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2월 31일 금요일

A Terrible Red Wine ( Blackstone Pinot Noir 2009 )


벌써 세병 정도는 사마신 것 같다. 순전히 Kroger의 세일에 혹하고 그래도 Pinot Noir라니...

그리고 오늘에서야 확신이 들었다.
이 와인을 마실때마다 "이상하게 맛없다"고 느꼈고 "Black tea-infused flavors"때문인지 black berry 때문인지 도저히 Pinor Noir 특유의 향취란 없는 와인이라는 것을.
(향이 심지어 역겹기까지 하다.)

세일에 더이상 현혹되지 않기 위해서 여기다 기록을 남겨둔다.

2010년 12월 29일 수요일

Blogger-Droid 시험

사진 올리기 시험. 동남아 지도.

앗 사진 올리기 기능이 있었다. 이런 놀라운 앱 같으니라고.


Android App Blogger-droid 시험

사진을 올리는 기능이 없는 것이 아쉬운 앱인 듯.
Published with Blogger-droid v1.6.5

일단 앱은 정상 작동 확인.

Blogger로 이사 완료?

텍스트큐브에서 이사 공지를 받은 후에 들어와 봤더니,

벌써 Blogger로 이사가 되어있었다.

아직 좀 어리버리한 상태인데, 한가지 가장 먼저 눈에 거슬리는 것은 블로그 주소가 너무 길어서,

모바일 같은데선 입력이 힘들겠다는 생각.

2010년 9월 23일 목요일

인텔은 왜 인류학자를 고용했을까

2010년 09월 23일 (목) 08:48  연합뉴스

인텔은 왜 인류학자를 고용했을까

(샌프란시스코=연합뉴스) 임상수 특파원 = 인텔이 상호작용ㆍ경험연구소장이라는 직함을 가진 문화인류학자를 고용하고 있다고 CNN머니 인터넷판이 22일 소개했다.

이에 따르면 문화인류학 박사인 제네비브 벨(43) 소장의 임무는 인텔에서 새로운 반도체 칩과 소프트웨어 개발에 참여하고 기술자들에게 전세계 사람들이 컴퓨터나 전화기 등 전자기기들을 사용하는 방법이나 습관 등과 관련된 지식을 제공해 새 시장에 쉽게 진입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 등이다.

마이크로소프트나 IBM, 휴렛패커드 등도 인류학자나 민속학자가 시스템이나 소프트웨어 개발자들과 함께 일하도록 하고 있다.

이 같은 관행은 1979년 캘리포니아주 팔로알토 소재 제록스의 연구소가 인류학 전공자를 선발해 기술자들이 쉽게 사용할 수 있는 복사기를 제조했던 것부터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있다.

벨 소장은 인텔 기술자들이 세계 최고의 속도를 자랑하는 프로세서를 만들어 미국 이외의 국가들에 팔려는 충동을 재고하도록 애를 쓰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많은 지역에서는 아직 초보수준의 인터넷이 사용되고 있어 값싸고 전력사용이 적은 칩을 개발하도록 권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인텔이 스마트TV시장으로 이동하는데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거실에서 TV를 즐길 시점의 행동 연구와 TV 시청이 컴퓨터 앞에 있을 때와 어떻게 다른지 등에 대한 벨 소장의 연구가 도움이 된다는 것.

벨 소장은 연구에 필요한 통찰력을 연구소에 앉아서만 얻는 것이 아니다.

그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기도할 때 휴대전화로 메카의 방향을 파악하는 데 사용하는 이슬람교도 소년을 만난 사실을 연구소에 전달했다.

또 말레이시아 시내에서 최신 휴대전화 사진이 있는 종이를 판매하는 장례식장도 소개했다. 이 지역에서는 휴대전화 사진이 있는 종이가 태워지면 사후세계에 있는 가족들과 대화할 수 있다고 믿는다는 것이다.

인텔 칩 연구팀의 스티븐 파우로스키 팀장은 "벨 소장과 그의 팀은 기술자들에게 생각을 다르게 하도록 유도한다"며 "특히 새로 성장하는 시장에 집중할 때 벨 소장의 전문성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벨 소장은 "첨단기술은 단순히 직장이나 집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종교의식 등 우리 생활의 전반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벨 소장은 그러나 "첨단기술이 우리를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며 우리가 첨단기술에 의해 변화되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라며 "블랙베리가 아침에 깨어나서 '오늘 뭐할까'라고 말하지는 않는다"고 강조했다.

nadoo1@yna.co.kr

(끝)

2010년 9월 14일 화요일

아직 아무소식이 없으니...

