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4월 28일 토요일

[오마이뉴스] 원자탄 부품공장, 돈 폭격 맞고 '예술 거리'로

작년에 중국에 갔을 때, "반드시 가야할 곳" 목록에 올린 곳 따샨쯔에 관한 기사가 났다.
군수공장인 줄은 알았지만, 원자탄 부품공장인지는 몰랐다.

나는 군수공장을 예술의 공간으로 탈바꿈 해낸 노력이 보기 좋기만 하고, 부럽기까지 하던데,
그건 역시 여행자의 순진한 시선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그런 여행자의 순진함도  공간만들기에는  아주 중요한  힘 아니겠는가? 여행자가 "아무데나" 다닐 수 있는 사람은 아니니까 말이지.

솔직히 나는 도시라는 공간에서는 공동묘지터도 아파트단지나 쇼핑몰로 변신하는 한국에 좀 질려있었던 터라,
공간의 생산성을 새롭게 만들어내는 노력의 일환으로 보고 싶었다. 한국에서는 역사적 유적이 발굴 되도, 땅값 떨어지고 재산권 침해 당한다고 그 유적을 파괴하는 사람들이 "이해도 되는" 사회가 아니던가?

인터뷰 내용에서 보 듯, 이젠 중국 화가들이 농부로 일해야하는 시대는 아니고 보면,
예술의 젊은 영혼이 자본주의 세계시장과 고립되서 성장하기만 바라는 것도 너무 순진한 발상 아닌가?
그 옛날의 "순수예술"론의 재탕도 아니고. "예술엔 돈도 든다."
어쨌든 자본을 넘어서는 것이 중요하지 자본과 관계를 맺는 것 자체를 문제 삼는 방식은 조금은 상투적인 지적인  듯.
 
여행 기억을 더듬어 보니, 베이징의 인사동이라던 그 전통 예술 거리는 798에 비해서는 많이 썰렁했던 것도 같다.
사실 자본의 무관심이 만들어내는, 예술계의 세대변화의 자리를 보는 것이 베이징 예술계를 보는 더 유효한 자리인 듯도 싶은데. BBC 같은 데서는 벌써 이미 그것에 주목하고 있고.
그나저나 그 거리 이름이 뭐더라? 그림도 한두장 샀는데 거기서는.
"따샨쯔"에서는 사진찍고 커피만 마셨지만...

내 사진은 다음에 올리기로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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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이 오는 798거리 입구에서 얘기를 나누고 있는 공장 노동자들.
ⓒ 조창완

▲ 798 예술거리의 표지석
ⓒ 조창완
뉴욕에 있는 예술의 거리를 본따 '베이징의 소호'라고 불리우는 '798거리'는 문화대혁명 등으로 인해 지체에 빠진 중국 예술창작의 신천지인가, 아니면 예술가들의 상업성을 부추기는 구렁텅이일까.

사과꽃 향기에 봄이 익어가는 2007년 4월 중순의 798거리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798은 베이징공항에서 시 중심으로 향하는 중간에 있는 특수 지역을 말한다. 숫자가 말해주는 곳은 이 곳에 있었던 공장의 번호다.

그런데 이 곳이 5년 전부터 갑자기 변화를 시작해 중국 미술 등 예술문화의 바로미터가 되기 시작했다.

기자가 그 곳에 들렀을 때도 곳곳에는 새로운 전시를 위한 공간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펑키 스타일의 예술가들과 아직 남은 공장에서 일하는 공장 노동자들이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펑키 예술가와 공장 노동자들

길가에 주차한 차들을 보면 798이 얼마간 돈의 폭격을 받았다는 것을 쉽게 느낄 수 있다.

실제로 798은 생겨난지 4~5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예술특구가 되면서 연 수백%의 성장을 하는 지역이다. 가장 단적인 예가 폐공장의 가치가 급속히 상승한다는 것이다. 과거 ㎡당 몇 위안에 지나지 않던 월 임대비가 매년 급성장해 지금은 수십 위안을 호가한다.

하지만 이 곳을 향한 해외의 관심은 휠씬 더 강하다. 798로 불리는 따산즈와 인근 아라리오·이수청에는 서울 인사동의 갤러리 아트싸이드를 비롯해 카이스 갤러리, 아라리오 갤러리, 표 갤러리, PKM 갤러리, 이음, 문 갤러리, 공화랑 등이 진출해 있다. 정치인 출신인 구천서씨도 초대형 규모의 '구 아트센터'를 5월에 문 열 예정이다.

그밖에도 동경화랑 등 일본은 물론이고 유럽에서도 적지 않은 화랑들이 이곳에 들어오고 있다.

프랑스에서 인테리어를 공부하고 온 조일행씨는 얼마전 798에 들렀다가 자신의 공부한 학교를 나온 프랑스인을 만나고, 동서양 예술 무대가 좁아졌다는 것을 실감했다. 798로 상징되는 베이징 동북부 예술 지역은 당대 중국 미술의 중심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게 됐다.

중국 정부 협조로 집중 기획 개발

▲ 두 시선으로 들어오는 이를 보는 조형물.
ⓒ 조창완
▲ 798을 비롯한 숫자는 과거 공장의 번호다.
ⓒ 조창완
798은 1957년을 전후로 공장이 들어서기 시작한 베이징의 군수산업기지였다. 이곳에서 중국의 첫 원자탄 주요 부품이 탄생했고, 인공위성이 연구됐다. 하지만 도시 정비와 더불어 군수공장은 밖으로 이전했다. 몇 곳은 연구소로 바뀌었지만 거대한 공장은 흉물처럼 방치됐다.

그런데 이곳에 수년 전부터 이상한 기운이 감지되기 시작했다. 앙상한 시멘트벽을 허물어 작업실을 꾸미고, 밖에는 자기만의 벽화나 조형물을 만드는 현대 예술가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인근의 이수청이나 아라리오까지 합치면 중국 뿐만 아니라 세계에서도 가장 큰 미술 단지를 형성한 것이다.

