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수공장인 줄은 알았지만, 원자탄 부품공장인지는 몰랐다.
나는 군수공장을 예술의 공간으로 탈바꿈 해낸 노력이 보기 좋기만 하고, 부럽기까지 하던데,
그건 역시 여행자의 순진한 시선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그런 여행자의 순진함도 공간만들기에는 아주 중요한 힘 아니겠는가? 여행자가 "아무데나" 다닐 수 있는 사람은 아니니까 말이지.
솔직히 나는 도시라는 공간에서는 공동묘지터도 아파트단지나 쇼핑몰로 변신하는 한국에 좀 질려있었던 터라,
공간의 생산성을 새롭게 만들어내는 노력의 일환으로 보고 싶었다. 한국에서는 역사적 유적이 발굴 되도, 땅값 떨어지고 재산권 침해 당한다고 그 유적을 파괴하는 사람들이 "이해도 되는" 사회가 아니던가?
인터뷰 내용에서 보 듯, 이젠 중국 화가들이 농부로 일해야하는 시대는 아니고 보면,
예술의 젊은 영혼이 자본주의 세계시장과 고립되서 성장하기만 바라는 것도 너무 순진한 발상 아닌가?
그 옛날의 "순수예술"론의 재탕도 아니고. "예술엔 돈도 든다."
어쨌든 자본을 넘어서는 것이 중요하지 자본과 관계를 맺는 것 자체를 문제 삼는 방식은 조금은 상투적인 지적인 듯.
여행 기억을 더듬어 보니, 베이징의 인사동이라던 그 전통 예술 거리는 798에 비해서는 많이 썰렁했던 것도 같다.
사실 자본의 무관심이 만들어내는, 예술계의 세대변화의 자리를 보는 것이 베이징 예술계를 보는 더 유효한 자리인 듯도 싶은데. BBC 같은 데서는 벌써 이미 그것에 주목하고 있고.
그나저나 그 거리 이름이 뭐더라? 그림도 한두장 샀는데 거기서는.
"따샨쯔"에서는 사진찍고 커피만 마셨지만...
내 사진은 다음에 올리기로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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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꽃 향기에 봄이 익어가는 2007년 4월 중순의 798거리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798은 베이징공항에서 시 중심으로 향하는 중간에 있는 특수 지역을 말한다. 숫자가 말해주는 곳은 이 곳에 있었던 공장의 번호다. 그런데 이 곳이 5년 전부터 갑자기 변화를 시작해 중국 미술 등 예술문화의 바로미터가 되기 시작했다. 기자가 그 곳에 들렀을 때도 곳곳에는 새로운 전시를 위한 공간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펑키 스타일의 예술가들과 아직 남은 공장에서 일하는 공장 노동자들이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펑키 예술가와 공장 노동자들 길가에 주차한 차들을 보면 798이 얼마간 돈의 폭격을 받았다는 것을 쉽게 느낄 수 있다. 실제로 798은 생겨난지 4~5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예술특구가 되면서 연 수백%의 성장을 하는 지역이다. 가장 단적인 예가 폐공장의 가치가 급속히 상승한다는 것이다. 과거 ㎡당 몇 위안에 지나지 않던 월 임대비가 매년 급성장해 지금은 수십 위안을 호가한다. 하지만 이 곳을 향한 해외의 관심은 휠씬 더 강하다. 798로 불리는 따산즈와 인근 아라리오·이수청에는 서울 인사동의 갤러리 아트싸이드를 비롯해 카이스 갤러리, 아라리오 갤러리, 표 갤러리, PKM 갤러리, 이음, 문 갤러리, 공화랑 등이 진출해 있다. 정치인 출신인 구천서씨도 초대형 규모의 '구 아트센터'를 5월에 문 열 예정이다. 그밖에도 동경화랑 등 일본은 물론이고 유럽에서도 적지 않은 화랑들이 이곳에 들어오고 있다. 프랑스에서 인테리어를 공부하고 온 조일행씨는 얼마전 798에 들렀다가 자신의 공부한 학교를 나온 프랑스인을 만나고, 동서양 예술 무대가 좁아졌다는 것을 실감했다. 798로 상징되는 베이징 동북부 예술 지역은 당대 중국 미술의 중심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게 됐다. 중국 정부 협조로 집중 기획 개발
그런데 이곳에 수년 전부터 이상한 기운이 감지되기 시작했다. 앙상한 시멘트벽을 허물어 작업실을 꾸미고, 밖에는 자기만의 벽화나 조형물을 만드는 현대 예술가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인근의 이수청이나 아라리오까지 합치면 중국 뿐만 아니라 세계에서도 가장 큰 미술 단지를 형성한 것이다. 이같은 형태로는 상하이 쑤저우허 인근의 '뭐간산루'나 '신톈디', 광저우의 예술거리 등을 들 수 있다. 하지만 크기나 명성에서 798의 상대가 안된다. 798의 가장 큰 특징은 의도적으로 기획된 곳이라는 점이다. 중국 정부의 협조하에 집중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했고, 이후 이 곳을 부양하기 위한 정책이 나왔다. 이들은 순수한 미술혼도 있지만 기존의 권력과 유사한 힘을 찾기 위해 2006년 12월 2일 이곳의 한 갤러리에서 '798당대예술회'를 개최했다. 