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4월 21일 토요일

세계 최대의 번역서 출판 시장 "한국"

베트남의 "청년"지에 뉴욕타임즈 주말판 기사를 인용한 한국관련 기사가 실렸다.
그에 따르면, 2004년 기준으로 한국에서 출판된 서적의 29%가 번역서로, 그 비율에서 세계 1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세계 1위를 좋아하는 한국사람들이지만, 이것이야말로 지식과 앎의 식민성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지표가 아닐까?

물론 아직도 한국에는 소개되어야 할 많은 번역서들이 채 번역 되지 못 하고 있는 실정이다.
얼마전 플라톤 전집의 번역 작업을 하고 있다는 어떤 철학자 집단에 대한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이미 서구 인문학에 대한 연구 혹은 "수입"이 한 세기 가까이 이루어지고 있는 실정이고 보면, 이렇게 "기본 번역서" 출간 마저 늦춰지는 풍토라는 것이 한심스럽기 까지 하다. (그 기사의 내용도 눈물겨웠다. "사재를 털어.."류의 기사였는데, 그나마 소명감을 가진 지식인 집단이 있다는 사실에 따뜻해지다가도 이내 안타까움의 물결이 덥친다.)

시장의 29% 를 차지한 번역돌풍도 이런 "지적 결핍"은 내버려 둔 채로 불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의 번역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서적들이란 이러저러한 성공담들, 심지어 하청 번역 논란까지 일어났던 "마시마로 이야기" 같은 책들이 주종이다.
출판 시장에서 "기획"은 대개 이런 잘 팔릴 것 같은 "번역서"를 찾아 내는 것으로 변한지 오래된 것 같다.
 
외국의 인문사회과학 서들은 반면, 번역 성과를 연구성과로 인정 받지 못하는 교수평가제의 영향에다가 전문번역가 집단의 부재라는 상황, 책을 안사보는 대학생들의 놀라운 반지성주의의 틈바구니 속에서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있다.
번역시장의 독과점 현상이라는 문제가 이 세계 1위 번역출판 시장의 지표 내부에 또다른 심각한 문제를 낳고 있는 것이다.

사실상 일반적 우려와는 달리, 번역이 반드시 지적 식민성 만을 결과하는 것은 아니다.
뜬금없는 이야기겠지만, 외국의 위인 전기를 읽으며 자라난 - 이른바 계몽사 전집 문고 키드들 - 이들의 사고가 서구화 되었다고 단언 할 수는 없다. 그랬으면 한국사회는 최소한 "노블리스 오블리제"라도 있을 터인데 그런 것도 아니니 말이다. 때론 그렇게 "소비적" 독서, 몇권 읽었는지가 중요한 "양적" 독서들도 있기에 번역서 몇권에 한국 지식계가 식민화되었다고 말하기는 어려움이있다. 식민성은 단순히 정신적이라기 보다는 그것을 생산하는 물질성에 근거한다. 5쇄 10쇄 그렇게 기록을 경신하며 찍어져 나갔던 "마시마로이야기"들 처럼 말이다.
 
그러므로 단순히 식민성을 논하기 보다는 차라리 시장의 다양성, 그리고 "출판"이라는 지식생산의 다양성이 위협당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는 것이 올바른 접근법으로 보인다.
마시마로 이야기나, 외국의 성공담이 외국서적이어서가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나머지 71%의 서적들도 똑같은 분류의 책들로 채워지고 있다는 사실에 문제가 있다.
아마도 71%의 상당수는 또 이러저러한 수험서, "영어에 바다에 빠져라"나 "10억 만들기" 시리즈들이라는데 있는 것이다.

시장에 특정분야에 대한 번역서만 넘쳐나게 된다면, 특정 형식의 지식이 시장을 지배하고 사고를 지배할 것이기 때문에, 결국 여론의 획일화를 만들어 낼 것이기 때문에 문제적이다.
마치 신문 가판대에 조선,동아,중앙 일보만 꼽혀 있는 경우와 마찬기지로 말이다.

다른 한편에서, 번역은 학계의 무시와 무관하게 그 자체가 대화이자 실험인 지적 실천이며, 또 하나의 창조이다.
번역을 둘러싼, 잘된 번역, 나쁜 번역, 오역등등의 윤리적 평가들은 그것이 실천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징표이다.
단순히 특정 외국어를 잘하는 것과는 다른 어떤 능력과 규율이 번역가에게 요구되어진다.

그런데 우리는 고학력 실업자들의 증가의 덕택에, 외국어를 할 줄 하는 저임금 임시직 노동자군의 존재에 힘입어 "뚝딱" 번역서들이 다시 말해 책임지지 않는 번역들이 늘어나고 있는 세태를 목도하고 있다. 이 29% 시장 점유율 기사를 보며 씁쓸해 하는 또다른 이유는 거기에 있다.

마지막으로, 최근 FTA 협상에서 체결된 지적 재산권 보장 기간의 60년(?) 연장이라는 미국의 카드는 이러한 한국 시장에 기대고 있다고 보여진다. FTA가 체결된다면, 한국은 60년동안 유통되는 30%의 책에 대한 로열티를 지불하는 출판 시장이 될 것 이다. 책값은 더더욱 올라갈 것이고, 출판시장은 극도로 왜곡 되고 위축 당할 것이 뻔하다. 아무도 원고를 독촉하며 선수금들을 줘가며 저자들을 발굴하고 투자하는데 관심을 가지기 보다는 외국에서 잘 팔린 책들을 입도선매하는데 열을 올릴 것이 불보듯 뻔하다.

인문학과 사회과학을 하는 이들이, 좋아하는 한국 시인 하나, 작가 하나 갖지 못하고, 한국학자의 이론을  통해 저자와 대화하며 공부해 볼 기회를 박탈당한다면, 그들은 지적 유목민이 되기보다는 지적 부랑자가 되기 쉽상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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