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럴까? 왜 그럴까? .... 이런 질문이 반복되기 시작하면, 어떤 일반적 추상이 반복을 통해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레베카의 마지막 수업에서 기말 페이퍼에 관한 그룹 워크샵을 하는데, 내 코멘트가 끝나자마자 갑자기 로리엔이 펑펑 울기 시작했다. 처음엔 내 코멘트가 부당하다고 느끼는 줄로만 알았는데, 조금 지나니까 그 이상이다.
결국 자기글이 말이 안된다는 것 아니냐고, 너네들이 괜찮다고 했던 것-미국에서는 다들 처음에 부드럽게니까-은 거짓말 아니었냐며 서럽게 울어버린 것이다.
나는 당황스러웠고, 내가 큰 잘 못을 한 것 같은 상황이 무척이나 부담스러웠다.
로시오와 아리엔이 수습에 나섰고, 로리엔은 얼마 후 안정을 되찾았으나, 나의 황당함은 여전히 남게 되었다.
전에도 한번 썼지만, 내 영어가 짧아 전후좌우 다 짜르고 요점만 간단히-이마저도 버벅거리지만-하다 보니 내 말투가 대단히 위협적으로 들리는 것은 나도 이해를 하겠다.
말도 못 하는게 자기 글에 문제를 제기한다고 생각하니 더 비참해 질 수도 있겠다. 입장 바꿔 생각해보면, 한국의 대학원에 유학 온 동남아 학생이 문법에도 잘 안맞는 말들을 늘어놓으면서, "네글은 좀 문제가 있다"고 한다면 얼마나 많은 한국의 대학원생들이 진지하게 그 코멘트를 받아 들일지는 뻔하다고 볼 수 있으니까 어쩌면 내가 도발을 한 것일 테다. 그래도 어쩔 것이냐, 천성이 그런데. 내가 무슨 봉건 왕조체제, 식민지 체제에서 공출 당해 온 사람도 아니고, 말은 못 해도 몸이라도 써주고 얼굴 근육이라도 움직여가면서 느낌을 전달해 주는 것이 그래도 일정하게는 동료의식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그게 가끔은 아닌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내가 이른바 북아메리카 여인네들을 "울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98년에 캐나다에 있을 때, 학원의 여선생이 너무나도 정신이 없어보여서 수업시간에 좀 문제를 제기했더니-내 딴에는 다른 애들을 대변했다고 생각했는데-그 여선생 갑자기 강의실을 뛰쳐나가 학원 화장실에서 건물이 무너져라고 소리를 지르면 꺼이꺼이 울어댔다. 그때의 민망함은 이루 말 할 수 없었고, 나는 자의반 타의반으로 전반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작년에는 과 동기로 부터 위협적이란 소리를 들었고, 오늘은 또 한 여자가 나 때문은 아니겠지만, 내말 다음에 어쨌든 울기 시작했다.
이렇게 쓰면 무슨 내가 새디스트 정도 되는 것 같은데, 난 별로 그런 SM 플레이 관심없다.
어쨌든 이 북미의 여인네들과 나의 묘한 관계는 내 입장에서 보면 그녀들의 비정상적 자기방어 감각과 내 어이없는 영어의 충돌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지만, 나는 더더군다나 미국식 립서비스, 사기진작 (Encouraging 을 뭐라고 해야하지?) 방식의 비판과 코멘트에 익숙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저항감조차 가지고 있다.
아닌 것을 아니다고 말하지 못하는 비정상적 소통관계는 사실 서로를 좀 먹는 것 아니겠는가?
물론 백배 양보해서 그러한 미국식 배려와 칭찬, 그리고 북 돋아주기는 개인에대한 무한한 신뢰를 표현하는 에티켓으로도 이해는 할 수 있다. 그러나 비판은 인신공격은 아니지 않는가? 무지는 비웃어도 사람은 비웃지 않는 것이 내 입장인데 좀 처럼 그러한 구분선을 상대방에게 전달할 자리는 없나 보다.
네 글에 이런저런 문제가 있다고 하는 것, 이러한 이론들을 한번쯤 고려해 볼 수 있지 않느냐고 말하는 것,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이러저러한 문제가 있다고 말하는게 도대체 무슨 삶의 "낭심"을 걷어찬 반칙을 한 것이라고 그러는 것일까?
환장할 저녁이다.
** "그녀들"이라고 범주화 시킨 것이 부당하고 골속에 박힌 섹시스트적 발상이겠지만,
뭐 또 "탈마초"적 "건강함"이 여기서 문제이진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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