이같은 형태로는 상하이 쑤저우허 인근의 '뭐간산루'나 '신톈디', 광저우의 예술거리 등을 들 수 있다. 하지만 크기나 명성에서 798의 상대가 안된다.

798의 가장 큰 특징은 의도적으로 기획된 곳이라는 점이다. 중국 정부의 협조하에 집중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했고, 이후 이 곳을 부양하기 위한 정책이 나왔다.

이들은 순수한 미술혼도 있지만 기존의 권력과 유사한 힘을 찾기 위해 2006년 12월 2일 이곳의 한 갤러리에서 '798당대예술회'를 개최했다. 장야난, 이화, 장스용 등이 주도한 이 모임은 기존의 미협 등과 대칭되며, 자신들의 예술을 조직화하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표어도 '지금의 798, 너는 당대에 있다, 798은 당대 예술모임이다. 당신을 위한 예술생활을 추구한다'. 구역을 당대로 축소해 기존 세력의 공격을 피하는 한편 새로운 영역을 구축하려는 특성이 강하다.

'스타'와 '엔젤'이 만나니 콘텐츠가

798의 가장 큰 장점은 콘텐츠 창작을 위한 모든 요소를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우선 798이 있는 따산즈에서 차로 10분 정도의 거리에 중앙미술학원이 있다. 이곳은 중국 미술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는 저명한 학교다. 798과 유대관계를 통해 지속적으로 커리큘럼을 확충하고, 798은 이 학교에서 예술가를 수혈받는 공생관계가 되었다.

학교가 바탕이 되면서 기존 미술계와의 충돌을 피할 수 있는 것이다. 798의 탄생을 쉽게 한 것 가운데 하나가 중국 현대미술의 기반이 취약하다는 점도 있다. 중국은 문화대혁명(1966~1976)을 거치면서 화가들이 농촌에 가서 농사를 지어야 했다. 공부를 할 수도 없었다. 10년의 문화공백은 넘기 어려운 골짜기였고, 상대적으로 미술협회 등 기존의 단체가 확보할 수 있는 일은 적었다.

거기에 엔젤 투자가 넘치는 것도 798을 성장하게 하는 힘이다. 중국 고급부동산 시장이 급팽창하면서 설치미술이나 현대 미술의 판로가 쉽게 열렸다. 결국 조직력을 갖춘 798 운영 주체가 학교, 미술가들이 결합하면서 빠른 성장세를 보였다.

▲ 798 공장 가운데 가장 큰 규모인 이곳은 과거 표어들을 그대로 살려뒀다.
ⓒ 조창완
▲ 장샤오깡의 가족 시리즈 중 한 작품
ⓒ 조창완
이런 흐름을 바탕으로 798을 바탕으로 한 스타 미술가들도 나오기 시작했다. 798 이전에도 스타가 된 장샤오깡 등이 798과 호흡을 맞추어 준 것도 큰 힘이 됐다.

1958년생인 장샤오깡은 소더비 등 경제시장에서 작품당 기본 낙찰가가 30만불을 호가하는 당대 최고의 미술가로 자리잡은 작가인데, 지난해 5월 798에서 신작전을 열어 세계적인 주목을 받기도 했다.

장샤오깡은 '가족'이라는 소재를 통해 개인과 집단의 만남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최고의 인물로 평가받으며, 최근에는 국내 미술 전문지인 <아트>지에서 특집으로 다루기도 한 작가다.

'인민을 위해 서비스하자' 그러나 "자본 결탁" 비판받아

하지만 798에도 혼돈이 없는 것은 아니다.

중국은 엄연한 사회주의 국가이고, 예술도 그 원칙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때문에 798의 홈페이지(www.798.net.cn)를 열면 '인민을 위해 서비스하자'는 마오쩌둥 문구로 시작된다. 21세기에 사회주의 문예좌담을 논하는 것은 복잡한 시선을 자아낸다. 실제로 798의 화랑 가운데는 사회주의 창작론을 소재로 삼은 곳들이 적지 않아 독특한 느낌을 준다.

한 서양화가는 최근에 798을 다녀오고 많이 실망했다는 소회를 밝혔다. 국제적으로 알려진 명성에 비해서 그다지 수준도 높지 않고, 싹이 트기도 전에 자본에 결탁한 느낌이 강했기 때문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이런 평가들에 대해서 중국 내부에서도 대부분 공감한다. 중국 현대미술의 선구자인 리시엔팅(68)도 우리 화랑인 '아트사이드'의 개관식에 참여해 "중국 작품가가 치솟는 것은 세계 속에서 중국의 문화적·경제적 지위향상에 따른 당연한 결과라기 보다는 경제적 거품이다, 예술은 돈이 아니라 작가의 감각, 생각을 영원히 중요시하는 데서 시작된다는 것을 작가들은 알아야 한다"고 중국 작가들을 비판하기도 했다.

사실 이런 현상은 798만의 문제는 아니다. 중국 미술 시장에서 큰 손으로 불리는 에이전트들의 상당수는 부동산에서 시작했다. 그들은 상하이 등의 고급 부동산을 손대던 이들이다.

돈이 넘쳐서 주체를 못하던 이들 가운데 일부가 부동산에 대한 재투자 대신에 미술작품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고급주택에는 그럴싸한 미술품 소비가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 마오 주석을 소재로 한 조형물.
ⓒ 조창완
이들은 비중있는 작가들의 작품을 대규모로 사모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중국 미술시장이 급성장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이름만으로 사놓은 작품은 이제 급등해서 부동산보다 오히려 효과적인 수익대상이 됐다.

그들은 갤러리를 만들어, 창고에 넣어둔 미술품들을 내걸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가장 고평가 받는 박수근의 그림들이 최고 25억원에 팔린 반면에 중국의 미술시장은 아직 상대적으로 저평가됐다.

