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aret Thatcher 가 사망한 이후 영국과 세계 곳곳에서 그녀의 "유산"에 대한 평가가 활발하다. 보도에 따르면 런던에서는 대처의 사망을 축하하는 파티까지 열렸다고 하니, 아시아적인 정서에서 보자면 조금 너무하다싶게 보이기도 하면서도 한편에서는 부럽기도 하다. (전두환이 죽으면 어떤일이 벌어질까?)
영국의 옥스퍼드 대학은 전통적으로 모교 출신 총리에게 부여하던 "명예박사"학위를 대처에게 수여하는 안에 대해서, 1985년 투표를 통해 반대했다. 영국 아카데미의 자존심을 보여준 행위라고 까지 평가받는 옥스퍼드의 결정은 그 자체로 의미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한편에서는 대처의 대학생활에 대한 궁금증을 낳는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대처는 옥스퍼드에서 화학을 전공하고 1947년 졸업했다고 한다. 졸업후에는 대체로 전공을 살려 Xylonite 회사와 음식-화학자로 일하기도 했는데, British Xylonite 에서 일할때는 노조에도 가입한 경력이 있다고 한다.
그러던 대처가 정치에 입문하게 된 계기는 1951 돌연 회사를 그만두고, 세금법을 공부를 시작, 1953년 변호사 자격시험(bar exam)에 합격 하면서라고 한다. 1959년 국회의원에 당선되면서, X-ray를 연구하던 화학자에서 정치가로 변신을 완성했다고.
박근혜의 경우는 1970년대 이른바 "서강학파"로 불리우던 경제학자들이 대거 박정희 정부에 관여하던 시기 서강대에 입학해서 전자공학을 공부했다고 한다. 1969년에 남덕우교수가 전격적으로 박정희에 발탁되고, 1970년에 박근혜가 서강대에 입학했다는 것은 우연치고는 매우 흥미롭다. 박정희는 아버지가 전공을 정해 준 경우인 것 같은데, 박정희는 전자산업의 발전에 관심이 있었고,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발전시켜 볼 의향이 있었다고한다. 박근혜가 지난 대선에서 핸드폰을 거꾸로 들고 사진 찍힌 것이라던지, 주로 수첩 필기를 좋아한다던지 하는 것으로 봐서는 그다지 전자산업에 큰 관심이 있었을 것 같지는 않다. 1974년 졸업 후에 돌연 프랑스에 가서 어학연수를 받다가 같은 해였던 1974년 육영수의 죽음으로 급거 귀국 했다고 하는데, 어머니의 죽음이 아니었으면, 박근혜가 프랑스에서 무엇을 공부했을까 조금 궁금하기도 하다. 그때쯤이면 적어도 자기가 하고 픈 무엇인가를 찾고자 하지 않았을까? 어떻든 전자공학 전공은 박근혜에게 큰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닌 것이 분명한 것 같다.
굳이 대처와 박근혜를 비교해 본 것은, 그러니까 둘다 인문/사회과학적 시각을 가지기에는 상당히 먼 삶을 살아 온 여성 정치인이라는 점 때문이다. 대처는 "사회 따위는 없고 개인만이 존재한다"는 유명한 말을 통해서, 자신이 원소를 중심으로 사고하는 화학자임을 드러내기도 했다. 박근혜가 전자공학을 열심히 공부했다면 최소한 회로와 구조등등에 관심을 가질 수 있을 테고, 대처보다는 나을 수 있겠다는 기대도 해볼 수 있겠지만, 그것은 그저 바램일 뿐. 대처가 신자유주의와 더 가까웠던 것은 화학보다도 어쩌면 "세금법" 전공 변호사가 되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어떻든 안타깝게도 대처는 피도 눈물도 없는 여성 정치인의 전형이 되어, 전세계에 신자유주의 바람을 몰고 왔다. 여성성에 대한 맹목적인 찬사가 얼마나 부질 없는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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