블로거로 통합된다고 하더니,
9월이 시작되었는데도 아무말이 없는 것을 보니
아마도 텍큐는 사람들이 알아서 이사가거나 빠져나가 폐가처럼 남겨주길 바라거나,
아니면 블로거로 통합하는데 기술적 장애에 부딪쳐 손을 놓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블로거로 이사가 이루어질 것이란 공고에,
또 스마트폰 구입 후 변화된 일상 생활 탓에 잠시 블로깅을 하지 않았지만,
구글의 텍큐팀이 제 입으로 "고객의 자료를 최고의 가치로 지킨다" 운운을 하였으니,
일단 이 판에서 어떤식으로든 놀아봐야겠다.

서비스 업글이 안되고, 스마트 폰 접속도 안되니 좀 짜증이 나겠지만,
어떻게든 되겠지.


2010년 5월 19일 수요일

Victor Jara "the Right to live in peace"

The right to live in peace Lyrics Victor Jara


The right to live
poet Ho Chi Minh
striking of Vietnam
all humanity.
No gun cleared
the path of your rice.
The right to live in peace.

Indochina is the place
beyond the wide sea,
where the flower burst
with genocide and napalm.
The moon is an explosion
which merges all the clamor.
The right to live in peace.

Uncle Ho, our song
Fire is pure love,
is the pigeon loft
oil of olive.
It is the universal song
a string that will succeed
the right to live in peace.

어디선가 찾아낸 번역본인데 그 사이트가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있어서 여기다 옮겨 놓는다.
"평화롭게 살 수 있는 권리"가 더 적당한 번역일 듯..

2010년 5월 2일 일요일

결국 textcube 는 Blogger 로...

텍스트큐브가 끝내 구글의 Blogger 서비스로 통합된다는 공지를 며칠전에 봤다.
결국 이렇게 될 것이었다.

"한국형" 블로그 서비스라며 구글 코리아가 단독서비스하던 텍스트큐브가 사이트 기술 지원이라던지에 신경을 안쓸때 사업포기를 준비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었다.
그사이 텍큐 기술진이 Blogger 서비스 향상에 주력하고 있었다니 뭐 할말이 없다.

생각해보면 이런저런 검열시스템이 작동하는 한국이 "기술 강국"은 될 수 있을지언정 "소통 강국"이 될 여지란 애초에 없었다고 봐야할 것 같다. 그런측면에서는 기술이 떨어져도 소통에는 제한이 없는 블로거가 더 나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을 했다. 게다가 텍큐 기술진이 구글사원으로 개발 일하고 있다니 말이다.. 허허!!

구글 입장에서 보면 일시적인 "지역화" 실험이 결국 용이치 않다고 파악한 듯 하고, 한편에선 중국처럼 한국에서 정부랑 싸움질 할 부담도 덜 수 있다고 생각했었수도 있겠다.
이제 남은 것은 구글식 "표준화" 사업 전망 밖에는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인데, 적어도 구글 텍스트 큐브는 야후가 베트남에서 서비스하다가 정부와 마찰 끝에 이전이고 뭐고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은채 폐쇄해버렸던 yahoo 360 의 전철은 밟지 않기를 기대할 뿐이다.

그리고 이유야 어떻든 약속대로 빨리 Blogger 로 모든 데이터가 자동으로 넘어가서 최소한 제대로된 기술 지원이라도 받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철거이주 통지만 받고 기다리는 것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불안감만 증폭시킬 테니까.

이제 적어도 스마트 폰에서는 확실히 읽고/쓰기가 가능할 수 있겠네. 그게 그나마 위안이랄까?

 

2010년 4월 26일 월요일

개와 고양이의 차이...

내 절친한 친구중의 하나가 예전에 그런 표현을 쓴 적 있다.

"장소에 집착하는 고양이가 되기 보다는 사람에 집착하는 개가 되고 싶다."

사실 고양이도 장소를 찾아 헤매이고 개도 사람들 사이를 떠돌아 다니긴 하지만,
낭만 고양이는 있어도 낭만 강아지는 없고 도둑 강아지는 더더욱 없는 한편에,
복슬 강아지는 있어도 복슬 고양이는 없는 것도 사실인 듯 하다.

어떻든 나는 대체로 고양이에 가까운 것은 같은데,
그러다 보니 따를 사람이 주변에 없다는게 가끔 적적하다.

