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8월 6일 토요일

Banksy에 "관한" 영화 Exit Through The Gift Shop을 보다.


2011. 4. 2. Ashville, NC 
뱅크시의 작품은 아니나 이제 많은 미국 도시에서 "낙서"는 하나의 작품으로 간주되고 있는 듯.


지난 아카데미 시상식을 전후로 해서 가디언등등의 기사를 통해 영국의 "낙서쟁이" Banksy 에 관한 다큐멘터리가 만들어졌고, 다큐멘터리 영화 후보작에 올랐다는 것을 전해들었는데 이제서야 보게됐다. 

당시엔 영국 영화 "King's Speech"와 Banksy 에 관한 다큐멘터리가 아카데미를 공동수상할 수도 있다는 영국인의 기대가 극에 달할때였다. 킹스 스피치와는 달리 대중에게 그다지 알려진 작품은 아니었던(그 당시 미개봉이었던 기억이) "뱅크시"에 관한 다큐멘터리가 특별히 관심을 끌었던 이유는  만약 Banksy에 관한 다큐가 수상할 경우 시상식장에 Banksy 가 직접 얼굴을 들어낼 것인가 였다. 실제로 아카데미 시상식이 가까워졌을때 뱅크시는 LA의 한 고속도로변에 자신이 LA에 와있음을 알리는 듯한 작품을 남기기도 했었다. 


그저 한 문장을 남긴 것 같은 이 작품(?)은 사실은 2006년 9월 15일 LA에서 열렸던 뱅크시의 첫 작품 전시회에  등장해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코끼리를 상기시키는 것이다.
당시의 전시회는 대성황을 이뤘고, 뱅크시 작품과 몇몇 유명한 그래피티 예술가들의 작품이 소더비 경매에서 고가에 거래되는 전기를 마련했었다.

당시 전시회는 뉴욕타임즈에도 소개가 되었었다.
(http://www.nytimes.com/2006/09/16/arts/design/16bank.html )

아마도 뱅크시는 그당시의 선풍적 인기와 찬사를 아카데미에서 기대했을지도 모르다.
하지만 올해의 아카데미 다큐멘터리 부분은 Inside Job에 돌아갔다.

아카데미가 끝나고 뱅크시에 대한 관심이 사그라들 무렵,
한국에서는 G20 정상회의 개최로 야단법석이 나고, 그 사이 한 대학강사가 정상회담 포스터에 쥐를 그려넣었다가 재판에 회부되면서 뱅크시의 이름이 여기저기서 언급되기도 했었다.

다시 다큐멘터리로 돌아가면, 내 예상과는 다르게 이 다큐멘터리는 뱅크시에 관한 것이라기보다는 뱅크시에 관한 영화를 만들려했던 미국에 사는 프랑스인에 관한 것.
달리 말하면, 어느 무모한 열정이 만들어낸 스토리에 관한 것이다.

그래도 뱅크시가 등장하긴 하니까 베일에 쌓여있는 그의 실체에 조금이나마 가깝게 다가갈 수있는 기회는 준다. 생각했던 것 보다 뱅크시는 나름 카리스마가 있는 인물이더라.

영화를 보다가, 스페인 영화 Noviembre 가 자꾸 떠올랐다.
소더비 경매에서 고가에 작품이 거래되는 얼굴없는 작가지만,
그 스스로가 자신은 "돈을 위해 작업을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할때는 "노비엠브레"의 주인공이 떠올랐다. 다만 이미 상업주의화 되가며 주류가 "포획"하기 시작한 그래피티의 예술적 혼이 얼마나 어떻게 지속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

개인적으로 뱅크시의 마지막 대사는 압권이었다.
웃다가 쓰러질뻔.

P.S. 한국에 아직 개봉을 안했다고 해서, 스포일러 같아 자세한 내용은 쓰고 싶지 않지만, M.B.W.로 데뷰하신 열정의 사나이는 벤야민의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작품"과 연관지어 생각해 볼 수 있을 듯. 그가 특별히 인상적인 것은 Passion과 Spontaneity 로 좌충우돌하며 달려온 그의 삶이 "기술복제"와 결합하면서 "예술"의 자리로 점핑을 했다는 것이고, 또 그가 그의 작품에 대한 "예술적 가치"에 대한 평가 유예를 요구한다는 점. 참 흥미로운 생을 사는 사람인 것은 분명한 듯.
Mr. Brainwash 의 홈페이지. http://www.mrbrainwash.com/

2011년 8월 4일 목요일

"“희망버스”안에서 한번 생각해 보면 좋을 것들" 이라는 김대호의 글

http://www.facebook.com/note.php?note_id=209912262394542 (페이스북 원문) 


김대호의 글은 개인적으론 여러 유용한 관점들-예를들어 한국에서 실업율이 완전고용 수준으로 나오는 이유라던지, 현재 세계자본주의 체체하에서 일상화된 일시성(불완정성으로 보기도 하지만)에 대한 지적이라던지등등-를 담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국가경제"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는 한계가 있다. 


그러다보니 과도하게 노동자와 진보가 "자본"에 상대적으로 덜떨어진 대응을 하고 있다는 식의 관점을 펼치는 듯. 
자본의 경쟁이 발생시킨 문제에 "발 맞춰"가는게 노동운동과 진보의 책무라고 생각하는가? 
결국 노동자는 자본과 정권을 "이해"하는 노력이 필요한 사람들이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인가?  
노동자들-그것이 대공장 정규직이던 누구던-이 "희생"해야될 당위가 자본시장의 재편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생각하는 것도 큰 착각이다. 
"당파성"운운 하시더만, 그건 기껏해야 "집권"에 눈멀은 정치 전술이고, 
자본에게 현상황은 불가피한 대응을 강제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니, 진보는 "떼쓰는" 촌스러움을 버려라는 식의 논리를 재생산하는 듯. 
김대호의 글이 그나마 의미를 가지려면, 
기본적으로 노동자에게 경영권을 넘겨주거나 혹은 최소한 참여를 가능케 해서 투명한 "생존권" 확보 노력이 노동자 스스로 가능하게 하는 사회질서를 만드는게 더 급선무라는 것으로 나아갔어야 한다. 
"무지"와 "광기"를 지적하는 것이야 말로, 노동자 민중에게 "꼰대"질 하려는 나쁜 버릇.

2011년 8월 3일 수요일

NC Local Beer - Red Oak






하우스메이트가 한병 마셔보라고 추천해준 노스캐롤라이나 로컬 맥주 Red Oak.

Greensboro 에서 처음 생산되었는데 현재는 Whitsett, North Carolina에 공장이 있다.
1516년 Bavarian Purity Law에 따라 생산되는 맥주.
말그대로 Pure한 바바리안 라거맥주다.

직접 유통까지 담당하고 있다는데, 지역의 해리스티터와 호올푸드에서 구입할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