이런 인프라 때문에 중국 내 자본은 물론이고 해외 자본이 들어오면서 798의 성장세는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다. 반면에 예술 창작 수준이 하루 아침에 올라갈 수 없고, 거기에 배까지 부르면서 이런 문제는 더욱 심화됐다. 798의 급속한 부유화는 작가들의 창작력 저하를 낳기도 한다.

최근 젊은 작가들을 섭외하는 한 갤러리의 대표는 이제 그들과 최고급으로 약속 장소를 잡지 않으면 만나기도 어려운 실정이라면서 미술계의 부유화를 꼬집었다.












"아직은 예선전, 본 게임은 이제부터"
[인터뷰] 짜오리 중앙미술학원 인문대학 학장

▲ 자오리 중앙미술학원 학장
ⓒ 조창완
- 798이 중국 미술계에서 차지하는 의미는?
"798은 중국 미술계에서 이전과 다른 형태를 선보인 중요한 사례다. 이전에 중국 미술계는 관 주도였다. 미술협회 등의 조직이 전시회나 잡지를 움직이면서 이끌어갔다. 798은 이런 형태에서 벗어나 있다. 우선 개인 단위의 형태로 되어있고, 예술공간을 상업적 공간으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중국 미술의 개혁개방 형태라 말할 수 있다."

- 798의 수준에 대한 의견들이 많다.
"798은 따산즈 뿐만 아니라 지하철 터미널 근처의 이수청이나 아라리오까지 포함한 베이징 동북향의 단지를 총괄한다고 본다. 그 가운데 중앙미술학원이 있고, 그곳은 당대미술의 대표작가들이 머무는 곳이다. 우선 이름을 얻은 미술가들이 스튜디오를 열고, 신진들도 들어간다.

따라서 상당히 열정적인 공간이면서, 수준도 서서히 상승한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 이 곳 작가들이 입도선매의 대상이 되는 등 투자가 활발해지면서 지나치게 상업적으로 흘러간다는 비판도 있는데.
"사실 중국 미술은 이전에 상업성과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개혁개방 이후 미술은 서서히 상업성과 결합을 시작했다. 798은 미술과 상업성이 결합해 가속도를 내는 지역으로 보면 된다. 한국은 수십년을 두고 천천히 변했지만 중국은 아주 속도가 빠르다. 그래서 걱정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은 과정일 뿐 마지막에 어디로 귀결될지 누구도 모른다. 나는 3~5년 정도가 지나면 평온해질 것으로 생각한다."

- 부가 창작 능력을 약화시켜 궁극적인 발전을 기대하기 힘들지 않을까.
"창작혼이 평론이나 시장의 영향으로 인해 유혹을 받을 수 있다. 이런 요구는 결국 창작의 룰을 일반화시켜서 모두 천편일률적으로 팔리는 작품에 몰두하는 결과를 빚고 있다. 빈곤함을 통해서 자기만의 세계를 만드는 미술가를 보기 힘들다."

- 중앙미술학원과 798은 어떤 관계인가.
"이 예술지역의 중심부에 우리 학교가 위치해 있다. 자원의 결합이라고 보면 된다. 화랑들과 협조를 통해 신진작가를 공급하고 있다. 사실 이전에는 학교를 졸업해도 갈 곳이 없어서 출판이나 설계로 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지금은 에이전트를 만나 창작에만 몰두할 수도 있다."

- 어리석은 질문이지만 궁극적으로 중국 콘텐츠나 창작의 혼이 얼마나 성장할 것으로 보는가.
"중국은 문혁 등을 통해 창작혼을 상실했다. 화가가 근 20년 간 농부로 생활한 후에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반면에 지금은 그런 문제가 해결됐다. 그런데 창작품을 보면 천편일률적이어서 특별한 작품을 만나기 어렵다. 지금은 예선전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 두각을 나타낼 것이고, 그런 이후에 큰 발전이 있을 것이다. 지금은 노력하는 과정이다."

2007년 4월 23일 월요일

[출판시장 #2] 인문사회과학자들의 푸념.

출판시장에 번역서가 넘쳐난다는 기사를 읽고 나름 "성깔"을 부리고 나니,
어디선가 성찰적 목소리가 엄습해 왔다.

단지 출판 시장 탓을 할 것 인가? "독자의 사망"은 "저자들의 자살" 합리화가 아닌가?
현재의 인문사회과학의 지적 풍토가 고전들 마저도 논술, 구술 수험서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보면 인문사회과학자들이야 말로 새로운 독서 가능성을 만들어내야할 사람들이지 않나 싶다.
왜 오늘날 플라톤을 읽는 것이 우리의 삶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지,
어떻게 세익스피어의 서사구조와 물음들이 오늘날에도 유효한 것이 되는지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들의 연구나 논문에는 그들이 독자와 주선 한 "소개팅"이 없다.
대부분의 최근 한국의 인문사회과학 글들은 그저 "독백체"의 "장인의 언어"만이 자리하고 있다.
참고 문헌들이 도구적으로 사용된다 할 지라도 장인들은 진정 "도구"와 "재료"를 사랑하는 사람들이기도 할 터인데,
"지에 대한 사랑"이 "직업에 대한 사랑"으로 대체되는 작가들의 현실이,
소통 불가능한 지식 생산의 분업체계를 공고화하고, 생산과 소비의 소외현상을 만들어내는 데 일조하고 있는 듯.

Production rules markets !!

2007년 4월 21일 토요일

세계 최대의 번역서 출판 시장 "한국"

베트남의 "청년"지에 뉴욕타임즈 주말판 기사를 인용한 한국관련 기사가 실렸다.
그에 따르면, 2004년 기준으로 한국에서 출판된 서적의 29%가 번역서로, 그 비율에서 세계 1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세계 1위를 좋아하는 한국사람들이지만, 이것이야말로 지식과 앎의 식민성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지표가 아닐까?