6년째 같은 장소로 돌아와 정처없이 배회한지 또 20여일이 지났다.

2010년 4월 10일 토요일

"내 친구 수미의 졸업" - 서울 메트로 공익광고


올리는 순서가 좀 헝클어졌다.

지하철 안에서 본 서울 메트로 공익광고 "내친구 수미의 졸업"은 "목련꽃 브라자"와는 다른 전혀 다른 차원의 충격을 줬다.

이보다 더 한국적일 수 없는, 지극히 "한국적인 공익광고"를 본 느낌이었달까?
사진이 흔들려서 그대로 내용을 옮겨보면 이렇다.

내친구 수미의 졸업


대학새내기가 된 반 친구들 사이에서 꽃처럼 활짝 웃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누구보다도 마음 아팠을 내 단짝 수미, 함께 멋진 대학생이 되자던

1년 전의 약속은 지키지 못했지만 머지않아 1년 뒤, 더 멋진 11학번이 될 수 있겠죠?


네 그럼요. 잘 해낼 거예요. 1234 서울 메트로가 고객님의 새로운 시작을 응원합니다.


거칠게 말해서 "자살방지" 공익광고라고도 볼 수 있겠지만, 그래도 이건 좀 심각한 문제를 지닌 "공익광고"다.

설령 좌절방지, 자살방지 용이라고 해도,
문제는 대학을 못가면 인생이 끝나는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이 사회가 문제인 것이지 그저 "힘내라 응원"으로 "좌절방지"가 가능한 것은 아니지 않겠는가? 내년에는 12학번은 될 수 있을거라고 하실텐가?
 
도대체 대학을 가는 것이 "공익"적인 것이란 생각은 어디서 연원한 것인지 이해가 안간다.
하긴 그렇게 생각을 하는 사회니 국가적으로 입시지옥을 양산하는 한국일 수 있겠지만 말이다.

그런 "약속"도 못해 본 수많은 고등학생들은 어떻게 하란 말일까?
다시 입시에 실패한 재수생들은 저 광고 보고 더 비참해지지는 않을까?

공익광고 아래 "기대지 마시오" 로고가 여러모로 의미 심장하다..

영화공간 주안

그러고보니 3월 28일 05시경에 신림역에 있었던 나는,
12시간후인 오후 5시경에 인천의 영화공간 주안으로 <경계도시 2>를 보러 가고 있었다.
이기자가 전화번호 안 찾아줬으면 그나마도 못 찾을 뻔 했다.

인천 남구에서 지원을 하는 영화공간이라는데, 관람료가 5천원 밖에 안했다.
그런데도 관객이 10명도 채 안되었다는게 안타까웠다.

영화에 대한 이야기야 이미 충분히 되고도 남음이 있지만,
<경계인> 이론에 그닥 감흥이 없는 나에겐,
송두율귀국추진위원회 활동을 해오셨다던 아저씨의 분노가 폭발하는 장면이
그 논리에는 동의하지 못할 망정 인간적으로 이해되고 심금을 울리는 대목이었다.

적어도 그 사람은 송두율이 유치장에 송치될 때,
가장 앞에서서 구속절차를 서두르던 형사들에게 분노를 표하지 않았던가?

북한에 민노당 내부정보를 제공한 간첩이 있다고 제명을 요구하고 끝내 분당을 결정했던 진보신당의 대표가
<우리안의 조선일보>운운하는 것도 좀 우습지만,
경계도시 2를 보며 또 쉽게 우리안의 레드컴플렉스에 대한 상투적 반성을 하는 것도 크게 의미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영화를 보고나오며 한가지 갸우뚱했던건,
노무현 대통령의 송두율귀국관련 국회연설 부분이 크게 다뤄지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사실 송두율의 귀국은 전례없이 대통령까지 직접 나서서 추진한 것 아니었던가?
그래서 모두가 충격에 빠졌던 것이고.

감독의 의도는 미루어 짐작 가능하지만, 지나치게 "계몽"적인 나레이션도 좀 거슬렸던 듯.

신림역 안전문에 새겨진 시...

깜작 놀랐다... 기초의회선거에 나선 친구를 만나 새벽까지 술마시다 아침에 지하철타고 가는데....

문학작품은 작품일 뿐이지만
가끔 한국사회는 느닷없이 개방적이다.

찍은시간이 3월 28일 05시 58분 08초라니!!

