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 4일 월요일

언제부터 안철수가 "가난한 집 가장"이었나?


솔직히 처음 안철수가 의원직을 상실한 노회찬의 지역구에 출마하겠다고 선언했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역시나 안철수는 정치를 "효율성"의 문제에서 접근하고 있고 "가능성이 크지 않은" 것에 관심을 두지는 않는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알려진 바 대로 그는 지난 대선 후보 사퇴 전에 집중적으로 여론조사를 진행했고, 단일후보로의 가능성과 단일후보의 당선 가능성을 두고 고심한 끝에 "가능성이 낮은" 선거에서 책임을 떠안지 않으면서도 스스로의 가치 또한 절하되지 않는 정중동 동중정의 꽤나 성공적인 미묘한 행보를 이어갔다.

그리고 노회찬이 의원직을 상실했다.

안철수의 보궐선거 출마가 점춰지기는 했지만, 서울에서 그것도 야당의 지역구가 비어있게 되는 상황은 그에겐 안정적인 데뷰무대가 상당히 좋은 조건에서 생겨난 것이었을테다. 수도권에서의 선거전은 안철수가 유일하게 지닌 정치적 자산이랄 수 있는 "여론"의 바람을 불러일으키기 좋은 조건이고, 모든 언론의 조명 또한 선거기간 내내 받을 수 있는 최선의 입지일테니까.

여기까지는 말그대로 누구나 권력의지를 가지고 있다면 예상되는 사고의 흐름일테다.

하지만 그가 노회찬의 지역구에 출마하겠다는 보도가 나가고 나서, 일단의 비판과 공격이 터져나오게 되었다. 노의원의 의원직 상실이후 조국 교수가 "사면 앵벌이" 까지 나선 통에, 노회찬은 한껏 "정치적 희생양/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던 차였고, 여세를 몰아 민주당 고 김근태 지역구에 아내 인재근이 출마해 당선되듯, 자신의 부인이 지역구를 승계하는 방법도 구체적으로  제시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노원병의 정치적 영주로 노회찬을 간주하기 시작했고, 그런 상황에서 터져나온 안철수의 출마선언은 정치 도의에 어긋나는 그저 손쉽게 여의도에 입성하고자 하는 의지만을 보여주는 "소인배"의 방식이라고 비난을 쏟아냈다.

여기까지는 그렇게 될 수도 있을 법한 상황의 전개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에 노회찬이 라디오 방송에 나와 "가난한 집 가장이 집안 식구들의 밥그릇을 뺏는 것 아니냐" "가난한 집 가장은 밖에 나가서 돈 벌어어 오는 것이 맞다"는 특유의 비유법을 사용한 촌평을 하게 됨으로 좀 더 심각한 상황이 되었다.

내가 충격을 받은 것은 바로 이 대목이다.

지난 총선과 대선에서 야권이 연대하고, 단일후보를 냈던 것은 자신들의 밥상을 함께 넓히고 키워 내겠다는 암묵적 동의에 의한 것이었다. 즉 당장에 공동의 적에게 대응해 승리한 후, 매우 우호적인 조건에서 각자의 정치적 지분을 극도로 확장하는 정치적 경쟁을 해 보겠다는 합의에 바탕한 것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뿌리가 다르고, 이념이 다르고, 정치적 지향이 다른 그룹인데도 불구하고 모두 "한 가족 처럼" 공동 정치운명체처럼 대응했다. 엄밀하게 말해서, 안철수는 무소속이고 급작스레 정치적으로 부상한 이력때문에, 이 "한가족"과 겸상하며 우애를 모색하기는 어려웠던 것도 사실이다. 그는 민주당과 진보정의당에게 일종의 "매우 힘이 될 듯"한 "외부자"였다.
진보정의당은 민주당과도 큰 차이와 거리가 있었으나, 민주당을 지지하는 방식으로 단일화를 해버렸고, 그 민주당은 안철수와 제대로 협상도 못 해보고, 급작스런 안철수 후보 사퇴로 인한 어부지리 단일화를 완성하게 되었다. 엄밀하게 말하면 민주당은 그 어떤 야권의 정치세력과도 "의미있는 단일화"를 하지는 않았고, 단지 현실정치판에서 세력이 크고 조직적 뿌리가 깊다라는 이유만으로 "자진사퇴"의과정을 통해 "단일후보"가 되었다. 정당 혹은 정치세력간의 "후보 단일화"의 역사상 아마도 가장 기괴한 단일화 과정이 아니었을까도 싶은데, 어쨌든 소수적인 정치세력들은 그들에게 좀 더 열린 정치 환경이 대선승리를 통해 만들어 질 수 있을 것이라고 손쉽게 생각했으므로,  마치 "한가족" 처럼 행세하려고 애썼다.

그러나 대선에서 패배했다.

