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월 13일 금요일

설득하지 못하는 자의 자괴감

꼭 반드시 내가 영어로 말해야 했기 때문은 아니었던 듯 하다.
자꾸만 말이 짧아지고 공감의 자리를 만들기 보다는 강압적 논리를 펼치는 버릇은 돌이켜 생각하니 참으로 오래된 습관이다.

91년 봄, 이른바 정치적 논쟁을 통한(사실상 구색맞추기 뿐이었던) 조직적 장악에 앞장 선 이래로, 나는 줄 곳 남을 설득하는 것 보다는 내 의견을 "선언"하는 편을 택해왔던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이를테면 어떤 일과 논쟁의 리더가 되는 것을 주저 해 왔다. 대학교때 학생회장을 할 때 조차도 그 자리가 내자리가 아니라는 느낌으로 일년간 고민했어야 했다. 내 의견을 관철시키는 지난한 작업에 적잖이 넌덜이도 냈었던 것 같고, 의견을 감춰야 한다는 "기술적 요구"에 대해서도 부던히도 불편해 했었던 것 같다.

어떤 사람들은 그런 나의 태도를 "차갑다"고 했고, 또 어떤이들은 "재수없다"고 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냉철함"이라고 여겨왔다. 그러나 그것은 대개의 경우 "말만 잘 해"라는 시니컬한 평가로 되돌아오기 일쑤였다.

어울리지 않게도 나는 개인주의자거나 아웃사이더가 되고 싶은 생각은 별로 없다. 늘 사람들 속에 있고 싶어하고 대화에 참여하고 싶어하고 문제들에 끼어들기를 좋아한다. 그리고 그 결과 어제처럼 찜찜함을 사람들 사이에서 종종 느껴가며 살아오고 있다.

전공수업 Syllabus를 결정하기 위한 과 동기들 모임에서, 나는 "이책이 없다" "이 학파가 빠졌다"고 말하는 동기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참을 수 없어" 그것들이 꼭 이번학기 수업에 필요한지가 우선시되어야 한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펼쳤다.
그러다가 마지막 시험보는 문제에 이르러서는 또 "나는 모든 시험"에 기본적으로 반대한다는 근본적인 입장을 제시했다. 적어도 대학원생에게는이라는 단서를 달았고 농담반 진담반으로 "시험으로 취직되지는 않는다"고 덧붙이긴 했지만.

원론적이고 근본적인 내 입장은 그 어조의 단호함 때문에 상대방의 말문을 막는데는 성공했지만, 모두들 편안하게 내 입장을 받아들이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물론 내 짧은 영어에다 기본적으로 내 어조에 깔려있는 상대에 대한 "무시"가 있었겠지만 결국 나는 그 썰렁해진 분위기에 표정관리도 안되는 어정쩡함을 회피하기 위해서 몇 발짝 뒤로 물러서야했다. "뭐 반드시 그래야하는 것은 아니고.." "이런 의견도 있다는 젓도에서...."
이미 때는 좀 늦었고, 그래서는 안될 것이었는데도.
시간때문에 자리를 급히 정리해야되는 상황과 맞물려 서로 인사도 제대로 안하고 빠져나는 분위기란 분위기를 격양시켰던 내가 어떤 책임을 느껴야는 묘한 뒷여운을 남겼다.

그리고 집에 돌아오니 뭔지모를 자괴감 사이로 그간 내 말투와 어법과 대화의 기술들에 대한 반성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물론 바로 그 전날 선배 L이 내개 한차례 지적을 했었기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얼마전 술자리에서 남을 비판하던 내 모습에 대한 그의 스케치는 직접적이지는 않았고 뭘 말하고 싶었는지 불분명 했지만 아마도 그때문에 내 속에 물음표로 남아 있던 것이기도 했다.

모든 문제의 조건을 살펴봤을 때 아마도 내가 남들과 일상적인 대화를 안한지 오래됐다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석사논문을 쓰기 시작하면서 급속히 이른바 "사회적" 관계로 부터 멀어진 이래 익숙하고 오랜 관계들의 몇몇을 제외하고는 장기간 장시간에 걸쳐 이야기를 하고, 토론을 해본 적이 없는 것도 같다.
다른 한편에서는 상대방에 대한 배려라는 대화술의 기본 전제가 아주 희미해져 있다는 생각도 든다. 그것은 얼마간 "비사회적" 화법에 대한 나의 동경에 기초하고 있기도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도 같지만, 그래도 천편일률적인 언어적 "폭발"은 그 불연소때문에 화약냄새만 진동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도 같다.

어쨌든 남들이 기분 나빠지는 것 만큼 최소한 내가 기분이 나빠져서는 안될 것인데 나는 자꾸 그렇게 되가는 것 같으니 대화와 토론이 변비와 치질의 고통처럼 기억되는 악순환이 지속되고 있다.

말하고 싶은 특별한 것을 가지고 사는 인생인지, 듣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삶인지 아마도 이런 자괴감은 이런 저런 심연과 이어져 있을 것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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