2010년 3월 9일 화요일

인구조사와 인종분류

학교에서 온 세금서류를 받아보니 날 "Chinese"로 분류해 놨다.
빨리 세금보고해 한푼이라도 환급 받으려던 차에 서류 수정이라는 불편한 잡무를 먼저 처리해야 되는 수고로움이 생기니 미국의 행정업무 처리에 또한번 짜증이 몰려왔다.

그러던 차에 우연히 2010년 인구조사와 관련한 글을 읽다가 Wikipedia 를 한번 찾아보니, 재밌는 정보가 있다. 적어도 미국인들이 대충 "중국인"이라고 나를 행정적으로 분류하는데는 나름 역사가 있는게 분명해졌달까?

다인종 사회인 미국의 인구조사에서 "인종 분류"가 항상 문제적인 것은 알려진 바이다.
흥미로운 것은 1850 년에 실시된 7차 인구조사 문항중엔 "피부색"을 묻는 질문이 있었는데,
그 선택지로 백인/흑인/혼혈 밖에는 없었단다.

그리고 30년 후인 1880년에는 거기에 "중국인/인도인"이라는 새로운 "피부색"이 추가 되었다.
재밌는 것은 히스패닉/라티노가 그때까지도 전혀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고, 아메리칸 인디언은 인구조사대상도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올해의 미국내 인구조사에서도 인종분류 문항이 수정되었단다.

지난 조사에서 상당수 "실제" 히스패닉/ 라티노 인들이 스스로를 둘다가 아니라 "기타 인종"이라고 답하는 바람에 조사의 정확도가 떨어졌다는 평가를 받아서, 이번엔 "히스패닉 / 라티노 / 혹은 스페인계 (Spanish Origin)" 이라는 질문으로 바꾸고 "기타 인종"이라는 선택지를 삭제 했단다.

히스패닉/라티노들이 스스로를 이제 스페인계라고 판단한다는 것이 재밌는 사실이고, 1880년에는 인종으로 고려도 안되었던 사람들이 미국내에서 자기가 "기타 인종"이라고 느끼며 살고 있다는 것도 흥미로운 대목이다.

결국 히스패닉/라티노 인구들은 백인/흑인 보다는 인종간 결혼이나 백인 동화가 급격하게 일어났다는 말일테고, 그 반면에 어떻든 그런 애매한 정체성의 사람들에게 "기타 인종"이 아니라 너희는 스페인계 남미인이라고 말해주는 효과가 이 설문문항에 있는 것도 같다.

모든 설문조사와 인종분류는 문제적이고 독특한 정치적 효과를 낳는 것이라고 생각을 해보면, 이 설문조사가 실시된 이후 미국의 "히스패닉 / 라티노 / 스페인계" 인들의 삶이 어떻게 변하게 될지 궁금해진다.

서로 이제 다른 사람이라고 더 확실히 말할 수 있게 되는 것일까?

미국에서 인종 문제를 다루는 사람들이 늘상 하는 말 처럼, "단 1%만 다른 피가 섞였어도 백인이라고 간주하지 않는" 미국의 인종분류 시스템이 만들어낸 "다인종" 사회는 백인을 제외한 인간들을 이리저리 섞고 분류하느라 정신이 없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2010년 3월 8일 월요일

스마트폰 효과

넥서스 원을 지른 뒤로는,
블로그나 다른 웹 서핑 보다는 소셜미디어들에 집착하게 되는 경향이 생긴듯 하다.
 
선천적으로 소셜미디어를 싫어한다고 스스로 믿고 있었는데,
자꾸 페이스북, 트위터를 들락거리게 된 것은 역시나 폰 구입 효과라고 말할 수 있을 듯. 

놀고 있는 전화기 표면을 손가락으로 문질러 주는 것도 새로운 버릇이 되고 말았는데,
이런 식으로 새로운 "기계"에 길들여지며 다른 것들로 연장되는 삶이 조금은 두렵기도 하다.

이젠 누워서도 폰들고 있고,
화장실에서도 폰 꺼내놓고 있고,
밥먹을 때도 옆에 모셔두고 있고...

다행인건 그나마 3G 서비스를 안쓰니 wifi 있는 곳에서만 폰이 위력을 발휘한다는 것이랄까? 

2010년 2월 17일 수요일

Google Nexus One 도착!

근 한달여 동안 지름신의 강림을 막아왔는데, 끝내 화요일 아침에 주문 버튼을 누르고 말았다.

GOOGLE NEXUS ONE !

