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2월 8일 화요일

Victor Jara .. 산티아고의 별

한국에 들어갈 준비를 하기 위해 집에 오는데 라디오에서 익숙한 이름과 관련된 뉴스가 나왔다.

Victor Jara. 남미 Nueva Canción (신음악 운동 - 얼마전 또다른 핵심인 Mercedes Sosa 가 사망했다)의 핵심. 남미의 사회주의 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한 미국 CIA의 공작과 칠레의 군부 피노체트가 이끈 쿠데타 정권의 손에 살해당한 가수.

그가 칠레 민중의 품 속에서 다시 한번 장례식을 치루었단다.

칠레를 "피"로 통치한 독재자 피노체트는 민중의 심판을 모면하고 "자연사"했지만, 그래도 칠레의 민중들과 대통령은 그의 "국장"을 거부함으로써 그의 만행을 역사적으로 "심판"했었다. (한국에서 전두환이나 노태우에 대해 그럴 수 있을까?)

빅토르 하라의 두번째 장례식은 독재정권의 죽음과 민중 민주주의의 승리 그리고 민중과 함께 했던 가수의 찬란한 부활의 의식이었던 듯.

오늘 밤에는 빅토르 하라를 들어야 겠다.

"평화롭게 살기 위한 권리" 1971년 앨범 타이틀 곡
베트남의 호치민을 추모하는 곡이다.
평화롭게 살 권리에 대해 노래하던 그였지만, 그의 운명은 그렇지 못 했다.
1973년 칠레에서 피노체트가 쿠데타를 일으킨 다음날 시위에 참여했다가 붙잡혀 고문당하고 살해당했다.
그의 나이 38세.


수천명의 사람들이 산티아고에서 열린 빅토르 하라의 두번째 장례식에 참가했다.
그가 살해당한지 36년만의 일.

그가 부른 수많은 곡들은 칠레의 상징이 되었다.
빅토르하라는 1973-1990년까지 지속된 독재자 피노체트의 지배기간 동안 희생된
3000명 이상의 사람들 중의 하나이다.

거리의 예술가들도 빅토르 하라의 노제에 참여했다.

수많은 칠레인들에게 빅토르 하라는 Junta 정권 (남미에서 광범위하게 존재했던 군부독재-군사위원회가 통치하는-정권)에 대한 저항의 상징이 되었다.

빅토르 하라는 지난 6월 그의 사인 규명을 위해 발굴되었다.
그 결과 그는 고문당했고, 30발 이상의 총탄을 맞고 사망했음이 밝혀졌다.

영국에서 태어난 빅토르 하라의 미망인 Joan 은 누가 그를 죽이라고 명령했는지가 밝혀지기를 희망한다고 노제 참가자들에게 말했다.

1980년 광주학살의 최종 책임자가 아직 공식적으로 규명되지 않은 한국이지만(물론 우리는 그가 그리고 그들이 누군지 잘 알고 있다), 칠레에서는 반드시 독재청산과 과거사 규명 작업이 성공하길 희망한다.

"우리 승리하리라 (Venceremos)"
영화 "산티아고에 비가 내린다"에서 빅토르 하라가 운동장에서 사람들에게 합창을 유도 했던 노래.
피노체트의 쿠데타로 무너진 칠레의 살라도르 아옌데 사회주의 정부의 정치적 상징이었던 노래다.
민중의 합창은 결코 권력앞에, 희망을 거스르는 시간들의 흐름앞에 그 목소리를 낮추지 않는다.


사진출처: http://news.bbc.co.uk/2/hi/in_pictures/8397609.s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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