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월 28일 목요일

Good Bye, Howard Zinn!

하워드 진이 심장마비로 사망했단다.
미국의 대표적인 "행동하는 지성"의 하나였던 그였는데...

프레시안 관련기사.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40100128154010&section=05

그가 죽기전 네이션지에 오바마 정부 일년을 평가하며 남겼던 마지막 비평 중에서 발견한 인상적인 한대목...

 "...when you start out with a compromise, you end with a compromise of a compromise, which is where we are now." 


절충안을 가지고 시작하면, 당신은 절충안의 절충안으로 끝을 맺을 것이고 그것이 현재의 우리가 있는 곳입니다.


- http://www.thenation.com/doc/20100201/forum/6


 들뢰즈도 외쳤었다. "Do not compromise your desire!" 라고.

2010년 1월 27일 수요일

"They just made a terrible life choice!" by Margie Simpson


대학원생이 되겠다고 하는 것은 그러니까 "a terrible life choice" 다. 이 세상에선.. 허허!!
"작년에 600달러 벌었다"는 대목과 버린 음식 주어먹는 장면에서는 눈물이 날 뻔.
그러게 무슨 부귀영화를 보자고 다들 이렇게 사는지...
그나마 외국인 학생들은 "알바"도 못한다.

2010년 1월 26일 화요일

World Vision 과 Haiti 그리고 MB


네이버가 미국지사를 내고 영업을 시작했으니까, 내가 본 초기 화면의 광고는 미국 서버에만 올라오는 것들이다. 사실 처음에는 무슨 온라인 게임 광고인 줄 알았다.

"그들에게 사랑의 힘을 보여 주어야 할 때입니다."
"긴급요청"
"지진 긴급구호"
현란한 구호들의 오른쪽 귀퉁이에 십자가 문양도 숨겨놨다.

한비야가 무릎팍도사인지 허벅지장사인지에 나온 후로 인터넷에서 한비야와 월드비젼의 "실체공개"와 "명예훼손"논쟁이 있었던 것을 접한 적이 있다.
사실 내겐 별로 새로울 것도 없는 내용들이었는데, 어떻든 "회사"와 "선교단체"사이를 "자선"이란 망토를 뒤짚어쓰고 왔다갔다하는 단체가 내놓은 이 조잡한 광고를 보자 순간 극도의 짜증이 일어났다.

미국내에 다양한 구호단체가 아이티를 돕고 있고, 그 중 상당수는 비종교적인 NGO/NPO 단체들인데, 굳이 미국까지 무슨 글로벌 시장 확장에 나선 회사 마냥 "광고"를 할 필요가 있었을까?

긴급구호를 한다면서 모금을 한 후 정작 "긴급구호"에 지원한 액수는 별로 되지 않는다는 비판마저 받고 있는 단체가 말이다.

이유야 어쨌건 돕는다는데 시비를 걸고 싶지는 않지만, 무슨 구호활동이 "힘을 보여 주어야" 하는 행위라는 그들의 알량한 "과시적" 선민의식도 불편하고, 그게 결국 "월드비젼"의 힘일 뿐이라는 것은 뻔한 이야기다.
기금 모금 전화에 한국전쟁을 상징하는 6.25를 집어 넣어서 특별히 강조까지 하는 그들의 정치성은 더더욱 역겹다. 아이티가 한국전쟁시던가 후던가 기금을 마련해 도와줬다는 기사를 어디선가 본적은 있지만, 그건 미국한테는 한국이 지구종말할 때까지 갚을 빚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나 별반 다름이 없다.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어 자선활동에 참가하라고 독촉하는 것은 무슨 강도같은 협박행위인가도 싶고.

아이티가 우리에게 도움을 주었건 안주었건 고통받는 삶이 있는 곳에 도움의 손길을 보내는 것이 당연한 것인데, 그것마저 정치적으로 해석하고픈 이들이 있는 모양이다.