약정을 하면 싸게 살 수도 있지만, 2년 약정이란 당근이 어떤 족쇄가 된다는 것을 이미 뼈저리게 깨달은 바 있는데다가 미국아닌 나라에서도 SIM 카드 바꿔서 써야하기 때문에 Unlocked 된 버젼으로 기계를 직접 샀다.
한국도 GSM 사업자가 있었으면 좋으련만, USIM을 이용하는 시대에도 한국은 전파인증을 따로 받아야 한다니 한국에서는 애초에 사용을 포기했다. 어차피 한국에서 보낼 시간이 많은 것도 아니고.

세금 합쳐서 $ 570 이란 거금이 들었다. 사실 조만간 장기판매 광고를 어디다 내야할지도 모르는 정신나간 지름질이었다. 그래도 구글이 직접 만들고 안드로이드 2.1이 탑재된 폰에 대한 소유욕은 물리칠 수가 없었다.
세금이라도 줄여볼까하고 홍콩에 있는 친구에게 배송해 구매 해볼까도 했는데, 홍콩으로 배송하면 세금은 없지만 배송비가 비싸져서 미국내 구입보다 매리트가 없었다. 싱가폴은 텍스도 붙어서 경쟁력이 없고 말이다.

구글 사이트 (www.google.com/phone) 에서 주문을 마치면, 30분내에 취소를 할 수 있는 시간을 준다. 그러니까 그동안 마음이 바뀌면 언제든 취소를 할 수 있는 것인데, 내게는 그 시간이 오히려 번민의 시간이었다. 나쁜 구글 같으니라고! 구글에서 일하는 심리학자들의 농간이 그닥 배려로 느껴지기 보다는 불쾌하게 느껴짔다. 실수를 수정할 30분의 시간은 도대체 무슨 계산법이란 말인가? 원래 고객상담 창구를 온라인에서만 운영하려고 했던 계획의 유산인 것도 같아 보였다.

주문한 전화기는 하루밤만에 Fedex Overnight delivery service 로 오늘 배송되어왔다.
미국에서 한국 택배 속도를 경험한 셈인데, 그 비싼 배송비를 빼주는 것이 오히려 나같은 사람을 위한 배려란 생각은 못해봤나 보다.

Fedex 택배기사한테 상자를 받아보니 무슨 폭발물 경고 메시지 같은게 턱하니 붙어있다.
배터리가 폭발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한데 위험물치고는 테이핑부터 어째 좀 허접하다. 아마존이나 다른 전화기 회사와 비교하면 말이다.


위험물이란 경고가 있었음에도 Fedex 비행기 타고 트럭타고 오면서 이리저리 뒹굴었던 듯.


Fedex 정보를 보니 텍사스에서 비행기 탔나 보다. 주문할 때는 창고가 일리노이였었는데.


박스를 개봉해보니 이건 더 허접하다. 충격방지용 에어백이 이리저리 돌아가 있다.
환경문제도 있지만 그래도 고가의 전화긴데 "뽕뽕이"를 너무 적게 쓴 탓이다.
구글은 포장/출고 서비스도 좀 개선을 해야할 듯.
내 전화기 박스도 반쯤 열려 있었다. 왜 전화기 박스에 Seal 이 안붙어 있는지 모르겠다. 혹시 Refurbished?

전화기 박스.
고급스러운 느낌은 아니지만, 구글 특유의 심플함은 나쁘지 않았다.
박스 뒷면에 Made in Taiwan 이 프린트 되어 있다. 
박스 네 귀퉁이에는 X를 상징하듯 빨/노/파/녹 색깔의 테두리가 있다.


Invoice 출력상태도 영 구리다. 종이를 왜 두꺼운 것을 썼는지도 이해가 안됐다.
뭔가 구글스럽지 않은 방식인데,
역시 온라인 상거래 초보 티가 팍팍나는 대목이다. 



박스를 개봉하면 전화기가 일단 자리하고 있다.
다시 박스 하나를 더 열면 부품들이 있다. 이 내부 박스 디자인도 좀 구리다. 찍는 걸 깜박했네...


부품을 꺼낸 모습. 심플하다.
한데 부품 개별 포장 상태는 삼성, 모토롤라, LG와 비교할 수가 없이 조잡하다.
HTC의 작품인 듯.

핸드프리. 리모콘이 달려있다. 솔직히 좀 싼티가 났다.
작은데도 신경을 써주는 세심함은 역시 애플과 소니가 월등한 듯. 
난 이미 삼성 Bluetooth 무선 이어폰/헤드셋을 구입했으니 얼마나 쓰게 될지는 모르겠다.

USB 케이블
이어폰과 케이블이 검정 고무줄로 묶여 있었다.

