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2월 31일 목요일

David Lodge, Small World (교수들)


생각보다 책읽을 시간을 확보는 하는 것이 쉽지는 않다.
오금이 저릴정도로 몰아치는 겨울 바람에 숨어든 카페들은 연말의 북적거림으로 가득차 있었고,
Guest House는 밤 12시면 불을 끄고 취침하는 에티켓을 요구하였다.

오고가며 이동하는 버스와 지하철 안에서 "띄엄띄엄" 읽던 책은 며칠전에서야 마지막 페이지를 넘길 수 있었다.

교수들이라고 번역된 Small World 는 David Lodge 의 학계 풍자소설 3부작의 하나이다.
사실 3부작 (Changing Places, Small World, 그리고 Nice Work)을 한꺼번에 번역한 것이 아니면서 덜커덕 "교수들"이라고 번역해 버리면,
다른 교수들의 학교옮기기를 풍자한 소설이나, 연구업적을 풍자한 소설들은 어찌하라는 말인지 모르겠지만, Small World가 교수들 사회를 풍자한 소설인 것은 맞다.

비영문학 전공자에겐 다소 낯선 문학작품들과 이론들의 인용과 패러디가 곳곳에 스며들어 있지만, 일반 독자들이 읽는데 큰 걸림돌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번역 문장들의 교열을 보지 않은 부분들이 눈에 거슬릴때가 종종 있는게 이 책의 흠이랄까?

교훈적 메시지를 주는 책은 아니고 풍자 소설이니 교수들은 이렇게 살고 학계는 이렇게 움직인다로 보아도 괜찮을 듯하다. 내가 유학을 하고 있어서 더더욱 현실감 있게 읽을 수 있었던 책이었던 듯.

글 내용중에 나오는, 세계석학의 "사사"를 받기위해 몸으로 헌신하는 한국 유학생 이송미의 이야기는 참으로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그런 사람들이 있었던 것, 또 있는 것도 사실이니 괜한 민족적 감수성으로 부끄럽거나 화낼 필요는 없는 것이겠지!

2009년 12월 23일 수요일

홍대앞 카페에서

훌쩍 2주가 지나버렸다. 한국에 온 지.
사람이 삶의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확인 하는 방식은 많다.
눈가에 자글자글 해지는 주름살이던지 얼굴위로 후추 뿌려놓은 듯 생겨난 기미를 어느날 거울을 통해 확인한다던가, 카드 고지서나 공과금 고지서가 날라와 말라가는 통장잔고를 확인한다던가....
어쨌든 대체로 혼자라고 느껴지는 시간에서야,
그렇게 흐름의 가장자리에 살짝 밀려난 느낌이 들때야 거침없이 혹은 속절없이 흘러가는 어떤 시간들을 관조하듯 보게 되는 것 같다.
그래. 2주가 지났다. 2주가 또 내게 남아 있고.

인천공항을 빠져나와 눅눅하였으나 퀘퀘하지는 않았던 모텔방에서 하루밤을 보낸 후,
강원도에 갔었다.

겨울해는 짧고, 바람은 매서웠기에 생각보다 많은 감상을 털어내거나 안아오거나 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편안하고 안락한 삶에 대한 동경만이 계절과 세월에 쓸려가버린 듯 애틋하게 일어났다.

그래도 한국 현대사 책에서만 읽던 사북 탄광에 가보았던 것은 계획에 없었던 것이었기에 의미가 남달랐다.
한국 현대사가 남겨 놓은 공포영화 셋트장 같았던 탄광에서 박제화된 광부들의 삶의 흔적을 바라보는 것은,
진폐증에 피를 토하고 갱도에 갖혀 신음하며 소리치던 이들, 그 밖에서 발을 동동구르며 통곡하던 삶들의 폐허를 보는 듯 했다. 자본주의의 폐가....