나도 갑자기 좀 정치적으로 이 상황을 보고도 싶어졌는데...
오늘 뉴스를 보다가, 솔직히 아버지를 대통령으로 둔 딸이라는 인간이 자기 딸까지 데리고, 페루, 인도, 스위스 여행하느니 아이티 가서 봉사를 하는게 그들이 말하는 "국가 이미지"나 "국익"에 훨씬 도움이 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미국 대통령가족도 한국에 놀러왔었네 어쨌네 하면서 정당화 하는 모양인데, 미국이 무슨 면죄부 발행해주는 국가인가?
이번에 보니 클린턴은 딸과 같이 아이티에 가서 구호활동을 하더만.
그런 것은 배울생각 안하고, 스위스 다보스의 최고급 리조트에서 열리는 부자들 포럼에 가서 "파티" 참가할 생각만 하는 "가족"이라는게 한국의 대통령 가족이라는 건 정말 머리 아픈 일이다.

적어도 그런식으로 쌓이는게 "월드 비젼"은 아니지 않겠는가?




2010년 1월 17일 일요일

3-3-3 아이러니.

David Harvey 가 이젠 고인이 된 Giovanni Arrighi 와 함께 했던 세미나(2008)에서 소개한 농담.

"아카데미에는 이런 농담이 있습니다. 당신이 어느 곳에 3주간 머무른다면 당신은 (그곳에 관한) 책 한권을 쓸 수 있습니다. 당신이 어느 곳에 석달간 머무른다면 논문하나를 쓸 수 있습니다. 만약 당신이 어느 곳에 3년간 머무른다면 당신은 아무것도 쓰지 못 합니다. 나는 <신자유주의의: 간략한 역사>란 책을 중국에 3주간 방문해 썼습니다."

농담이지만, 사실 어찌 보면 맞는 말이기도 하다. 아는 만큼 익숙해진 만큼 말하기 힘들어지는 아이러니가 학문의 세계에 없는 것은 아니니.  

논문집필 작업에 갈피를 못잡고 망설이는 내게 지도교수가 해 준 말도 별반 다른 것도 아니었는데,
"베트남에 대해 너무 많이 알고 있다는 것이 지금 너의 문제다."

이 아이러니를 극복해야 되는데,

이렇게 쓰고 난 후, 중국에 거의 3년째 머물고 있는 후배한테서 연락이 왔다. 뭘 어찌 써야할 지 모르겠다고.
사실 진정한 역설은, 알수록 모르는 것이 확연해 지고, 익숙해진 만큼 채 익숙해지지 못한 것들이 더 민감하게 다가온다는 사실이 아닐까?

2010년 1월 16일 토요일

연극 <웃음의 대학>

무지하게 추운 날이었다. 내가 대학로에 갔던 날은.
좀 호러틱 하게 말하자면 온몸을 칭칭 동여매고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볼 때마다 물어 뜯고 싶을 정도였는데, 뜨거운 피가 콸콸 쏟아져나와 날 덥힐 수만 있다면 그러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호객행위를 하지 않겠다고 여러 극단들이 공동 선언 비슷한 것을 하며 자정노력을 하기로 했다던데, 그래도 혜화역 2번 출구로 올라오자 마자 들려오는 소리는 "지금 곧 시작합니다, 연극 000. 연극 보러 오셨어요? 이거 한번 보세요" 였다. 꽁꽁얼어 붙은 거리에서 바삐 움직이는 발들과 주머니에 들어가 빠져나올지 모르는 손들은 따라오는 호객꾼들을 이리저리 흩어놓을 뿐 별다른 영향력은 없었다.

한편에서 보면, 추위 속에서 고생하는 이 호객꾼들은 많은 매체가 이른바 "연예인"출연작들에만 관심을 가질 뿐 무명 배우들과 영세 극단들에는 여전히 차가운 시선을 보이는 한 어쩔 수 없는 일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보다 많아졌다는 관객들도 여전히 "나 누구 봤다" 수준에서 작품을 선정하고 말이다.

어쨌든 나도 별반 다르지 않게, 동행자가 보고 싶었했던 <웃음의 대학>이라는 연극을 보았다.
내가 봤던 날은 안수찬과 백원길이 출연하였는데, 안수찬은 이래저래 TV에서 낯이 익은 그런 배우였다.

연극 내용은 대충 아래 블로그를 참조.
http://cafe.naver.com/museonandon.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2020

오랜만에 본 연극이었는데, 솔직히 나는 좀 그저 그랬다.
평일 공연이었음에도 객석 점유율이 상당히 좋았고 연기도 연출도 나름 깔끔하단 느낌이 들었지만,
뭐랄까 너무 매끈하달까? 마음을 움직이는 무언가가 부족했다.