구글도 USB 케이블 일반 표준은 안지키기로 했나 보다.

Nokia 저가형 핸드폰 충전기 같은 모습의 충전기.
애플처럼 만들면, USB 케이블이 굳이 따로 필요 없을텐데 이것도 아쉬운 부분이다.

PHIHONG 이라는 중국 회사가 만들었나 보다.
폰이 출시된게 2010년 1월인데 충전기는 2009년 제작.
출시 첫달에 예상밖으로 80,000대 정도 밖에 못 팔았다는데,
폰 세트에 대한 새 주문이 안들어갔거나 충전기는 애초에 OEM으로 싼가격에 제작했나보다.
불이나 안나면 좋겠다. ^^
역시나 작은 것에 세심함을 기울이는 모습이 아쉽다.


넥서스 원 배터리

HTC가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아마도 HTC 텃치폰들과 호환되는 배터리인 듯.


배터리 뒷면. 아이폰이나 아이팟처럼 폭발은 안했으면 좋겠다.


전화기 앞면. 먼지가 이미 수북하다. 이름쓰느라고 개봉해서 그런가도 싶고.


뒷면. 구글 넥서스 원은 주문할 때 전화기에 자신이 원하는 이름이나 소속등을 새길 수 있다.
그것 때문에 좀 시간이 걸리는 줄 알았더니 그래도 하루만에 와서 좀 놀랐다.
별로 놀라운 기술은 아닌가 보다.
문제는 이렇게 주문시 이름을 써버린 폰은 절대 반품이 안된다는 사실이다.
서비스를 받아봐야 알겠지만, 이렇게 되면 애플처럼 Refurbished 를 내주는 AS도 안될텐데. 


제품 포장지를 벗긴 뒷면.
제품 포장지도 역시 매우 조잡했다.

도대체 HTC는 뭐하는 회사일까? 대만의 잘나가는 휴대폰 제작업체겠지만,
구글덕에 단숨에 세계적 회사가 된 것은 분명한 듯. 너무 단숨이었던가?

배터리 덮개를 벗긴 모습. 이건 좀 참혹하다.
덮개를 연 내부 상태가 조잡해 보이는데, 그나마 배터리가 분리 안되고 메모리카드 임의 교체가 지원되지 않는 아이폰 보다는 낫다는데 일단 만족 해야할 듯 하다.
4G 메모리 카드가 기본 장착되어있다. 모토롤라 Droid 는 16기가 기본장착인데 이것도 좀 아쉬운 부분이다.
16기가 미니 SD 카드의 최저가가 미국에서 $40 정도 하니까 가격에 반영하면
애플 아이폰 16GB랑 가격면에서는 별반 다른게 없는 것도 같다.

충전기를 연결한 모습. 한시간이 다되어가는 것 같은데 아직 완충이 안되었다.
학교 갔다 오면 다 되려나 보다.
어댑터 출력 전기 용량이 작아서 그런 듯.

아직 이베이에서 주문한 케이스 보호필름등이 도착을 안했고 주문한 메모리도 도착을 안한 상태이니 무리한 작동이나 외출은 삼가해야겠다.보니까 흠집이 아주 잘 날 듯한 불안감도 있다. 그래도 새 전화긴데.

이런 포스트를 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경인년 벽두에 지른 최대의 지름질이니 기록한다는 차원에서...
사용기도 나중에 기회되면 올려보기로 하고.

이제 나도 스마트 폰 유저다!!!




2010년 2월 9일 화요일

"밴쿠버 동계 올림픽 반대!" - 원주민의 빼앗긴 땅에서 치뤄지는 밴쿠버올림픽

많은 사람들이 그저 김연아가 밴쿠버 동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딸 것인가에 관심이 있는 지금,
밴쿠버에서는 자신들의 땅을 빼앗긴 원주민들이 올림픽 개최를 반대하는 싸움을 힘겹게 진행하고 있다.
백인들이 어떻게 북미 서부 태평양 해안의 땅들을 원주민으로 부터 강탈했는지는 이제 새삼스러운 이야기가 되고 말았지만, 특히나 밴쿠버의 대형 스키리조트들이 들어선 산악지방은 원주민들의 땅을 "백인 스포츠"를 위해 강탈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곳이다.
캐나다에서는 그나마 원주민들을 "First Nations"이라고 부르며 "선"주민으로써 법적 정치적 배려를 하고 있다곤 하지만, 그것은 단지 원주민들의 땅을 강탈한 수탈과 폭력의 역사를 미화하는 것일 뿐 실상 아무것도 해결된 것은 없다.
단지 원주민들의 문제 뿐아니라, 밴쿠버 일대에서는 대대적인 노숙자 단속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하는데,
초국적 자본들의 광고 경쟁으로 전락한 올림픽이 사람들의 삶을 억압하고 파괴하는 것이란 아랑곳 하지 않고, "피겨스케이팅"에 온국민의 관심이 가있는 상태란 뭔가 비정상적이지 않은가?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활동이라는 미명아래 유죄판결 4달도 채 안된 이건희를 사면해주는 정부아래 산다지만, 이건 뭔가 제대로 돌아가는 꼴들이 아니다.

