체결함이나 안전수칙 미준수등은 사고가 나기 전까지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이를테면 해운사의 누적된 부채보다도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래서 문제로 간주되지 못했던 것들이 문제시되기 위해서는 사고라는 스펙타클이 필요했던 것일 수도 있다. 사람들은 어쩔 수 없었던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대체로 어쩔 수 없다고 여기는 필연성을 통해 인과적으로 증명하고자 한다.
퇴선명령을 내리기도 전에 스스로의 삶을 구하는 선택을 해버린 선장은 적어도 그가 300여명의 생명을 물속에 수장시킨 희대의 "살인마 (혹은 원인제공자)"가 될 지는 몰랐던 것 같다. 그는 자신이 배위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하는 사람인지를 사건 속에서 망각해버린 것 같으니 다른 존재로 재규정 되는 것은 그다지 신기한 일은 아니다. 선장의 업무에 이미 사고라는 예외상태가 포함되어 있는 것이고, 그/녀가 배 안에서 지닌 특별한 권위와 지위는 그것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었는데, 그/녀는 그것을 버림으로써 새롭게 규정되어야할 사람이 되었다. 앞으로 선장과 승조원들의 사고의 상황에서 어떻게 대응했는지에 관한 보다 자세하고 다양한 내러티브들이 쏟아져 나오겠으나, 개인의 생존과 집단적 삶이 충돌하는 특정한 상황에서 상황논리와 법적, 윤리적 논리가 충돌하는 문제에 대해 숙고를 해봐야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현재까지 나온 선장의 주장에 따르면, 역설적이게도 "승객의 안전을 위해서 즉각적인 퇴선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고 하고, 그것은 적어도 그 순간에는 어느정도 타당한 것일 수도 있는 문제가 있다. 이것은 결국 상황에 대한 대응은 판단의 문제라기 보다는 "행위적"인 문제라는 것, 여전히 사회는 그것을 어떻게 예측가능하게 만들고 당위적으로 만들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하게되는 것임을 다시금 확인시켜주는 것일 수도 있다.
Most countries do not explicitly state that a captain must be the last person to leave a distressed ship, experts say, giving captains the leeway to board lifeboats or nearby ships if they can better command an evacuation from there. South Korea’s law, however, appears to be explicit, allowing the authorities to arrest Mr. Lee for abandoning the boat and its passengers in a time of crisis. An international maritime treaty known as the Safety of Life at Sea — first adopted in 1914 after the Titanic disaster — makes a ship’s captain responsible for the safety of his vessel and everyone on board. A later version of the treaty said that passengers should be able to evacuate within 30 minutes of a general alarm.
http://www.nytimes.com/2014/04/20/world/asia/in-sad-twist-on-proud-tradition-captains-let-others-go-down-with-ship.html
이번 사고에 대해 한국 국민들이 충격에 빠지게 된 것은, 마치 뉴욕의 9.11 사태에서 처럼 수많은 실종자들의 최종적인 순간을 생생하게 목도하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는 허탈감과 자괴감에 있지 않을까 싶다. 물론 911과는 다르게 세월호 사건에서는 사고 상황에 뛰어든 "구조요원"의 희생이 추가적으로 발생했다거나 불가항력적인 상황 자체로 인한 충격보다는 충분히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구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집단적인 죄책감의 시간이 사고의 시간안에 상당히 길게 열려 있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죄책감은 초기 구조상황 보고에서 정부가 보여준 오류와 우왕자왕하는 모습, 에어포켓이라는 희망을 제시하면서도 구체적인 구조능력 부재를 보여준 국가로 인해 분노로 전환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전체적 패닉상태에 빠진 국가-사회의 장기지속은 피해를 입은 가족들이나 생존자 구조를 염원하는 사람들에게 슬픔을 감내하는 것과는 다른 국가-사회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특별히 이번사건은 역사상 유례없는 학생들의 집단적 희생이 발생한 사건이라는 점에 주목해 국가-사회에 끼치는 큰 파장을 설명할 수도 있겠으나, 동시에 "단일사건"이 집단적 체험으로 전환되는 과정은 이번 사건이 지닌 "비정치성 혹은 담론적 공백"의 측면에서 조금 더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연안에서 발생한 선박 전복사고가 침몰사고로 발전해가는 동안 국가는 "가능한 모든 자원을 동원"하겠다고 선언하고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지만, 그 선언과 약속이 드러난 현실은 참담한 것이었다. 가능한 자원은 대체로 쓸수 없는 것이거나 통제 불능한 것이라는 사실이 드러났고, 최선의 노력은 최소한의 감동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지지부진한 구조활동의 시간이 다하고 인양작업으로 전환되는 순간에 국가-사회는 붕괴된 신뢰의 복원을 위해 여러가지 담론기제를 동원할 것은 자명하다. 새로운 법령들과 체계마련에 대한 약속이 뒤를 이를 것이고, 선장-승조원-선박회사-감독기관에 대한 대대적인 단죄가 이루어지는 한편에서 영웅적 미담 또한 등장하게 될 것이다. 국가의 입장에서 보자면, 국가가 미담의 한 축을 담당하거나 북한처럼 분노를 손쉽게 채널링할 수 있는 방법을 가지고 싶을 것이나 이번 사고의 경우에 둘다 힘들어질 수도 있다.
사실상 기적을 바라는 마음마저 잦아드는 시기가 된 상황에서, 재난의 수습은 대체로 새로운 설명법이 만들어지고 새로운 약속과 사회적 계약이 만들어지는 방식으로 진행된다는 점을 상기해 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개별 피해자와 가족들의 분노를 집단적인 분노와 분리시켜내려는 시도가 있을 것은 자명하다. 사태의 수습은 여객선을 인양하는 시간보다도 훨씬 더 긴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 자명하다. 한국사회처럼 "경제발전"의 신화에 잠식되고 사회 정치적인 보수화가 반북논리를 통한 국가주의로 수렴되고 있던 상황에서, "예견된 재난"으로 인한 예기치 않은 변화를 어떻게 겪어 나가게 될 것인지에 대해 앞으로 주목해 볼 필요가 있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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