물론 아직도 한국에는 소개되어야 할 많은 번역서들이 채 번역 되지 못 하고 있는 실정이다.
얼마전 플라톤 전집의 번역 작업을 하고 있다는 어떤 철학자 집단에 대한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이미 서구 인문학에 대한 연구 혹은 "수입"이 한 세기 가까이 이루어지고 있는 실정이고 보면, 이렇게 "기본 번역서" 출간 마저 늦춰지는 풍토라는 것이 한심스럽기 까지 하다. (그 기사의 내용도 눈물겨웠다. "사재를 털어.."류의 기사였는데, 그나마 소명감을 가진 지식인 집단이 있다는 사실에 따뜻해지다가도 이내 안타까움의 물결이 덥친다.)

시장의 29% 를 차지한 번역돌풍도 이런 "지적 결핍"은 내버려 둔 채로 불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의 번역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서적들이란 이러저러한 성공담들, 심지어 하청 번역 논란까지 일어났던 "마시마로 이야기" 같은 책들이 주종이다.
출판 시장에서 "기획"은 대개 이런 잘 팔릴 것 같은 "번역서"를 찾아 내는 것으로 변한지 오래된 것 같다.
 
외국의 인문사회과학 서들은 반면, 번역 성과를 연구성과로 인정 받지 못하는 교수평가제의 영향에다가 전문번역가 집단의 부재라는 상황, 책을 안사보는 대학생들의 놀라운 반지성주의의 틈바구니 속에서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있다.
번역시장의 독과점 현상이라는 문제가 이 세계 1위 번역출판 시장의 지표 내부에 또다른 심각한 문제를 낳고 있는 것이다.

사실상 일반적 우려와는 달리, 번역이 반드시 지적 식민성 만을 결과하는 것은 아니다.
뜬금없는 이야기겠지만, 외국의 위인 전기를 읽으며 자라난 - 이른바 계몽사 전집 문고 키드들 - 이들의 사고가 서구화 되었다고 단언 할 수는 없다. 그랬으면 한국사회는 최소한 "노블리스 오블리제"라도 있을 터인데 그런 것도 아니니 말이다. 때론 그렇게 "소비적" 독서, 몇권 읽었는지가 중요한 "양적" 독서들도 있기에 번역서 몇권에 한국 지식계가 식민화되었다고 말하기는 어려움이있다. 식민성은 단순히 정신적이라기 보다는 그것을 생산하는 물질성에 근거한다. 5쇄 10쇄 그렇게 기록을 경신하며 찍어져 나갔던 "마시마로이야기"들 처럼 말이다.
 
그러므로 단순히 식민성을 논하기 보다는 차라리 시장의 다양성, 그리고 "출판"이라는 지식생산의 다양성이 위협당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는 것이 올바른 접근법으로 보인다.
마시마로 이야기나, 외국의 성공담이 외국서적이어서가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나머지 71%의 서적들도 똑같은 분류의 책들로 채워지고 있다는 사실에 문제가 있다.
아마도 71%의 상당수는 또 이러저러한 수험서, "영어에 바다에 빠져라"나 "10억 만들기" 시리즈들이라는데 있는 것이다.

시장에 특정분야에 대한 번역서만 넘쳐나게 된다면, 특정 형식의 지식이 시장을 지배하고 사고를 지배할 것이기 때문에, 결국 여론의 획일화를 만들어 낼 것이기 때문에 문제적이다.
마치 신문 가판대에 조선,동아,중앙 일보만 꼽혀 있는 경우와 마찬기지로 말이다.

다른 한편에서, 번역은 학계의 무시와 무관하게 그 자체가 대화이자 실험인 지적 실천이며, 또 하나의 창조이다.
번역을 둘러싼, 잘된 번역, 나쁜 번역, 오역등등의 윤리적 평가들은 그것이 실천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징표이다.
단순히 특정 외국어를 잘하는 것과는 다른 어떤 능력과 규율이 번역가에게 요구되어진다.

그런데 우리는 고학력 실업자들의 증가의 덕택에, 외국어를 할 줄 하는 저임금 임시직 노동자군의 존재에 힘입어 "뚝딱" 번역서들이 다시 말해 책임지지 않는 번역들이 늘어나고 있는 세태를 목도하고 있다. 이 29% 시장 점유율 기사를 보며 씁쓸해 하는 또다른 이유는 거기에 있다.

마지막으로, 최근 FTA 협상에서 체결된 지적 재산권 보장 기간의 60년(?) 연장이라는 미국의 카드는 이러한 한국 시장에 기대고 있다고 보여진다. FTA가 체결된다면, 한국은 60년동안 유통되는 30%의 책에 대한 로열티를 지불하는 출판 시장이 될 것 이다. 책값은 더더욱 올라갈 것이고, 출판시장은 극도로 왜곡 되고 위축 당할 것이 뻔하다. 아무도 원고를 독촉하며 선수금들을 줘가며 저자들을 발굴하고 투자하는데 관심을 가지기 보다는 외국에서 잘 팔린 책들을 입도선매하는데 열을 올릴 것이 불보듯 뻔하다.

인문학과 사회과학을 하는 이들이, 좋아하는 한국 시인 하나, 작가 하나 갖지 못하고, 한국학자의 이론을  통해 저자와 대화하며 공부해 볼 기회를 박탈당한다면, 그들은 지적 유목민이 되기보다는 지적 부랑자가 되기 쉽상이리라.

2007년 4월 20일 금요일

애국적 사회진출론이라...

오랜만에 들어 본 용어다.
386 운동권들이 자기세대의 취업 풍경을 묘사하면서, 다시 끄집어 낸 말이다.