** 방금 정연주 전 KBS사장의 글을 보니... 베이징 하계 올림픽 전에 KBS 사장 해임을, 그리고 밴쿠버 동계 올림픽을 앞두고 MBC 엄기영 사장을 "축출" 하는 MB정부다.
그래 열심히 잔머리 굴린 놀라운 시간표를 가지고 있다고 스스로 자축할지는 모르겠지만,
언제나 시간의 흐름이 바뀌는 순간이란 오게 되어있는 법!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320773

** 이건 또 뭐냐? 이건희의 IOC 위원직에 대한 징계가 이루어져서, 이건희는 IOC 위원으로써 직무를 수행할 수 없단다. 그것도 IOC 윤리위원회의 결정이다. 한국정부는 사면해주고, IOC 윤리위원회는 징계를 결정했다!! 이게 무슨 국제적 망신이란 말인가?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온다. 평창 유치 활동 좋아하시네!

2010년 2월 6일 토요일

Noviembre


지난 주말에 본 스페인 영화 노벰버 (노비엠브레).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했던 작품이라고 들었다.
지난 번 한국에 갔을 때 후배가 극찬했던 영화였는데, 이제서야 보게되었다.
요즘은 영화한편 보는게 무슨 일처럼 느껴지는데,
하는일 없이 바빠진 마음을 안고 산다는 것은 생활의 여유를 짖밟고 산소부족의 마른 대기속으로 날 집어 넣었던 것 같다.

거리에서 공연하는 독립극단의 꿈을 안고 사는 청년들의 이야기를 다룬 이 영화는,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꿈을 간직한 젊은 예술의 혼들이 만들어내는 거친 박동소리가 있어 좋았다.

전언에 따르면 영화를 만든 감독이 전주에 왔을 때,
흔히 사람들이 윈스턴 처칠이 했다고 잘 못 알고 있는 이 말을 들려줬었단다.
(실상은 처칠이 한 적이 없음에도 처칠의 말이라고 알려진 대표적 인용구다.)

"20대에 사회주의자가 아니면 가슴이 없는 사람이고, 30대에도 사회주의자라면 머리가 없는 사람" 이라고들 합니다. 하지만, 난 우리의 꿈을 지켜내고 싶습니다.

세상을 바꾸고자하는 꿈들을 지켜내는 것, 하여 다시 함께 꿈꾸는 어느 순간들을 준비하는 것이야 말로, 30대의 "철부지"들이 해야할 일이 아닐까 싶었다.

영화 중간, 거리에서 공연을 하다 공연물품을 압수당한 "노벰버"단원들이 국립극장에 연극 소품을 "보투"하러 갔다가, 처음 보는 국립극장의 규모와 시설에 감탄을 금치 못 하는 장면이 있다.
국립극장 무대에 서서 그 화려함과 웅장함에 감탄해하던 단원들 사이로,
주인공 알프레도가 혼자 발걸음을 옮기며,
"그래도 난 거리가 좋아"라고 말하던 순간 터져나오던 Tom Waits 의 "The Traubert's Blues"...


** 러시아의 10월 혁명은 그레고리안력에 따르면 실제론 11월에 있었다고..

2010년 2월 4일 목요일

Louis Vuitton Iphone 3G Case

"대세"를 따라 스마트 폰을 하나 살까 말까 매일밤 손이 간질간질 해서 인터넷을 돌아보곤 있는데,
어느 사이트에 루이뷔똥 아이폰 케이스에 관한 정보가 올라와 있다.
$250 달러면 왠만한 저가형 폰가격보다 비싸고,
약정없이 구매할 수 있는 아이폰 3G 16gb 폰가격의 1/3이 넘는 이 케이스 (약정이 있는 경우엔 그마저도 폰개통비를 넘어가는)를 구매하는 소비자들은 도대체 무엇을 원하는 것일까?
 
