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7월 18일 토요일

Twitter 라....

사실 온라인 네트워킹 서비스들을 좋아하지 않는 내게,
Twitter 는 Facebook 혹은 한국의 Cyworld의 진화 정도로 밖엔 보이지 않았는데,
이재오가 트위터질을 한다는 신문기사를 보고선 콧웃음까지 나왔다.
무슨 트위터로 고전을 출간하겠다는 기사도 덩달아 올라오고....

어쨌든 "정치. 상업 공간"으로써 활용가능성을 인정 받은 듯 하여, 구경은 이미 한번 했었는데,
140자로 세상의 사고와 언어를 재단하는 것이 거북하고,
저녁에 뭐 먹었는지 궁금할 만큼 온라인 네트워크가 나와 그들을 묶어내는게 부담스러워 창을 닫았었다.

그런데 얼마전부터 내 이메일 계정으로 메일폭탄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듣도보도 못 한 전세계 인들이 트위터에서 "나를 쫒고" 있다는데,
무슨 말도 안되는 스토킹일까 하다가도 귀찮아서 나두던 참에,
내가 가입을 했었을까 하고 접속을 해보니,
가입이 되어있단다.

혹시나 그때 시험삼아 가입을 했을까 해서,
내가 쓰는 비밀번호들을 집어 넣어보았는데도 접속이 안되기에,
메일로 비번을 새로 받아보니,
이건 왠걸... 인도네시아인으로 추정되는 인간이 내 이메일 계정으로 오랜통안 트위터질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이건 대부분의 "쫒는자"들이 인도네시아어로 포스팅을 해서 추정한 것이다.)
게다가 한국 연예인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을 줄줄이 엮어, 자기가 뭔가 대단한 한국 연예인 정보통인 듯 자처하면서.

더더욱 가관인것은 나를 "쫒고" 있는 인간들이 18명, 내 행세를 한 인간이 "쫒아가고 있는 인간이 88명"이나 되었다. 어이가 없어 말이 안나왔다.
트위터로 무슨 부귀영화를 본다고 남의 이메일 아이디로 계정을 만들것이며, 그래서 그 여성들과 "쫒고 쫒기는" 관계를 한국 영화배우 이름을 내걸어 만들어 뭘 어쩌겠다는 것이었을까?
자기 사진을 올려놓은 당당함은 또 어디서 나온 것이고 말이다.

자기가 만들고 싶었던 지메일 계정을 내가 선점했다는데 대한 보복일까?
거참. 알다가도 모를 세상이다. 뭘 그리고 엮이고 꼬이고 싶어들 하는지.
Twitter 탈퇴를 하려다가 그냥 나둘까 하고 좀 보았더니 이건 메시지 삭제도 힘들고, "쫒고 쫒기는 관계 청산"도 그리 쉬운게 아니다. 일단은 "현장 보존" 차원에서 놔둘까 한다.

그나저나 세상에 대해 너무도 진지한 한 선생님께서 친히 나랑 "엮어져 보자고" 트위터 초청 메일이 학교 메일로 왔던데 이건 어찌 처리해야하나?

인터넷 서비스 초청장 보내는 사람들은 그게 가끔은 느닷없이 청첩장 보내는 것 만큼이나 부담스러운 것이라는 것을 알고들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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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Twitter에 신고했나? 자기가 사기당했다고? 내 계정이 없어졌다. 잘된일이다 =>라고 썼었는데, 다시 보니까 삭제는 안되었다. 그만큼 내가 트위터질을 아직 잘 이해를 못하는 것일 뿐.

Famous People

Dai Dudu, Li Tiezi, and Zhang An, 2006, oil on canvas (클릭하면 크게 보임)


중국인 작가가 그렸으니 당연하겠지만, 다수의 중국인들이 포함되어있다.
물론 그림의 작가들도 직접 끼워넣는 것을 잊지 않았다. 결국 중국은 그림속에서 결정적으로 "쪽수"를 늘렸다.

개인적으로는 자서전적이라지만 실제인물이 아닌 러시아작가 니꼴라이 오스뜨로프스끼의 작품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었는가?"의 주인공 빠브카(빠벨) 꼬르차긴Pavel Korchagin 를 뽑고,  Lei Feng을 집어넣은게 인상적이었다.

레이 펑이야 중국인이 그린 것이니 그렇다치고,
아... 언제적 "강철은..."인가?
우크라이나가 전지현이 밭매고 김태희가 소끌고 한예슬인가가 풀뽑는다는 나라로 알려진 한국이 된 세상에서 "빠벨"을 기억하는 한국인은 이제 얼마나 남아 있을까?

누가 누가 있을까 확인하고 싶으면... 정답 (한명과 낙타에 대해서는 의견분분중)

Friedrich Engels


그때 그때 하려던 일들을 끝마쳐야 하는데, 자꾸 미뤄두는 버릇은 그것이 사이버스페이스라고 다르게 나타나는 것은 아닌가 보다.