그렇다. 애국적 사회진출론. 전대협으로 대표되는 NL 다수파가 80년대 급격하게 이루어진 대중운동의 고양을 대학 밖으로 확장시키는 대안으로, 그리고 취업이라는 문턱에서 배신, 배반, 도피라는 악순환을 거듭하던 학생운동권에 서로 나중에 계모임이라도 할려면 명분이라도 있어야 한다는 상식이 결합된 사실 "론"이랄 것도 없는 노선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독립운동가도 아니었던 인간들에게, 그저 사회가 떠밀어서, 얼마간은 "Peer Pressure" 때문에 사회에 응답했던 그 많은 전대협 십여만 학생들-전대협 출범식 최대 인파가 8만이었다니까 사실 이것도 좀 많은 추산인데-에게 "애국적"이란 딱지를 붙여서 사회에 내보냈다.
80년대 초반 학번이 이제 40줄에 들어섰으니 이제 학부모들의 다수가 되었는데, 그들이 만들어낸 세상은 지나치게 "애국적"이어서 가끔 숨이 막혀 올 지경이다. 제기랄!

어차피 취업이란 자본주의 사회에서 철저하게 개인적으로 이루어지는 과정이다. 그것이 맑스가 말한 임노동의 본질이다. 굶어죽지 않으려면 알아서 일감을 찾아 나서야 하는 것이 생리란 말이다. 물론 예외도 있다. 부모 잘 만나 ,태어난 이후 삶 자체가 복권 당첨 이후의 시기로 구성되어 있는 삶도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내가 말하는 것은 이른바 그나마 그 십여만의 다수를 이루던 농촌출신, 쁘띠중하층 이하의 출신성분을 가진 다수파를 지칭하는 것이다. 어쨌든 브나로드나 위장취업 같은 계몽운동도 아닐바에야 무슨 사회진출론을 고민한다는 것 자체가 일단 아귀가 안맞는 시작이었다. 위장취업의 전설 손학규옹과 김문수옹을 보면 한때 "독립운동" 하 듯 운동했던 것도 별 차이는 없다.

생각해 보면 그당시 운동권들 사이에서는 졸업을 앞두고 있는 이들의 이런 고민을, 또 나름대로 그럴싸한 언어로 부르곤 했다. "전망"  아!  꿈도 아니고 미래도 아닌 스스로의 삶에 대한 "전.망."
 
사실 말이야 바른말이지, 자기 조직에 잡아두려는 인간들의 쪽수 싸움이 한참 치열하던 때(이른바 대중운동 합법운동의 중요성이 증대되고 민주주의적 "다수결"의 원리가 운동내부에 인입되던)에-지금도 민노당을 보면 여전하지만-한번 굴러온 호박은 못 먹고 썩을지라도 내 창고안에 두겠다 혹은 요즘 컨셉으로 치면 "어장관리"를 하고 싶어하는 안달이, 전세계 운동사에 있을까 싶을 "애국적 사회진출론"으로 이어진 것이었다. 뭘 하든 조국을 배신하지 말자는 붉은 맹세를 하면서 그들 삶에 마지막일 의례들을 치루면서 말이다. 하긴 최영미의 "서른 잔치는 끝났다"도 그러고보면 이런 애국적 사회진출론의 씁쓸한 그림자를 보여준 작품이기도 하다. 공지영류의 후일담 문학도 그렇고.

애초에 대학생을, 최소한 자유로운 지성이자 시민이어야할 그들의 삶을 운동권 상층이 결정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 자체가 글러먹은 발상이고, 직업혁명가도 아닌 이들은 억지로 골방속 담배찜하여 "취업"이라는 것을 잊게 만들게 하려는 전략도 될 일이 아니었다.

직업혁명가, 운동가들은 제 할일을 하면 되는 것이었다.
제 갈길은 누가 일러줘서 가는 길이 아니다.
하여 서로 갈라설 땐 확실하게 갈라서고, 가는 길을 분명하게 하면 되는 일이었다.
보다 치열하게!

생각해 보면, 자신들이 어설프게 붙여준 대중 작위,
"애국적 사회진출자"들을 찾아다니면서 앵벌이하듯 운동할 맘을 먹은 순간부터,
이놈의 386들은 썩은 냄새 풍기기 시작했던 것 아닌가?
요즘의 한국 정치판은 어떠한가? 무슨 정치 단체 발기인들은 어째 그리도 옛날 선후배들 모임을 못 벗어나고 있는가?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의 운명을 그들로 하여금 선택하게 하라! 
그럼으로써만이 그들은 모든 외부적 압박으로부터 스스로 헤쳐나오는 법을 배울 것이다!
"진출" 좋아 하시네! 무슨 직업학교도 아니고!

좀 상관은 없지만, 여전히 운동권들은 대학원 가기 좋아하나 보다.
뭐 학교에서 애들하고 어울려 노는 맛을 아는 것이고, 취업 전선에서는 어느 덧 멀어져 있는 인생들인데다가,
인문사회과학의 전반적 몰락 덕택에 그나마 책 몇권이라고 읽은 대학생은 운동권 밖에 없는 것도 사실이다.
좋다 까짓 것. 하지만 삶을 유예하듯 사는 것 만큼 고통스러운 것이 없음을, 어쩌면 우리의 인문사회과학 젊은 학자들 중에 학계에 새바람을 몰고 오는 학자 한명 찾기 힘들게 된 것도, "애국적 사회진출"은 아닐 지언정 "어영부영 흘러든" 혹은 "오갈데 없어진" 운동권 퇴역자들 집중 현상의 결과인지도 모른다.
씁쓸하다. 시작은 그러했을 지언정 끝은 달라질 필요가 일을진대! 나보고 하는 말이지만!

2007년 4월 18일 수요일

"한국인으로서 미안하다 ?" - Virginia Tech 총기난사 사건을 보며.

난리다. 정확하게 말하면, 충격이다. 미국의 뉴스들은 24시간 내내 버지니아 텍에서 발생한 총기 난사 사건에 대해 보도하고 있다. 워싱턴엔 조기가 내걸리고, 부시 대통령은 버지니아 텍의 추모집회에 참석했다. 듀크에서도 같은 시간에 기도회가 열렸다. 미국 동북부를 강타한 때 아닌 홍수도, 연래행사인 세금 환급 마감과 관련된 우체국 러쉬 뉴스도 다 밀려났다.

