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부터 이른바 "공정여행"에 관한 기사들이 심심치 않게 올라오는데, 관련 기사들을 읽을 때마다 머리가 갸우뚱 해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공정여행"은 "공정무역"과 비슷한 개념인가? 도대체 새삼스레 "공정"을 강조하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그래서 공정여행을 기획했다는 국제민주연대 홈페이지에 직접 들어가보았는데, 홈페이지 첫 화면에서 "공정여행"에 관한 다음과 같은 요약문이 게시되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지구화 시대"에 "여행 산업"들이 이윤추구에만 열을 올리는 상황에서 다시금 "주의"를 환기하는 것으로는 그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비행기 대신 버스 타고 버스 대신 도보를, 현지인들의 "경제"에 실질적인 도움을 준다는 것이 공정여행의 내용이라면 좀 실망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일단 가장 불편한 논리는 "여행자"의 관점에서 "시혜"적이며, 현지인-여행자의 관계를 애초에 이분법적이고 동등하지 않은 관계로 설정하고 있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관계적 긴장성, 그리고 여행의 일시성(temporality)이 만들어내는 제 문제들을 "금전적 Monetary"한 관계의 직접성으로 치환하는게 "공정"한 것일까? 도보탐방을 많이 한다는 것도 그 취지는 이해가 가지만, 강조할 만한 내용인가는 좀 의심스럽다.
오마이뉴스에 실렸던 기사를 좀 더 이해할 수 있을까해서 그와 관련된 것으로 보이는 프로그램 내용을 구체적으로 확인해보니, 다른 여행프로그램과 크게 다른 것을 찾아보긴 어려웠다.
대형 여행사들의 비상식적인 여행프로그램들이 여행자들을 유혹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 반면에 개인 여행자들의 자유로운 여행도 상당한 성장을 해온 것도 무시할 수 없다.
시중 서점의 스테디 셀러들 중에 여행서가 빠지지 않는다고 하지 않던가?
대부분의 배낭여행객들이나 개인 여행자들은 이미 비슷한 프로그램으로 "직접 계획하고 찾아" 여행을 하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그런데 운남 8박 9일 여행경비로 168만원이라는 그다지 저렴하지 않은 경비로 굳이 "공정여행"이라는 윤리적 외피를 씌우고 여행한다는 것은 지극히 자기 만족적인 "윤리 마켓팅"은 아닌가?
시니컬함을 좀 무마시켜볼까 하고, 혹시 외국에서도 비슷한 운동이 있을까 해서 구글 검색을 해보니, 의외로 "fair travel" 이란 개념은 그다지 많이 사용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단 한곳 멕시코에서 운영하는 www.fair-travel.net 이라는 곳에서 "공정여행"에 대해 소개하고 있었다.
지속가능한 로컬 개발 프로젝트와 환경보호 (UN의 밀레니엄 개발 프로젝트의 내용과 함께하는) 에 방점을 찍고 있다는 점에서 앞서 소개한 국제민주연대의 "공정여행"과 크게 다르지 않은 내용인데, 단지 차이가 있다면 이 프로젝트는 기존의 여행사/자들의 "기부" 참여를 유도하는 활동이지 직접 튜어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방식을 취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국제민주연대의 공정여행이 기존의 "대형 여행사"들의 마켓의 외부에서 새로운 "윤리 시장"을 개척하는 방식이라면, 멕시코의 fair-travel 프로젝트는 말그대로 여행자 기부운동인듯(홈페이지 정보만으로 보면) 하다.
냉정하게 말해서 두 관점다 내가 보기엔 문제적이다.
다른 자료들을 이후에 좀 더 찾아봐야하겠지만, "공정"이라는 윤리적 가치를 개발이나 금전적 시혜로 규정하고, 문화 상대주의적인 관점만을 강조하는 것은 뭔가 부족한 것이다.
분명한 것은 전세계 모든 국가들이 "관광업"을 국가의 일로 여기고 있고, 자본은 그 조건하에서 이윤을 추구하며, 여행이 가지는 일시성은 그것이 "호혜적"이던 아니던 이미 "금전적"인 것으로 대체로 규정되어 왔다는 것이다.
공정여행을 하나의 실험이자 운동으로 발전시켜 나가자면 그 이상의 무엇인가가 분명이 필요하고, 이것은 철학적, 학문적 논의들을 통해 그 내용들이 채워질 필요가 있다.
아마도 그 핵심적 문제에는 "강요된 환대"와 "세계시민으로서 여행자가 가지는 윤리적 책무"가 놓여있는게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