그 "폐광" 위로 화려한 불빛을 뽐내며 우뚝선 카지노에도 갔었다.
발딛을 틈 없이 들어찬 사람들 사이로
충혈된 눈망울과 노숙의 시큼한 냄새가 동물적 혐오감을 자극하고,
테이블 위로 쉴새 없이 던져지던 오만원권 뭉치들이 지폐계수기 위에서 연신 경쾌한 소리를 내고,
한 판이 끝날 때마다 구멍속으로 쉴새없이 딸그락 거리며 빨려 들어가던 칩들이 사람들의 탄식을 아우르던.....

자본의 막장은 실제 탄광이던 그 위에 화려하게 자리한 카지노에서든 삶을 칠흙같은 어둠속으로 질식하듯 빨아 들이는 것 같았다. 

그렇게 강원도 여행은 끝났다.
그리고 홍대근처의 Guest House 에서 본국에 돌아온 "Guest"로 요사이 며칠을 보냈다.

핸드폰이 없어 공중전화기를 찾으러 돌아다니다가,
끝내 지독한 독감에 걸렸고,
주거부정 상태로 이곳 저곳을 떠도느라 미국에서 한달 생활비를 2주만에 써버리기도 했다.

3500원짜리 밥집이 있는 것은 고맙고 행복한 일이었으나,
조그만한 커피잔에 담긴 그럭저럭한 맛의 커피 한잔에 5000원씩 한다는 것은 영 피곤한 일이다.

집 떠나면 고생이라지만, 내게 언제 "집"이 있기나 했더란 말이냐.
돌아갈 곳이 없다는 것, 돌아가고 싶은 곳들 마저 "일시적"이라는 사실은 아무래도 문제적이다.

2009년 12월 8일 화요일

Victor Jara .. 산티아고의 별

한국에 들어갈 준비를 하기 위해 집에 오는데 라디오에서 익숙한 이름과 관련된 뉴스가 나왔다.

Victor Jara. 남미 Nueva Canción (신음악 운동 - 얼마전 또다른 핵심인 Mercedes Sosa 가 사망했다)의 핵심. 남미의 사회주의 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한 미국 CIA의 공작과 칠레의 군부 피노체트가 이끈 쿠데타 정권의 손에 살해당한 가수.

그가 칠레 민중의 품 속에서 다시 한번 장례식을 치루었단다.

칠레를 "피"로 통치한 독재자 피노체트는 민중의 심판을 모면하고 "자연사"했지만, 그래도 칠레의 민중들과 대통령은 그의 "국장"을 거부함으로써 그의 만행을 역사적으로 "심판"했었다. (한국에서 전두환이나 노태우에 대해 그럴 수 있을까?)

빅토르 하라의 두번째 장례식은 독재정권의 죽음과 민중 민주주의의 승리 그리고 민중과 함께 했던 가수의 찬란한 부활의 의식이었던 듯.

오늘 밤에는 빅토르 하라를 들어야 겠다.

"평화롭게 살기 위한 권리" 1971년 앨범 타이틀 곡
베트남의 호치민을 추모하는 곡이다.
평화롭게 살 권리에 대해 노래하던 그였지만, 그의 운명은 그렇지 못 했다.
1973년 칠레에서 피노체트가 쿠데타를 일으킨 다음날 시위에 참여했다가 붙잡혀 고문당하고 살해당했다.
그의 나이 38세.


수천명의 사람들이 산티아고에서 열린 빅토르 하라의 두번째 장례식에 참가했다.
그가 살해당한지 36년만의 일.

그가 부른 수많은 곡들은 칠레의 상징이 되었다.
빅토르하라는 1973-1990년까지 지속된 독재자 피노체트의 지배기간 동안 희생된
3000명 이상의 사람들 중의 하나이다.

거리의 예술가들도 빅토르 하라의 노제에 참여했다.

수많은 칠레인들에게 빅토르 하라는 Junta 정권 (남미에서 광범위하게 존재했던 군부독재-군사위원회가 통치하는-정권)에 대한 저항의 상징이 되었다.