한국의 상황은 어떤가? 범인이 중국계 아시아인이라고 "안도"했다는 사람들이 범인이 한국 "국적"의 미국 "영주권자"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모양이다. 범인의 부모가 자살을 기도했다는 확인 안 된 뉴스도 대서 특필되고 있다.

오늘 듀크 인터내셔널 이메일 리스트에도 한통의 이메일이 날라들었다.
제목은 "한국인으로서 미안하다"이다.
이 메일을 받는 순간, 나는 너무나 불편해졌다.
곧바로 미국인들은 "네가 한국인으로서 미안할 문제는 아니다"라는 위로의 메시지를 보냈지만,
"한국인으로서 미안"해하는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에 등장하고 있고, 오마이뉴스에는 촛불 추모를 하자는 주장까지 내걸리는 추세이고 보면 대체로 공감을 하는 "미안한 감정"인가 보다.

도대체 "한국인으로서 미안하다"는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인가?
콜럼바인 총기 난사 사건 때는 한국인이 가해자 아니어서 그리도 남의 일 보듯 했고,
이제는 범인이 한국 국적자이기 때문에 한국민이면 모두가 미안해 해야 한다는 것인가?

아픔을 나누고자 하는 마음가짐은 그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지만,
범인이 한국국적이라서 미안하다는 논리에는 아주 무섭고도 폭력적인 논리가 스며져 있다.

사건을 냉정하게 바라 보면, 조승희라는 학생은 8살 때 이민을 가서 대부분의 교육과 성장을 미국에서 한 "법적 미국 거주자"이다. 24살이라는 나이도 사실 스스로의 행동에 법적 책임과 도덕적 책임을 질 나이가 지나도 한 참 지난 나이가 아닌가?
그런데 왜 어떤 다른 집단이 그것도 그와 "국적"이라는 방식으로 밖에 동질성이 보장되지 않는 사람들이, 그 사실 때문에 부끄러워하고 미안하다고 해야하는가?

바로 이런 논리가 조승희의 가족과 부모를 살 수 없게 만드는 "연좌제"적 논리이고,
한사람의 잘 못을 극단적으로 그가 소속되어 있던 집단 전체의 책임으로 돌려버리는 대중적 광기와 쇼비니즘아닌가?
최소한 조승희가 한국 정부에서 주는 장학금을 받고 다니던 학생이었다면, 정부의 사과와 책임있는 자들의 사과가 뒤따를 수 있겠지만, 이건 그것도 아니지 않는가?
우리가 미국 군인의 장갑차에 죽은 미선이 효순이를 추모하고 미국정부의 사과를 요구했던 것은 그들이 미국 정부의 직접적인 지원과 "작전" 중에 범한 잘 못 이었기 때문이었던 것이지 미국국적의 한 운전병의 잘 못 이었기 때문이 아니다.

우리가 우리스스로를 뒤돌아 보고, 여러 성찰적인 논의들 예를들어 조기 유학과 이민에 대한 다양한 논의들을 해볼 수 있겠지만, 우리가 이번 사건에 대해 한국인이기 때문에 미안해야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미 외교부를 통해 공식 유감의 뜻을 표하지 않았는가?

사실 한국인이 때문에 미안하다는 논리를 다른 한측면에서 보자면, 그 속에는 강렬한 "자기 방어"의 논리가 스며들어 있다. "나는 그와 달라"라고 선언함으로써 생존하고 픈 불안감이 자리하고 있는 것 아닐까?
그런식으로 "빨갱이 아비"를 둔 이문열은 극우보수주의자가 되었다.

오히려 지금 우리가 되돌아 봐야 할 것은 미국(인)으로부터 보복 당할 것 같은 불안감에 휩싸인 우리 자신들이다.
이 뿌리깊은 민족적 강박과 불안이 오히려 문제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마저도 "한국인으로서 미안하다"가 너무 쉽게 정당화 해버리는 "한국인이니까 책임져라"는 논리를 떠올려 보며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키는, 자신의 면책을 위해서 다른 사람들을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는  논리에 다름 아니다. 냉정을 잃어버리면 스스로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한 판단력을 잃어버린다.

이번 사건은 끔찍한 사건이고 모두가 왜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보아야할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가 어느 국적을 가졌느냐가 문제의 핵심이 아니다.
통제불능의 학원 폭력 문제에 대해서, 적당한 자기표현의 방식 마저 잃어버린 조기 유학생의 사례에 대하여, 다민족적 사회가 겪을 수 있는 사회적 문제에 대하여 고민해 보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한 것 같다.

피해자 가족들의 슬픔과 사건을 경험한 모든 이들의 고통을 함께 나누자.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한국인"이기 때문에 해야할 일이 아니라, 일상적인 비정상적 "폭력"에 노출되어 있는 오늘날을 살아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2007년 4월 6일 금요일

Dirty Kuffar



자꾸 유투브에서 삭제되는 것은 아마도 정치적인 이유때문인 듯 (2008년 링크수정)
 

오늘 TA 수업시간에 파키스탄 출신 강사가 학생들에게 보여준 뮤직비디오다. 보여준 이유는 지하드를 찬양하는 이슬람세력이 글로벌 미디어등을 이용해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는 "경각심" 혹은 "문제제기"를 하고자 했던 것인데, 아이들은 조금 충격을 받았던 듯.

몇명의 학생들이 표현의 자유에 대해서 이야기했고, 사실상 미국도 이와 반대되는 이미지를 생산해 내고 있으니 똑같은 거 아닌가 하는 지적도 나왔다.

이후에 지속된 초청강사 브라언의 강의 중 덴마크에서 시작된 이슬람 카툰에 대한  논쟁은 흥미로웠는데, 그 카툰 논쟁 속에서 서구의 자유주의적 담론이 봉착하게된 윤리적 문제에 대한 물음은 매우 신선한 것이었다. 
표현의 자유와 종교적 모욕이라는 폭력성이 교차하는 담론 구조에서, 그 교차 지형의 윤곽을 그려내고, 새로운 윤리적 논리를 도출해 내고자 하는 노력은 그 자체로써 의미가 있었다.