그것은 아마도 일본원작을 "착실히" 해석한 작품이고, 두명의 배우도 "성실히" 연기를 펼쳤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웃음"의 대학이었지만, 그닥 웃기지 않아서일까? (내 앞줄 몇몇 아주머니 관객들은 아주 좋아하셨다. 역시 아저씨들 끼리만 연극 보러온 관객은 없었고.)
간단히 말하자면, Fairly tale 을 본 듯한 느낌이었는데, 그러다 보니 자꾸 내가 이 연극을 어디선가 보았던 것은 아닐까 하는 진부함이 때때로 몰려왔다. 
일본원작을 한국적으로 과감히 재해석 했었다면 어땠을까 싶던데, 지금이 무슨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의 시대도 아니고 아니 어쩌면 제 2차 세계대전 말기의 일본사회는 우리의 경험속에서는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의 시대와 닮아 있음에도 스토리를 굳이 "이국적"인 것으로 만들 필요가 있었을까 싶었다.

나중에 보니까 대학로의 상당수 연극들이 해외의 작품을 가져다 그대로 공연하는 것도 같던데, 새로운 희곡과 연출이 사라지고, 인지도 높은 배우들을 중심으로 한 "연기"만이 중심이 되는 한 연극 무대는 영화나 TV드라마에 배우 대주는 시스템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할 것 같다는 의심도 들었다.

모 인디 밴드가 공중파에 출연섭외를 받은 후에, PD로 부터 그들 대표 히트곡의 가사를 고쳐달라는 부탁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다. 공중파 방송에 부적절하다는 PD자신의 자기검열 때문이었는데, "미쳤어"라는 가사를 그러면 "솔쳤어"라고 바꾸란 말인가 해서 모두가 웃고 말았다.

이처럼 <웃음의 대학>이 다루는 검열 상황이 여전히 우리 사회에도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고, 최근엔 이 "낡은 시스템"이 아주 뻔뻔스럽게도 작동하는 것을 상기한다면, 연극무대가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을 낯익은 배우가 보여주는 깔끔한 연기에만 제한하는 것은 좀 문제적이지 않을까? 

찾아 보니 이 연극은 일본에서 영화화도 되었었나 보다. 그럼 이젠 좀 원작으로 부터 자유로워질 때도 되었을 텐데.


2010년 1월 12일 화요일

다시 미국.

"OO한 귀환"이라고 뭔가 거창하게 써볼까도 했는데,
테러범을 공항검색대와 입국심사장에서 잡겠다는 미국공항에서의 악몽이 떠올라 그만 뒀다.
한명이 여럿 잡을 수 있니까 그 한명을 잡기위해서 여럿은 계속 잡혀있어라라는 권력의 "경찰"업무 정당화는 가끔 내 머리에 폭탄이 설치된 듯한 느낌을 줄 때가 있다.
어쩔 수 없지 이미 제발로 들어왔던 미국이고,
난 이제 미국에서 하루빨리 나가기 위해서 다시 들어온 셈이기도 하니까.

그래도 어쨌든 돌아왔다.
한국에서의 한달이 자고 일어나니 꿈같이 느껴질 정도로 낯설지만 또 익숙한 공간으로 말이다.

생각해 보니 꽤 많은 일들을 하고 온 듯하다.
여행도 갔고, 난생처음 예술의 전당에 가서 발레도 봤고, 대학로에서 오랜만에 연극도 봤고, 영화도 꽤 많이 봤으며, 책도 한주에 한권은 읽었으니...

술도 꾸준히 마셨다.
지루하지 않은 술자리들이 몸이 허락하고 사람들이 날 반겨 해주던 한에서 이어졌었다.
아카데미 내부의 인간들은 역시나 별 재미가 없는 사람이란 걸
오랜만에 한국에서 만났던 사람들을 통해 재확인했다.
 
정작 내 본업과 관련된 그 어떤 일도 무려 한달동안 하지 않았고,
그때문에 남은 이달내내 "피똥쌀" 각오를 해야 할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시간의 무게가 삶과 더불어 묵직하게 느껴지고,
그만큼이나 비현실적인 어느 겨울날들을 가질 수 있었음에 뿌듯하다.

돌아오자 마자 새학기 강의보조 업무로 정신이 없는 상태지만,
간간히 그날들의 기억을 정리할 시간을 가져보긴 해야할 텐데...

아~ 다시 미국. 다시 일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