빅토르 하라는 지난 6월 그의 사인 규명을 위해 발굴되었다.
그 결과 그는 고문당했고, 30발 이상의 총탄을 맞고 사망했음이 밝혀졌다.

영국에서 태어난 빅토르 하라의 미망인 Joan 은 누가 그를 죽이라고 명령했는지가 밝혀지기를 희망한다고 노제 참가자들에게 말했다.

1980년 광주학살의 최종 책임자가 아직 공식적으로 규명되지 않은 한국이지만(물론 우리는 그가 그리고 그들이 누군지 잘 알고 있다), 칠레에서는 반드시 독재청산과 과거사 규명 작업이 성공하길 희망한다.

"우리 승리하리라 (Venceremos)"
영화 "산티아고에 비가 내린다"에서 빅토르 하라가 운동장에서 사람들에게 합창을 유도 했던 노래.
피노체트의 쿠데타로 무너진 칠레의 살라도르 아옌데 사회주의 정부의 정치적 상징이었던 노래다.
민중의 합창은 결코 권력앞에, 희망을 거스르는 시간들의 흐름앞에 그 목소리를 낮추지 않는다.


사진출처: http://news.bbc.co.uk/2/hi/in_pictures/8397609.stm

2009년 12월 6일 일요일

Google Wave 초대장 (4장)

저도 다른 분께 받았으니, 이곳에 혹시나 오시는 분들 중에서 필요하시다면 선착순 초대장 4장 드리겠습니다.

kinhvanhoa@gmail.com 으로 자신의 구글 계정을 알려주시면 초대해 드리지요.

구글 왈, "핥아야 할 우표가 너무 많아서", 초대장은 바로 보내지진 않는답니다.

시험 해보니 약 15분에서 30분 사이에 도착하는 듯.

써보니 놀라운 기능들이 몇개 보이는데,
구글이 유저들에게 본격적으로 뻐기기 시작한 것 같아서 살짝 기분 나빠지기도 하더군요.

"구글 파도"를 제대로 탈려면 엉덩이 들고 일어나서 손만 들어선 안되는 것 같네요.

초대장과 더불어 다른 사람을 초대할 수 있는 8장의 초대장이 함께 오니까 너무 안달 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
 
그럼 구글 파도 타기 연습하며 새로운 한 주를!

오랜만의 한글책 주문

언제 오나 싶던 12월의 둘째주가 다가온다.
겨울 방학 기간 동안에 한국에 들어가보는게 몇년만인지 감회가 새롭긴 한데,
막상 두꺼운 옷을 트렁크에 챙겨야하고,  추위에 대한 공포도 얼마간 나고 하니까 흥분이 좀 잦아드는 느낌이다. 게다가 원래 계획보다 상황이 훨씬 악화된 터에, 한국에 들어가서 어쩌면 고향의 부모님 집에 가보지도 못하고 잠수타야 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도 무겁다. 나이들어 이게 왠 추태냐. 10대에 한번, 20대에 한번, 이제 30대에 한번 또 가족과 주변 사람들을 나뒹굴게 하였으니, 내가 생각해도 나는 참 굴곡 많은 인생이긴 하다.

그래도 말이다,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으니
세상일이란 늘 그렇듯 어떻게든 되고 말 것이다!  

그래도 한달동안 한국에 머물겠다고 덜커덕 항공권을 예매했던 것은 역시나 무리였다.
크리스마스 연말 연시의 들뜬 분위기와
오갈데 없고 부르는데 없을 듯 한 내 모습을 겹쳐보니 이건 조금 심각하다.

고민 끝에, 책 몇권이라도 미리 주문 해 공항에서 받아보면 쓸데없는 감상에서 얼마간 자유로울 수도 있을 것도 같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서점의 서가들을 돌아보며 책을 고르는 재미를 경험하는 것이 인터넷에서는 없는 것 같아서 좀 실망스러웠지만, 어떻든 일단 다섯권을 주문 했다.