특별히 기억나는 것 중에 하나는, 브라이이언의 고통에 대한 문제 제기.
좋은 고통과 나쁜 고통이라는 두가지 분기점이 항상 만들어진다는 점을 윤리적으로 강조한 부분이다. 
예를들어 의학적 시술에 뒤따르는 고통을 감내하는 사람들과 그것의 수사적 가치를 전유하는 현실 정치와의 관계에대한 분석은 무척 흥미로왔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 생각해보면, "마취"와 "안정제"등등 고통을 잊게 하거나 감내 할 수있는 다양한 노력들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것 아닌가?
몸에 기록되는 고통의 흔적들이야 말로 살아있음을, 혹은 살아왔음을 확증하는 것 일텐데.
예수도 사실 십자가에 못 박힌 전력에다가 그 고통의 극한에서 "순교"를 택한 이미지 때문에 먹어주는 것일 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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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옵저버에 실린 노래 Dirty Kuffar 에 관한 기사다..


 Islamic rappers' message of terror


Antony Barnett Sunday February 8, 2004 The Observer


Islamic rappers' message of terror



Antony Barnett
Sunday February 8, 2004
The Observer


It's rap, jihad-style. A music video with blood-curdling images, fronted by a young British Muslim rapper brandishing a gun and a Koran is the latest hit in radical Islamic circles.

The rap song is called 'Dirty Kuffar' - Arabic for dirty non-believer - and it praises Osama bin Laden and the attack on the World Trade Centre in New York.

The video has recently been posted on the British website run by the Islamic extremist Mohammed al-Massari, the UK-based Saudi Arabian dissident who has lived in Britain since 1994. Al-Massari claims that the video has been selling in large quantities at mosques to the younger generation and is in heavy demand overseas.

The rapper fronting the video calls himself Sheikh Terra and the Soul Salah Crew - a take on the rap group So Solid Crew. 'Salah' is Arabic for faith.

The video might at first be mistaken for an Ali G spoof, but the violent images quickly reveal it is no joke.

The song starts with images of US marines in Iraq cheering as one of them shoots a wounded Iraqi lying on the floor. At the end of the video, it features shots of the hijacked planes flying into the Twin Towers with sounds of the rappers laughing. There is then a list of 56 countries they claim have been the 'victims of American aggression' since 1945.

The four-minute rap is essentially a repeated diatribe against the 'dirty non-believers' Tony Blair and George Bush, urging listeners to 'throw them on the fire'.

One of the most brutal images shows a jihadist fighter in Chechnya riddling a captured Russian soldier with a Kalashnikov. Another image labels Pakistan president General Pervez Musharraf a traitor and shows photographs of Colin Powell and Condeleezza Rice with the words 'still slaves' superimposed across their bodies.

Labour MP Andrew Dismore said he was 'disgusted' by the video and is to refer it to the Home Office and ask the police to investigate if any offence has been committed.

Dismore said: 'These extremist are using music and video to prey on young and impressionable Muslim boys in order to attract them to their brand of lunacy and entice them to commit acts of terror. It is inexcusable.'

The website on which the video was originally posted is run by the Committee for the Defence of Legitimate Rights in Saudi Arabia, a group run by al-Massari who came to Britain in 1994 after being imprisoned by the Saudi regime.

He said: 'A boy came to me and showed me the video and I thought the content was good, although I am no expert on rap. I thought it was an excellent attempt to use modern methods to get a message across.'

Al-Massari did not see a problem in using Western music and MTV-like images to sell a message of jihad. He said that it was an effective way of attracting young Muslims who had been put off by other Islamic sects such as the Taliban, which banned music and dancing. 'I do not know of any young Muslim who has not either seen or got this video. It is selling everywhere. Everyone I meet at the mosque is asking for it.'

Al-Massari denied that the messages in the video incited Muslims to take part in terrorist attacks against the West.

He said: 'I believe the lyrics are only metaphorical. It is not like this is a fatwa.'

In November 2002, al-Massari circulated a 4,000-word message allegedly from Osama bin Laden. In 2001, al-Massari was granted permanent residence in Britain, five years after Michael Howard, then Conservative Home Secretary, tried to deport him.

Excerpt from 'Dirty Kuffar'
Peace to Hamas and the Hizbollah
OBL [bin-Laden] pulled me like a shiny star
Like the way we destroyed them two towers ha-ha
The minister Tony Blair, there my dirty Kuffar
The one Mr Bush, there my dirty Kuffar...
Throw them on the fire


900명 피해가 엄청난 피해가 아니라굽쇼?

노무현이 무서워졌다. 신문의 보도만 보자면, 한미 FTA 후속조치를 논하는 워크샵에서 해양수산부 장관이 명태와 민어잡이 어민에게 엄청난 피해가 예상된다는 보고를 했는데, 몇명이나 되나고 물었단다. 900명이라고 답하자, 900명이 엄청난 피해냐고 부처 이기주의와 피상적 피해보고를 질타했다고 한다. 부처 이기주의, 피상적 피해보고. 말만으로는 비난받아 마땅한 일이나, 아직 법적으로 인준도 안된 한미 FTA에 대해서 각 부처가 최대치의 피해를 계상하고 피해의 최소화를 도모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지 않는가? 더구나 해양수산부나 농림부가 담당하는 산업부분을 대통령 스스로도 "무시해도" 될 만한 것으로 이미 결정하고 추진한 FTA가 아니었던가? 결국 똥싼놈이 방귀뀐 놈 한테 되려 성을 내는 격이 아닌가? 노무현이 이런 인간이었단 말인가? 그리고 900명 피해는 엄청난 피해가 아닌가? 어디서 그런 용감무쌍한 논리를 학습했을까? 국가의 정책 때문에 단 한명의 삶이라도 피해를 입게 된다면 그것 또한 문제인 것인데, "한줌도 안되는 민주화세력"이 죽건말건 상관없다는 논리와 뭐가 다른가? 자리가 사람을 변하게 한다고,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하지만, 이런 식이어서는 아니지 않는가? 청와대에서 숫자 노름을 하고 서민, 노동자 농민의 삶을 가지고 도박을 하라고 국민들이 그 추위에 노무현을 위해 뛰었던 것은 아니지 않는가?

