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스캐롤라이나의 더램을 떠올리는 여러가지 소재들이 있겠지만,
미국 사람들에겐 그중에 하나가 "불 더램"이란 영화이다. 한국에서는 홍보, 배급사의 상상력이 너무 지나쳤던 나머지 "19번째 남자"라는 제목으로 개봉 되어 그런 저런 미국의 "로맨틱 코미디" 영화로 소개된 통에, 더램이란 지명이 영화를 통해 기억될 여지가 그나마도 상당부분 없어져 버렸지만 말이다.
게다가 1990년(미국 개봉은 1988년)의 한국은 몇편의 청소년 영화들을 제외하면 아직 헐리우드 블록버스터들에만 반응하던 시장을 가지고 있었고 "스크린"이 그나마 유일한 영화 "소개"잡지였고, 그런 저런 상황에서 이 영화가 "애마부인"이나 "뽕"시리즈를 연상시키는 제목을 갖는 것이 더 나아보였을지도 모르겠다. 차라리 공포의 외인구단의 흥행을 발판삼아 홍보를 했었으면 어쨌을까도 싶지만 수입사 맘이니....
Bull Durham (한국에서는 "19번째 남자"라는 이름으로 개봉 되었다고) 영화 정보 보기
한국의 상업주의가 교묘한 번역을 낳긴 했지만, 어쨌든 미국의 Sports Illustrated 는 2003년 Bull Durham 을 록키보다 더 훌륭한 "스포츠 영화"로 뽑았다.
내가 처음 더램에 왔을 때, 학교 오리엔테이션에서도 이 영화를 소개했었는데 그 때는 그저그런 영화 한편의 대상이 되었다는데 "오버"하는 미국 소도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고 말았었다.
그 뒤에 이상훈 서재응 최희섭 등등이 마이너로 떨어져 기사거리 없던 한국 스포츠 신문들이 연예정보지화 되어갈 때면, 더램 한국 사람들 사이에 그들이 더램에서 경기를 한다는 이야기들이 나돌았고, 점심먹으러 중국집에 갔는데 모모 선수를 봤다는 둥 하는 확인되지 않아도 그만일 소문들도 회자되었다.
"안티 박찬호"효과랄까 어쨌든 한국의 "과도한 메이저리그 열풍"에 시큰둥 했던 터여서, 지난 3년여간 나는 집에서 15분 밖에 안떨어져있는 야구장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무관심했고 ESPN을 통해 "메이저리그" 가을 시리즈를 보고 네이버를 통해 한국프로야구 중계를 띠엄띠엄 보는 것으로 "야구팬"으로써의 자세를 그럭저럭 유지하며 살아왔다.
시험이 끝나고, 이젠 1년 정도 더램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는 중인데,
지난 금요일 오후 사회학과 이박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야구 볼래요? 오늘 불꽃 놀이도 한다는데요?"
"네? 아.. 그래요? 좋죠."
그렇게 계획에도 없던-그렇지만 한번쯤은 봐야겠다고 늘 생각하고 있던-마이너리그 야구 경기를 더램의 야구장에서 보게 되었다.

더램 불스 야구장은 더램 다운타운내의 American Tabacco Historic District (미국 담배 사적지?)에 위치해 있다. 멀리 보이는 럭키스트라이크 담배 로고가 붙은 물탱크는 더램이 한때 미국 "흑인 월스트리트"라고 불리웠던 시절의 역사를 상징한다. Duke 씨네 담배 재벌이 이 럭키스트라이크로 엄청난 돈을 긁어 모았고, 결국 듀크 대학이 만들어진 역사의 뒤에는 저 럭키스트라이크를 중심으로한 American Tabacco 와 British Tabacco 의 신사협정 혹은 카르텔의 역사가 놓여져있다. 우연의 일치겠지만, 더램불스의 기원인 "담배주의자? Tabacconist"가 1902년 첫 시범 경기를 한 것이 현재의 Duke East Campus 의 전신인 Trinity College 팀이었다.

금요일 저녁, 야구 보긴 최상의 날씨여서인지 가족 단위로 경기장을 찾은 사람들이 많았던 듯.

아저씨 뒤통수가 너무 크게 나온 감이 없지 않지만, 표 끊기 바빠서 어쩔 수가 없었다.
더램 불스 운동장은 1995년에 신축된 것이고, 반면 한국은 인천 문학 경기장 (목동도?)을 제외하면 다들 20년이상씩 아주 "장수"하고 있으니 비교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더램 불스 경기장의 건축양식은 고풍스런 경기장 양식을 현대적으로 재현하려는 1990년대 야구장 건축사와 맞닿아 있다고 한다. 볼티모어의 Camden Yards, 클리브랜드의 Jacobs Field, 콜로라도의 Coors Field 를 디자인했던 팀들이 설계를 맡았다고 한다.

경기 시작 30분도 안남은 시각, 길게 늘어선 줄을 예상했건만 의외로 매표소 앞은 한산했다. 시즌권이나 인터넷 예약을 통해 표를 구입한 사람들이 많아서 인 듯 했다. 또 대부분 야구장 내에 마련된 식당에서 경기전에 간단한 식사와 "맥주 한잔"을 즐기고 들어가는 것이어서 "플레이 볼" 이전에 허겁지겁 "김밥, 맥주"를 검정 봉다리에 들고 뛰어다니고 핸드폰으로 서로를 찾는 사람들은 없어 보였다. 매표소 바로 옆이 경기장 입구이니 적어도 "공설운동장" 스타일도 아니고, 다같이 경기장 한바퀴를 도는 잠실야구장 스타일도 아니니까..

구장 마다 다르겠지만, 생각보다 싼 가격에 몹시 행복했다. 벌써 몇년전 일이지만, 샌프란시스코에서 메이저리그 야구를 한번 관람하려 하다가 비싼 가격에 눈물을 머금고 경기장 밖만 배회했던 아픈 추억이 있다.
그날 저녁 최희섭이 홈런을 쳤단 뉴스를 봤다. 그때처럼 지금 기아에서 해주면 좋으련만....
더램 거주 3년만에 찾은 야구장이어서 "필드박스" 구역에서 보려고 했건만 안타깝게도 모든 표가 다 팔렸단다.
결국 "테라스 리저브드" 구역의 맨 구석자리인 215 구역에서 야구를 보게됐다.
알고보니 그자리는 원정팀 구역의 맨 끝자리였다. 역시 미국에선 반드시 예매를 해야만 했다!!
입장권에 할인권을 인쇄해 넣은 것도 특이했지만, 책자를 주는 것은 아주 좋아 보였다. 한국도 각 구단이 3연전씩 치루는 경기에 대한 간단한 신문이나 책자를 나눠주면 야구팬의 저변 확대에 좋지 않알까 싶었다.
물론 더램 불스 같은 마이너리그 팀들은 선수들이 수시로 바뀌는 데다가, 왠만해서는 지역 주민들이 선수들과 팀에 지속적으로 성원을 보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얼마간 불가피한 노력으로도 보였지만, 심지어 야구 기록표까지 책자에 넣어서 경기를 보는 재미를 배가하는 노력은 오랜 야구역사를 가진 미국에서가 아니면 보기 힘든 것이었던 듯 하다.
책자의 표지엔 올해가 "불 더램" 영화 개봉 20주년을 기념해 영화 포스터가 인쇄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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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기본적으로 "미친소"는 아니더라도 "성난소"가 모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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