장야난, 이화, 장스용 등이 주도한 이 모임은 기존의 미협 등과 대칭되며, 자신들의 예술을 조직화하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표어도 '지금의 798, 너는 당대에 있다, 798은 당대 예술모임이다. 당신을 위한 예술생활을 추구한다'. 구역을 당대로 축소해 기존 세력의 공격을 피하는 한편 새로운 영역을 구축하려는 특성이 강하다. '스타'와 '엔젤'이 만나니 콘텐츠가 798의 가장 큰 장점은 콘텐츠 창작을 위한 모든 요소를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우선 798이 있는 따산즈에서 차로 10분 정도의 거리에 중앙미술학원이 있다. 이곳은 중국 미술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는 저명한 학교다. 798과 유대관계를 통해 지속적으로 커리큘럼을 확충하고, 798은 이 학교에서 예술가를 수혈받는 공생관계가 되었다. 학교가 바탕이 되면서 기존 미술계와의 충돌을 피할 수 있는 것이다. 798의 탄생을 쉽게 한 것 가운데 하나가 중국 현대미술의 기반이 취약하다는 점도 있다. 중국은 문화대혁명(1966~1976)을 거치면서 화가들이 농촌에 가서 농사를 지어야 했다. 공부를 할 수도 없었다. 10년의 문화공백은 넘기 어려운 골짜기였고, 상대적으로 미술협회 등 기존의 단체가 확보할 수 있는 일은 적었다. 거기에 엔젤 투자가 넘치는 것도 798을 성장하게 하는 힘이다. 중국 고급부동산 시장이 급팽창하면서 설치미술이나 현대 미술의 판로가 쉽게 열렸다. 결국 조직력을 갖춘 798 운영 주체가 학교, 미술가들이 결합하면서 빠른 성장세를 보였다.
1958년생인 장샤오깡은 소더비 등 경제시장에서 작품당 기본 낙찰가가 30만불을 호가하는 당대 최고의 미술가로 자리잡은 작가인데, 지난해 5월 798에서 신작전을 열어 세계적인 주목을 받기도 했다. 장샤오깡은 '가족'이라는 소재를 통해 개인과 집단의 만남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최고의 인물로 평가받으며, 최근에는 국내 미술 전문지인 <아트>지에서 특집으로 다루기도 한 작가다. '인민을 위해 서비스하자' 그러나 "자본 결탁" 비판받아 하지만 798에도 혼돈이 없는 것은 아니다. 중국은 엄연한 사회주의 국가이고, 예술도 그 원칙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때문에 798의 홈페이지(www.798.net.cn)를 열면 '인민을 위해 서비스하자'는 마오쩌둥 문구로 시작된다. 21세기에 사회주의 문예좌담을 논하는 것은 복잡한 시선을 자아낸다. 실제로 798의 화랑 가운데는 사회주의 창작론을 소재로 삼은 곳들이 적지 않아 독특한 느낌을 준다. 한 서양화가는 최근에 798을 다녀오고 많이 실망했다는 소회를 밝혔다. 국제적으로 알려진 명성에 비해서 그다지 수준도 높지 않고, 싹이 트기도 전에 자본에 결탁한 느낌이 강했기 때문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이런 평가들에 대해서 중국 내부에서도 대부분 공감한다. 중국 현대미술의 선구자인 리시엔팅(68)도 우리 화랑인 '아트사이드'의 개관식에 참여해 "중국 작품가가 치솟는 것은 세계 속에서 중국의 문화적·경제적 지위향상에 따른 당연한 결과라기 보다는 경제적 거품이다, 예술은 돈이 아니라 작가의 감각, 생각을 영원히 중요시하는 데서 시작된다는 것을 작가들은 알아야 한다"고 중국 작가들을 비판하기도 했다. 사실 이런 현상은 798만의 문제는 아니다. 중국 미술 시장에서 큰 손으로 불리는 에이전트들의 상당수는 부동산에서 시작했다. 그들은 상하이 등의 고급 부동산을 손대던 이들이다. 돈이 넘쳐서 주체를 못하던 이들 가운데 일부가 부동산에 대한 재투자 대신에 미술작품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고급주택에는 그럴싸한 미술품 소비가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들은 갤러리를 만들어, 창고에 넣어둔 미술품들을 내걸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가장 고평가 받는 박수근의 그림들이 최고 25억원에 팔린 반면에 중국의 미술시장은 아직 상대적으로 저평가됐다. 이런 인프라 때문에 중국 내 자본은 물론이고 해외 자본이 들어오면서 798의 성장세는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다. 반면에 예술 창작 수준이 하루 아침에 올라갈 수 없고, 거기에 배까지 부르면서 이런 문제는 더욱 심화됐다. 798의 급속한 부유화는 작가들의 창작력 저하를 낳기도 한다. 최근 젊은 작가들을 섭외하는 한 갤러리의 대표는 이제 그들과 최고급으로 약속 장소를 잡지 않으면 만나기도 어려운 실정이라면서 미술계의 부유화를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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