그래 변했다고 치자. 대통령 노무현은 내가 알던 노무현이 아니라고 치자.

그럼 정치가로써 노무현을 보자. 그는 어떠한가?

정치적 미숙함은 여기서도 예외가 아니다. 사실 기왕에 FTA가 나라 경제를 살릴 해법이라고 그럴싸한 "사기"를 치고 싶다면, 기본적으로 어떻게 이익을 극대화 할 것인가에 대한 "호통"이 뒤따르는게 수순아닌가?
산업자원부, 외교통상부등등에 이 기회를 최대한으로 이용하고 그 이익을 사회적으로 환수할 기반들을 만들어내는 것이 더 현명한 협상타결이후의 후속조치가 아니겠느냐는 말이다. 그 이익을 농수산업으로 어떻게든 되돌릴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 내는 것이 최소한의 예의가 아니었을까?

사실 우리나라 농수산업이 이미 어떤 "구호"의 방식으로 조성될 미래가 없어진 것은 이미 10여년전 우르과이라운드, WTO 협상때 부터서이다. 이미 박정희 때 부터 남한 정권은 일관된 탈 농수산업을 바탕으로 한 근대화 정책을 추진해 왔던 것이고, 국민들도 농수산업이 사양산업이 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지내왔던 바는 아니다. 한 예로 직선제 개헌 이후로 줄 곳 등장했던 농가부채 탕감도 이젠 아무런 정치적 효과를 기대할 수 없게 되지 않았는가?
한미FTA 협상 타결에 대한 국민들의 여론조사에서 50% 이상의 지지로 나타나듯이, 국민들은 농수산업 피해가 큰 "충격"으로 자신들의 삶에 닥치리라고 생각하는 감각이 무뎌진 것도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책임감 있는 국가 지도자 혹은 정부의 태도란 국가적인 정책 수립의 담당자로써 이미 "체념한" 국민들에게 다시 활기를 불어넣어주고 그들이 주장하는 공공의 이익의 극대화를 현실적으로 가능한 형태로 제시해 내는 것일 텐데, 왜 FTA의 피해만 강조하냐고 버럭 화를 내는 수준이야말로 그가 그렇게 벗어던지고 싶다고 했던 제왕적 대통령, 독재자의 이미지가 아닌가 싶다.
박정희만한 모델이 오늘의 노무현에게 있을까 싶은 어떻게 이렇게 이란성 쌍생아 정부가 되가는 것일까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노무현을 최종적으로 내 기억속에서 지워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드는 날이다.

2007년 4월 4일 수요일

불여우? Firefox? !!!

빌게이츠가 재단을 만들어 전세계를 구원하는 천사로 활동하고 있다 할지라도, 나는 마이크로소프트가 싫다.

비대해져가는 공룡처럼 기술집약과 독점의 문법을 만들어가는 사업 형태도 싫고, 어느 순간부터선가 사용자의 편리함보다는 써비스 제공자들, 비지니스 파트너들의 구미에 보다 더 철철한 플랫폼으로 바뀌어 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 특히 인터넷 브라우저는 최악이다. 바이러스에 취약한 것은 핵커들의 주 된 공격 탓이기도 하지만, 프로그램 코드를 무슨 비문처럼 관리하고 관련 프로그램 개발자들에게 판매하는 방식에 의존하는 한 앞으로도 상당기간 고전을 면치 못할 것은 분명해 보인다.

넷스케이프를 몰아내고 시장을 독점한 이후로는 권좌를 지키는데만 집착할 뿐 업그래이드가 가져다 주는 흥분을 가져다 주는데도 미약한 지경에 이르렀다. 업그레이드를 거부하는 사용자의 저항이 등장하게 되면 개발자와 판매자의 입장에서는 시장 자체가 기술개발과 더불어 축소되는 현상에 직면하게 되고 따라서 사용자와 개발자의 직접적인 관계에 의존하기 보다는 편법적인 방식으로 이윤을 창출하는 길을 택하게 될 것이기에 결국 기술의 소외와 시장 지체를 불가피하게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이러저러한 반발의 축적 끝에 나는 마이크로소프트를 부분적으로나마 배반하기로 했고, 하여 미국에 와서 쓰기 시작한 브라우저가 파이어팍스--한국에서는 불여우라고 부르는--이다.
웹표준과 문법을 지키지 않는 이기적이고 폐쇄적인 한국의 사이트들에는 먹통이 될 때가 많지만, 익스플로러와는 비교 자체가 불가능한 사용자 편의를 제공한다. 게다가 프로그램도 오픈소스여서 다양한 개발자들의 참여를 적어도 기술적으로는 보장하는 프로그램이기까지 하다. (모든 열려있는 것들에 경배를!)

언제 파이어팍스도 익스플로러와 비슷하게 "수익모델"에 집착하게 될지 모르겠지만(현재까지는 구글과의 동맹전선이므로 거부감이 많이 상쇄되는 편이다), 현재는 소비 세계에 생기를 불어넣는 경쟁의 바람을 즐겨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건 그렇고 한국의 일부 사용자들이 일반적으로 "불여우..불여우"해서 정말 불+여우의 합성어인지 알았더니, 그게 아니라 파이어팍스는 중국과 히말라야, 미얀마에서 발견되는 붉은 털을 가진 팬더 곰의 일종이란다. 불여우가 아니라 붉은 팬더였던 셈이다. 이 이름이 최종적으로 사용되기까지는 이래저래 우여곡절도 많았다는데, 자세한 기사는 아래 링크를 참조해 보시라..


http://news.com.com/2100-7344-515610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