바보들은 다 죽어버려라
=> 얼떨결에 충동구매한 책. 인터넷 배너 광고 보고 산 최초의 책이 될지도 모르겠다.
프랑스 독자들이 뽑은 올해의 책이라니 프랑스 독자들의 요즘 상태도 평가해 볼 겸 주문했다.
프랑스 독자들이란게 문학박사 학위 소지자들도 잘 이해할 수 없는 푸코의 말과 사물을 니스 해변에서 펼쳐들고 있는 "후까시" 독서풍이라고 전해 들었지만, 그건 1980년대고 2000년대는 또 다를 것 아니겠는가?
어쨌든 인터넷 서점들이 법적인 제약속에서 영업하는 통에, 많은 독자들이 아직 온라인 책 구매보단 서점에 직접가서 책사보는 사람들이니까 한국보단 나을 것도 같아서 한번 믿어보기로. 

칼의 노래
=> 늦은 감이 없지 않다. 남들 다본 영화를 뒤늦게 몰래 빌려 본 후진 느낌이 있지만, 몇달전에 일본의 가코시마에서 연구하고 있는 후배가 보내온 메일에 "이곳에 오니까 뒤늦게 김훈의 칼의 노래도 읽게 되더군요" 하던 문장이 있었던 것이 생각나서, 나도 "한국에 들어가는게 즐겁지만은 않으니까 김훈의 칼의 노래를 읽게 되었다"고 누구에겐가 말해보고 싶기도 해서 주문 했다.
가격도 많이 착해져서 나름 헌책방에서 책 산 느낌이었다.

교수들
=> 원제는 Small World 라는데, 움베르트 에코가 지난 100년간 출판된 책중에서 가장 재밌다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고 하고, 얼마전 Thanksgiving 저녁 식사자리에서 어느 교수님으로 부터 이책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비슷한 소설책에 대한 이야기를 재밌게 들었던 것 같아서 주문. 그래 풍자 소설 같은게 지금 내겐 필요해!

Beloved (빌러비드?)
=> 한국어판 제목이 좀 오버다. "어륀지" 스타일 번역어 제목인데, 처음엔 딴 책인가 해서 창을 열었다 닫았다 했다. 
빌러비드까지는 아닌데 말이지 하여간 너무들 하셔.
여하튼, "기억의 정치학"시간에 좀 읽어볼까 하다가 영어로 소설 읽을 만한 여유가 학기중엔 없는 고로 포기했던 것이 문득 "기억"나서 주문했다. 오늘 주문한 책들의 임시 수취대행과 재배송을 기꺼이 해 줄 아름다운 영혼도 이책을 언급하였기에 과감히 주문.

나는 이세상에 없는 계절이다
=> 김경주의 첫 시집. 언젠가 서점에 다녀온 친구가 시집하나 샀다면서 "동향출신"임을 강조했던 이야기도 생각이 나고, 작가가 야설작가등 거칠게 살기도 했대서 독특한 시적감수성 좀 구경해 볼까해 구매 결정.
우울해질땐 시가 주는 언어적 훈훈함과 잔잔하고 간결한 리듬이 그리워질 때가 있다.

한국에 있을때 주로 알라딘을 사용했는데 (미국 워싱턴 DC에도 알라딘이 생겼다), 이번에는 Yes24에서 구매했다. 1년 넘게 안썼다고 내 계정이 "휴면" 상태더만.
정운찬을 사외이사로 두었다는 Yes24의 영업행태가 그닥 맘에 들지는 않았으나, 아시아나 마일리지 적립도 해주고 무려 14,000 여원의 Yes24머니가 적립되어 있는 것을 발견해서 거기서 샀다. 웬 횡재수?
여하튼 나는 소비자 직접행동 같은 운동은 평생 못 할 운명인지도 모르겠다.

음.. 이제 대충 카페에서 죽때릴 준비는 끝난 듯.
전망 좋고 한적 + 착한 커피가격과 리필가능성 + 흡연가능성을 고려한 카페를 찾는 것이 문제로 남아 있지만... 

