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오나 싶던 12월의 둘째주가 다가온다.
겨울 방학 기간 동안에 한국에 들어가보는게 몇년만인지 감회가 새롭긴 한데,
막상 두꺼운 옷을 트렁크에 챙겨야하고, 추위에 대한 공포도 얼마간 나고 하니까 흥분이 좀 잦아드는 느낌이다. 게다가 원래 계획보다 상황이 훨씬 악화된 터에, 한국에 들어가서 어쩌면 고향의 부모님 집에 가보지도 못하고 잠수타야 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도 무겁다. 나이들어 이게 왠 추태냐. 10대에 한번, 20대에 한번, 이제 30대에 한번 또 가족과 주변 사람들을 나뒹굴게 하였으니, 내가 생각해도 나는 참 굴곡 많은 인생이긴 하다.
그래도 말이다,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으니
세상일이란 늘 그렇듯 어떻게든 되고 말 것이다!
그래도 한달동안 한국에 머물겠다고 덜커덕 항공권을 예매했던 것은 역시나 무리였다.
크리스마스 연말 연시의 들뜬 분위기와
오갈데 없고 부르는데 없을 듯 한 내 모습을 겹쳐보니 이건 조금 심각하다.
고민 끝에, 책 몇권이라도 미리 주문 해 공항에서 받아보면 쓸데없는 감상에서 얼마간 자유로울 수도 있을 것도 같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서점의 서가들을 돌아보며 책을 고르는 재미를 경험하는 것이 인터넷에서는 없는 것 같아서 좀 실망스러웠지만, 어떻든 일단 다섯권을 주문 했다.
바보들은 다 죽어버려라
=> 얼떨결에 충동구매한 책. 인터넷 배너 광고 보고 산 최초의 책이 될지도 모르겠다.
프랑스 독자들이 뽑은 올해의 책이라니 프랑스 독자들의 요즘 상태도 평가해 볼 겸 주문했다.
프랑스 독자들이란게 문학박사 학위 소지자들도 잘 이해할 수 없는 푸코의 말과 사물을 니스 해변에서 펼쳐들고 있는 "후까시" 독서풍이라고 전해 들었지만, 그건 1980년대고 2000년대는 또 다를 것 아니겠는가?
어쨌든 인터넷 서점들이 법적인 제약속에서 영업하는 통에, 많은 독자들이 아직 온라인 책 구매보단 서점에 직접가서 책사보는 사람들이니까 한국보단 나을 것도 같아서 한번 믿어보기로.
칼의 노래
=> 늦은 감이 없지 않다. 남들 다본 영화를 뒤늦게 몰래 빌려 본 후진 느낌이 있지만, 몇달전에 일본의 가코시마에서 연구하고 있는 후배가 보내온 메일에 "이곳에 오니까 뒤늦게 김훈의 칼의 노래도 읽게 되더군요" 하던 문장이 있었던 것이 생각나서, 나도 "한국에 들어가는게 즐겁지만은 않으니까 김훈의 칼의 노래를 읽게 되었다"고 누구에겐가 말해보고 싶기도 해서 주문 했다.
가격도 많이 착해져서 나름 헌책방에서 책 산 느낌이었다.
교수들
=> 원제는 Small World 라는데, 움베르트 에코가 지난 100년간 출판된 책중에서 가장 재밌다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고 하고, 얼마전 Thanksgiving 저녁 식사자리에서 어느 교수님으로 부터 이책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비슷한 소설책에 대한 이야기를 재밌게 들었던 것 같아서 주문. 그래 풍자 소설 같은게 지금 내겐 필요해!
Beloved (빌러비드?)
=> 한국어판 제목이 좀 오버다. "어륀지" 스타일 번역어 제목인데, 처음엔 딴 책인가 해서 창을 열었다 닫았다 했다.
빌러비드까지는 아닌데 말이지 하여간 너무들 하셔.
여하튼, "기억의
정치학"시간에 좀 읽어볼까 하다가 영어로 소설 읽을 만한 여유가 학기중엔 없는 고로 포기했던 것이 문득 "기억"나서 주문했다. 오늘 주문한 책들의 임시 수취대행과 재배송을 기꺼이 해 줄 아름다운 영혼도 이책을 언급하였기에 과감히 주문.
나는 이세상에 없는 계절이다
=> 김경주의 첫 시집. 언젠가 서점에 다녀온 친구가 시집하나 샀다면서 "동향출신"임을 강조했던 이야기도 생각이 나고, 작가가 야설작가등 거칠게 살기도 했대서 독특한 시적감수성 좀 구경해 볼까해 구매 결정.
우울해질땐 시가 주는 언어적 훈훈함과 잔잔하고 간결한 리듬이 그리워질 때가 있다.
한국에 있을때 주로 알라딘을 사용했는데 (미국 워싱턴 DC에도 알라딘이 생겼다), 이번에는 Yes24에서 구매했다. 1년 넘게 안썼다고 내 계정이 "휴면" 상태더만.
정운찬을 사외이사로 두었다는 Yes24의 영업행태가 그닥 맘에 들지는 않았으나, 아시아나 마일리지 적립도 해주고 무려 14,000 여원의 Yes24머니가 적립되어 있는 것을 발견해서 거기서 샀다. 웬 횡재수?
여하튼 나는 소비자 직접행동 같은 운동은 평생 못 할 운명인지도 모르겠다.
음.. 이제 대충 카페에서 죽때릴 준비는 끝난 듯.
전망 좋고 한적 + 착한 커피가격과 리필가능성 + 흡연가능성을 고려한 카페를 찾는 것이 문제로 남아 있지만...
무겁게 책 들고 다니다가 술집에 놓고 오는 불상사는 어쨌든 피해야지. 흐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