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혹 환경담론에 충실한 사람들이 "배기가스를 줄이고, 환경을 생각한다"는 취지로 대중교통을 이용하겠다는 결의를 밝힌다. 매우 바람직한 "결의"인 것은 사실인데, 그들이 한가지 간과하고 있는 것은, 오늘날 대중교통 이용은 "환경담론"과는 조금 동떨어진 문제에 봉착해 있는 것도 사실이라는 것. 단지 서비스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화와 사회관계의 파편화가 낳은 문제.
간단히 말해서, "낯선 사람들"과 부딪쳐야 하는 즐겁지 않은 경험이 낳는 문제도 심각하다.
혹자는 낯선이들과 마주하는 경험을 매우 긍정적으로 보기도 하지만, 그것은 대중교통을 "관광" 열차나 버스로 활용하는 여유를 가진 사람들의 경우이고, 매일매일 통학과 통근으로 피곤에 지친 사람들에게는 낯선이들과의 조우가 마냥 즐거운 일만은 아니다. 특히 여성에게 대중교통은 성추행과 언어폭력등에 노출되기 쉽상이기 때문에 대다수의 젊은 여성들이 "뚜벅이 생활"에서 은퇴하고 싶어하는 것은 대체로 대중교통이 낳고 있는 피로와 공포 때문이다.
사실 이 문제 해결에는 그닥 답이 없다. 특히 한국의 서울처럼 도시가 비정상적으로 비대하고 주거공간, 유희공간 그리고 업무공간의 분절과 파편화가 극대화된 곳은 대중교통의 이용이 "즐거움"을 주기엔 어려움이 있다. 서울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 "마을버스 안"에서 조금더 인간적인 경험을 하고 있다면, 대체로 지하철은 사건과 사고의 공간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조금 더 인간적인 대중교통이 되기 위해서는 일단 그 수용 인원이 줄어들어야 한다. 그리고 최소한의 육체적 편의를 위해 의자가 많아야한다. 그런데 그렇게 되면 애초에 "효율성"에 바탕을 두었던 환경오염 감소라는 취지에는 역행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효율성" - 그것이 환경이던 무엇이던-의 문제로 대중교통을 접근할 것인가, 아니면 정치/문화적으로 분절되고 파편화된 공간과 인간관계를 잇는 도구로 접근할 것인가라는 질문중에 하나의 방향을 잡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사족하나.
대중교통과 이동권의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도 있지만, 사실 많은 사람들이 굳이 자주 오랜시간 이동할 필요가 없는 사회가 더 나은 것일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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