엥 겔스 사진을 여기다 턱하니 올려 놓은 것이 지난 7월 18일(이글을 쓰는 오늘이 11월 18일)이니 벌써 네달전이다. 왜 엥겔스 사진들 들여다 봤는지 가물가물해질 법도 한데, 다행히 그렇지는 않아 이렇게 뒤늦게 나마 "기록"을 남긴다. 당대의 "꽃미남"이셨던 분이시긴 하나 뭐 그때문에 찾은 것은 아니었으니까.

기억을 더듬어 보면 어떤 신문에서 와인과 관련된 기사를 보았고, 미국에서 제법 저가 와인들 맛을 보고 살아온 터에 관심을 가지고 읽었는데, 그 내용중에 엥겔스에 관한 이야기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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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스의 딸 Jenny 가 1968년 엥겔스에게 오늘날로 치면 10문 10답과 비슷한 질문을 던지며 물었다.

"당신에게 삶의 행복이란 무엇인가요?"

펼쳐두기..


오호.. ~

참고로 엥겔스는 어린 Jenny 에게 세상에서 가장 비참하고 슬플때는 치과의사에게 가는 것이라고 답했다.

엥겔스가 부잣집 아들인 것은 알았으나 이런 취향까지?

와인을 좋아했던 엥겔스였기도 했지만, 사실 이 답은 얼마간 1848년 독일혁명의 기억과 맞닿아 있던 것도 사실이고, 그 혁명의 실패이후 "훌륭한 와인과 여자들을 찾아" 프랑스 보르도 지방으로 여행을 떠났다는 그의 기억과 맞닿아 있을 것이었다. 사실 부분에서 갑자기 엥겔스가 부러워지기 까지 했다.

출처: http://redbeans.egloos.com


Friedrich Engels, left, and Karl Marx with three of Marx’s daughters, from left, Laura, Eleanor and Jenny, in 1864. (출처: http://www.nytimes.com/2009/08/19/books/19garner.html)


개인적으로 엥겔스는 내게 특별한 사람이기도 하다.
 
내가 대학에 들어가 쓴 첫번째 보고서가 그의 책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에 관한 것이었다.
아직 컴퓨터나 워드프로세서가 대중적이지 않아 많은 과제물이 손으로 직접서서 제출 되던 그 시절에,
아래아 한글 1.5 버젼으로 난립한 오타들과 더불어 제출한 그 보고서에서 나는, 
인류학도 맑스주의자가 해 볼 만한 학문이라는 사실을 나름 역설하고 싶어했던 것 같다.

오늘날에야 엥겔스의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이 사적유물론적 거대서사에 기초한 역사-사회-문화 발전론으로 도매금에 넘어가기도 하지만, 미국의 많은 인류학과 수업의 강의계획서에는 여전히 주요한 읽을거리로 그 이름을 올리고 있다.

맑스의 친구이자 공동작업자이자 조력자로서 (때론 맑스의 "오른팔" 혹은 "장수"로 불리우기까지 했다),
그 스스로 국제 공산주의 운동사에 큰 획을 그은 엥겔스지만 항상 맑스의 그늘에 가려 그 존재감이 상대적으로 미약 했던 것은 사실이다.
맑스-엥겔스로 불리던 조합은 맑스-레닌주의로 혹은 맑스주의로만 호명되면서 그 이름마저 지워져왔으니 말이다.

그런데 작년에 엥겔스에 관한 전기가 새롭게 출판 되었나 보다.
영국의 Observer (보기) 와 Guardian (보기) 에 실린 북리뷰를 읽는 것만으로 너무나 흥미진진 했다.

역시 전기가 가지는 매력은 그 가쉽성에 있는 것이기도 한 듯.

기회가 되면 개인적으로 번역을 해보고도 싶지만...아 그런 날이 올까?


플록 코트를 입은 "간지남" 엥겔스.
"남이야 뭐라던 제갈길을 가"던,  "자따"인생 맑스를 삶과 세상에 이어주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던 사람. 

레닌이 엥겔스에 대한 추도사(1896)에서 이렇게 말했다.

"엥겔스의 이름과 삶은 모든 노동자들에게 알려져야 합니다...프롤레타이트의 위대한 전사이자 선생!"

어느날 이세상 모든 프롤레타이트도 샤또 마고는 아닐지언정,
또 플록 코트를 입고 맵시를 자랑하진 못 할 지언정
"승리의 축배"를 들 날이 왔으면 하는 꿈은 여전히 전 세계를 배회하고 있다. 


* 엥겔스 관련 기사 추가 (12월3일):

엥겔스 ‘아프간 난공불락’ 족집게 분석 “유럽 이교도 통치할수 있는곳 아니다”
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international_general/39121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