무겁게 책 들고 다니다가 술집에 놓고 오는 불상사는 어쨌든 피해야지. 흐흠! 

2009년 12월 4일 금요일

Halloween Bonus~

계획에 없었지만, 사람들의 성화에 못이겨 입어 본 내 할로윈 커스튬.
원래는 한국의 조카들에게 "짜잔~" 보여줄 생각이었는데...
다시보니 술마시다 떠밀려 갑자기 옷 갈아입는 통에 커스튬의 각이 안 산 문제가 있네..
꼬리도 좀 세웠어야 했는데... :)

Halloween on Franklin Street #10

휴~ 이제 끝~
사진 올리기도 쉬운일이 아니다. 잘 버리지 못 하는 성격 때문인가? 그렇다고 저장해 놓고 자주 꺼내보는 성격도 아닌데...

"African Nights?"
씁쓸하게도 이동네 인구 분포상 다수를 이루는 African American 들의 참여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저승사자처럼 보였던 백인들에 대한 기억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아서 일까?
밤에 돌아다니면 경찰로 부터 준 범죄자 취급을 당하는 사회적 차별 때문일까?


디지털 시대의 Halloween

아이폰 시대여서인지 이미 좀 "낡은 듯"한 아이팟

Twitter 도 언젠가 저런 코스튬 플레이의 대상이 될 수 있을까?

Halloween on Franklin Street #9

뒤늦게 출동한 Ghost Busters


너무 잘 어울려서 가발일까 잠시 궁금했던..


날아가는 집을 표현한 아저씨는 인기 대 폭발.
부동산 가격 상승에 대한 바람 때문이었을까?



"Caution 드레스"를 입은 위험한 몸의 아낙네.


역사나 저 아이들 소품은 뭔가 있긴 한데...

쉴새없이 자전거를 끌고 다니던 아저씨.

THIS is Halloween day!

노스캐롤라이나의 보험회사를 저승사자로 묘사한 것일까?
나름 "개념"있어 보이는 저승사자 코스튬 플레이.

다시만난 "떠도는 유령들"


Obama on Franklin Street

역시 빠질 수 없는 오바마 Costume Play.

팔걸이 위치가 조금 거슬렸지만,
몇몇 "인기좋은" 코스튬 플레이어 아저씨들은 "프리허그" 모드였으니까,
내 질투라고 치자.


Halloween on Franklin Street #8



함께 갔던 분들이 "베스트 드레서"중의 하나로 뽑았던 골판지 공작새.


어느 샌드위치 회사 광고였는지 기억은 안나지만 익숙한 캐릭터

점술 자판기를 이리저리 끌고 다녀 가장 힘들게 보였던 코스튬 플레이.
"감투상"을 드려야할 듯.


1974년 헝가리 아저씨 Rubik이 발명한 Cube의 재림.
헝가리 대통령 만나 만찬하면서 느닷없이 "뻥뻥뻥" 전화 스토리를 늘어놓으신 MB 생각이 잠깐.
도움이 안돼 역시나. 상상력을 빈곤하게 만드는데는 최고 선수신 듯 MB는.

빨래 바구니 뚫고 나온 언니를 제대로 찍어 놓을 걸 하는 아쉬움이 잠깐.

Halloween 아저씨들

핑크천사의 해맑은 미소?

Go Pink~

반지의 제왕이던가? 간달프?

핀나간 사진이지만. "구명뽕"을 하셨달까.

이브닝 드레스


실루엣이 너무 착하신 솜털 천사 아저씨

사공이 많아 거리로 나오신 아저씨들



타잔 총각

Halloween on Franklin Street #7

"슈퍼마리오"
빨리 돈 아껴서 Wii 사야하는데.

슈퍼 마리오 아저씨 앞에 선 아저씨 표정이 압권!


핀 나간 사진이지만, 할로윈 단체사진.
놀이동산 같은데선 이것도 돈내고 찍어야하지만, 여기선 무료.



바나나 입은 파자마

Go Green~

"I-phone은 받는게 아니라 보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