패배의 충격은 "집단적 충격"이었고, 마치 단한번도 패배를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이, 민주당과 진보정의당은 스스로의 미래나 전망에 불안해 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안철수는 여전히 살아 있는 정치변수였고, 민주당과 진보정의당은 쪼그라든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를 현실로 받아들이지 못 한채,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다라는 식으로 박근혜 정부와의 싸움에 곧바로 나서기시작했다. 물론 여기서는 박근혜 정부의 무능력과 인사실패, 그리고 소통부재가 야당을 다시 전선으로 불러모으는 효과를 나았음도 지적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현실은, "대선 패배"다. 대선패배는 민주당과 진보정의당이 기대하던 정치적 상황을 불가능 하게 만드는 사건이다. 사건적으로 이제 둘은 단결하거나 단일대오를 형성해서 구조적인 변이를 만들어낼 가능성이 잠정적으로 사라졌다. 다시말해, 이제는 어떤 절대적인 목전의 목표가 사라진 상태다. 따라서 정치집단으로서 각개약진하다가 각각의 정치적 사안에서 경쟁과 연대를 모색하는 것이 맞다.

그런데 둘은 "대선패배체제"를 항구적으로 유지하려는 듯 싶다. 어떤 "패자의 연대" "동변상련"의 체제를 만들고자 하려는 듯 말이다. 그러한 정치적 사고의 저변에서, "가난한 집"이라는 수사는 "패배한 공동 운명체"라는 의미를 지니고 등장할 수 있다.

대선 패배트라우마가 너무 커서 잠시 넋을 잃은 상태라고 볼 수 있을 것도 같다.

그런데 정말 문제는 안철수를 느닷없이 "가장"으로 호명하는 그들의 "메시아"적 세계관이다.
가난한 집 혹은 의사 가족관계 안에 잘 배치할 수 없었던 그를,
단지 노회찬의 지역구를 노리고 보궐선거에 출마한다는 이유만으로 "가장"으로 부른 것은 실망을 넘어 치욕스러운 정치적 망언이다.
게다가 그것이 노회찬의 입에서 직접 나왔다는 것은 더더욱 충격적이다.

정치인이 자신과 함께 하는 세력을 정치적으로 "빈곤한" 세력으로 폄하하는 것도 진보와는 거리가 있는 것일진대, 안철수를 단지 자신의 지역구에서 멀리 쫒아내기 위해 "가장"이라고 호명해 주는 것은 아무에게나 현실적으로 힘을 가진 자 혹은 세력이라면, 그들이 최소한의 "밥그릇"을 보장한다면 기꺼이 무릎꿇겠다는 태도다.

대관절 안철수가 야권, 진보 혹은 어느 분류에 속하는 정치세력을 대변하는 정치적 "가장"일 수 있단 말인가? 최대한 양보해도, 안철수는 "가난한 집"과는 애초에 겸상도 껄끄러워 하고, 자신의 책임을 함께 투사하고자하는 의지 또한 없던 사람이다.
보다 직접적으로, 설령 안철수가 "가장"행세를 한다고 해도 비판하고 뜯어 말려야할 사람이 "진보"정의당 노회찬이어야 하는 것 아닐까? 언제부터 다른 보수정치세력의 "배려"에 입각해 정치하기 시작했나?

"밖에 나가서 돈벌어 오"지 않는 안철수가 부끄러운게 아니라, 그런 짐을 지우며 제 밥그릇 챙기는 인상을 주는 진보정의당과 노회찬이 더 부끄러워 해야하는 상황이다.

의원직 상실이 억울하고 비통할 수 있다. 상실감에 고통스러울 수도 있다.
그러나 정치는 "가난한 집 식구들"이 각자 밥그릇을 챙기는데 급급한 그런 구조로 진행될 때 가장 비관적이다.

이번 보궐선거는 냉정하게 말해서 모든 정치세력이 스스로를 시험하는 자세로 치루는 것이 맞다. 어설픈 야권 단일화의 반복은 야권내 제 정치집단들만 "가난한 집 식구들"로 남겨지게 할 뿐이다.

안철수와 붙어 승리해라. 그럴수만 있다면.
이런 자세가 필요하다. 진보정의당이던 민주당이던.
어설픈 "가족행세"는 잠시 접어 둘 때이다.

P.S.
1. 노회찬의 부인이 출마하겠다는 "상당히 구체적인 방안"은 솔직히 말도 안되는 것으로 보인다. 진보정의당은 민주당이 아니다. 탄탄한 당원조직 기반이 없으면 그런 지역구 가족 승계는 불가능한 기획이다. 게다가 노회찬은 "자력"으로 노원병에서 과반수 이상 득표를 통해 당선되었다기 보다는 민주당의 도움이 매번 필요했던 것 아닌가? 또 보궐선거는 조직선거 아닌가? 바람을 일으키지 못 한다면 더더욱.

2. 분열해서 졌다는 비난을 야권이 받을까봐 두려워들 한다는데, 단일화해도 졌다. 총선 대선 모두다. 어차피 상황이 의석 한두개로 뒤바뀌는 의회 권력도 아니다. 각 정치세력이 최대한 스스로의 색깔을 가지고 경쟁해 보는 기회를 갖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더 나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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