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리다. 정확하게 말하면, 충격이다. 미국의 뉴스들은 24시간 내내 버지니아 텍에서 발생한 총기 난사 사건에 대해 보도하고 있다. 워싱턴엔 조기가 내걸리고, 부시 대통령은 버지니아 텍의 추모집회에 참석했다. 듀크에서도 같은 시간에 기도회가 열렸다. 미국 동북부를 강타한 때 아닌 홍수도, 연래행사인 세금 환급 마감과 관련된 우체국 러쉬 뉴스도 다 밀려났다.
한국의 상황은 어떤가? 범인이 중국계 아시아인이라고 "안도"했다는 사람들이 범인이 한국 "국적"의 미국 "영주권자"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모양이다. 범인의 부모가 자살을 기도했다는 확인 안 된 뉴스도 대서 특필되고 있다.
오늘 듀크 인터내셔널 이메일 리스트에도 한통의 이메일이 날라들었다.
제목은 "한국인으로서 미안하다"이다.
이 메일을 받는 순간, 나는 너무나 불편해졌다.
곧바로 미국인들은 "네가 한국인으로서 미안할 문제는 아니다"라는 위로의 메시지를 보냈지만,
"한국인으로서 미안"해하는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에 등장하고 있고, 오마이뉴스에는 촛불 추모를 하자는 주장까지 내걸리는 추세이고 보면 대체로 공감을 하는 "미안한 감정"인가 보다.
도대체 "한국인으로서 미안하다"는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인가?
콜럼바인 총기 난사 사건 때는 한국인이 가해자 아니어서 그리도 남의 일 보듯 했고,
이제는 범인이 한국 국적자이기 때문에 한국민이면 모두가 미안해 해야 한다는 것인가?
아픔을 나누고자 하는 마음가짐은 그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지만,
범인이 한국국적이라서 미안하다는 논리에는 아주 무섭고도 폭력적인 논리가 스며져 있다.
사건을 냉정하게 바라 보면, 조승희라는 학생은 8살 때 이민을 가서 대부분의 교육과 성장을 미국에서 한 "법적 미국 거주자"이다. 24살이라는 나이도 사실 스스로의 행동에 법적 책임과 도덕적 책임을 질 나이가 지나도 한 참 지난 나이가 아닌가?
그런데 왜 어떤 다른 집단이 그것도 그와 "국적"이라는 방식으로 밖에 동질성이 보장되지 않는 사람들이, 그 사실 때문에 부끄러워하고 미안하다고 해야하는가?
바로 이런 논리가 조승희의 가족과 부모를 살 수 없게 만드는 "연좌제"적 논리이고,
한사람의 잘 못을 극단적으로 그가 소속되어 있던 집단 전체의 책임으로 돌려버리는 대중적 광기와 쇼비니즘아닌가?
최소한 조승희가 한국 정부에서 주는 장학금을 받고 다니던 학생이었다면, 정부의 사과와 책임있는 자들의 사과가 뒤따를 수 있겠지만, 이건 그것도 아니지 않는가?
우리가 미국 군인의 장갑차에 죽은 미선이 효순이를 추모하고 미국정부의 사과를 요구했던 것은 그들이 미국 정부의 직접적인 지원과 "작전" 중에 범한 잘 못 이었기 때문이었던 것이지 미국국적의 한 운전병의 잘 못 이었기 때문이 아니다.
우리가 우리스스로를 뒤돌아 보고, 여러 성찰적인 논의들 예를들어 조기 유학과 이민에 대한 다양한 논의들을 해볼 수 있겠지만, 우리가 이번 사건에 대해 한국인이기 때문에 미안해야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미 외교부를 통해 공식 유감의 뜻을 표하지 않았는가?
사실 한국인이 때문에 미안하다는 논리를 다른 한측면에서 보자면, 그 속에는 강렬한 "자기 방어"의 논리가 스며들어 있다. "나는 그와 달라"라고 선언함으로써 생존하고 픈 불안감이 자리하고 있는 것 아닐까?
그런식으로 "빨갱이 아비"를 둔 이문열은 극우보수주의자가 되었다.
오히려 지금 우리가 되돌아 봐야 할 것은 미국(인)으로부터 보복 당할 것 같은 불안감에 휩싸인 우리 자신들이다.
이 뿌리깊은 민족적 강박과 불안이 오히려 문제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마저도 "한국인으로서 미안하다"가 너무 쉽게 정당화 해버리는 "한국인이니까 책임져라"는 논리를 떠올려 보며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키는, 자신의 면책을 위해서 다른 사람들을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는 논리에 다름 아니다. 냉정을 잃어버리면 스스로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한 판단력을 잃어버린다.
이번 사건은 끔찍한 사건이고 모두가 왜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보아야할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가 어느 국적을 가졌느냐가 문제의 핵심이 아니다.
통제불능의 학원 폭력 문제에 대해서, 적당한 자기표현의 방식 마저 잃어버린 조기 유학생의 사례에 대하여, 다민족적 사회가 겪을 수 있는 사회적 문제에 대하여 고민해 보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한 것 같다.
피해자 가족들의 슬픔과 사건을 경험한 모든 이들의 고통을 함께 나누자.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한국인"이기 때문에 해야할 일이 아니라, 일상적인 비정상적 "폭력"에 노출되어 있는 오늘날을 살아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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