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시장에 번역서가 넘쳐난다는 기사를 읽고 나름 "성깔"을 부리고 나니,
어디선가 성찰적 목소리가 엄습해 왔다.
단지 출판 시장 탓을 할 것 인가? "독자의 사망"은 "저자들의 자살" 합리화가 아닌가?
현재의 인문사회과학의 지적 풍토가 고전들 마저도 논술, 구술 수험서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보면 인문사회과학자들이야 말로 새로운 독서 가능성을 만들어내야할 사람들이지 않나 싶다.
왜 오늘날 플라톤을 읽는 것이 우리의 삶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지,
어떻게 세익스피어의 서사구조와 물음들이 오늘날에도 유효한 것이 되는지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들의 연구나 논문에는 그들이 독자와 주선 한 "소개팅"이 없다.
대부분의 최근 한국의 인문사회과학 글들은 그저 "독백체"의 "장인의 언어"만이 자리하고 있다.
참고 문헌들이 도구적으로 사용된다 할 지라도 장인들은 진정 "도구"와 "재료"를 사랑하는 사람들이기도 할 터인데,
"지에 대한 사랑"이 "직업에 대한 사랑"으로 대체되는 작가들의 현실이,
소통 불가능한 지식 생산의 분업체계를 공고화하고, 생산과 소비의 소외현상을 만들어내는 데 일조하고 있는 듯.
Production rules markets !!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