비정상적인 소비수요가 있다는 것은 모르는 바가 아니고,
누군가는 기꺼이 구매하겠지만,
이런 단순한 케이스를 "루위비똥" 이름 값만으로 $250 달러나 받는 건 참 이해가 안간다.
저런 케이스는 그나마 "짜가"만들기도 쉬울텐데 말이지.
어쨌든 놀라운 루이뷔똥이고 명품시장인 것만은 틀림이 없다. 언젠가 "된장남" "된장녀"들의 필수품이 될지도.

그나저나 구글 넥서스 원은 가격이 떨어질 날이 오는 것일까? 

2010년 1월 28일 목요일

Good Bye, Howard Zinn!

하워드 진이 심장마비로 사망했단다.
미국의 대표적인 "행동하는 지성"의 하나였던 그였는데...

프레시안 관련기사.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40100128154010&section=05

그가 죽기전 네이션지에 오바마 정부 일년을 평가하며 남겼던 마지막 비평 중에서 발견한 인상적인 한대목...

 "...when you start out with a compromise, you end with a compromise of a compromise, which is where we are now." 


절충안을 가지고 시작하면, 당신은 절충안의 절충안으로 끝을 맺을 것이고 그것이 현재의 우리가 있는 곳입니다.


- http://www.thenation.com/doc/20100201/forum/6


 들뢰즈도 외쳤었다. "Do not compromise your desire!" 라고.

2010년 1월 27일 수요일

"They just made a terrible life choice!" by Margie Simpson


대학원생이 되겠다고 하는 것은 그러니까 "a terrible life choice" 다. 이 세상에선.. 허허!!
"작년에 600달러 벌었다"는 대목과 버린 음식 주어먹는 장면에서는 눈물이 날 뻔.
그러게 무슨 부귀영화를 보자고 다들 이렇게 사는지...
그나마 외국인 학생들은 "알바"도 못한다.

2010년 1월 26일 화요일

World Vision 과 Haiti 그리고 MB


네이버가 미국지사를 내고 영업을 시작했으니까, 내가 본 초기 화면의 광고는 미국 서버에만 올라오는 것들이다. 사실 처음에는 무슨 온라인 게임 광고인 줄 알았다.

"그들에게 사랑의 힘을 보여 주어야 할 때입니다."
"긴급요청"
"지진 긴급구호"
현란한 구호들의 오른쪽 귀퉁이에 십자가 문양도 숨겨놨다.

한비야가 무릎팍도사인지 허벅지장사인지에 나온 후로 인터넷에서 한비야와 월드비젼의 "실체공개"와 "명예훼손"논쟁이 있었던 것을 접한 적이 있다.
사실 내겐 별로 새로울 것도 없는 내용들이었는데, 어떻든 "회사"와 "선교단체"사이를 "자선"이란 망토를 뒤짚어쓰고 왔다갔다하는 단체가 내놓은 이 조잡한 광고를 보자 순간 극도의 짜증이 일어났다.

미국내에 다양한 구호단체가 아이티를 돕고 있고, 그 중 상당수는 비종교적인 NGO/NPO 단체들인데, 굳이 미국까지 무슨 글로벌 시장 확장에 나선 회사 마냥 "광고"를 할 필요가 있었을까?

긴급구호를 한다면서 모금을 한 후 정작 "긴급구호"에 지원한 액수는 별로 되지 않는다는 비판마저 받고 있는 단체가 말이다.

이유야 어쨌건 돕는다는데 시비를 걸고 싶지는 않지만, 무슨 구호활동이 "힘을 보여 주어야" 하는 행위라는 그들의 알량한 "과시적" 선민의식도 불편하고, 그게 결국 "월드비젼"의 힘일 뿐이라는 것은 뻔한 이야기다.
기금 모금 전화에 한국전쟁을 상징하는 6.25를 집어 넣어서 특별히 강조까지 하는 그들의 정치성은 더더욱 역겹다. 아이티가 한국전쟁시던가 후던가 기금을 마련해 도와줬다는 기사를 어디선가 본적은 있지만, 그건 미국한테는 한국이 지구종말할 때까지 갚을 빚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나 별반 다름이 없다.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어 자선활동에 참가하라고 독촉하는 것은 무슨 강도같은 협박행위인가도 싶고.

아이티가 우리에게 도움을 주었건 안주었건 고통받는 삶이 있는 곳에 도움의 손길을 보내는 것이 당연한 것인데, 그것마저 정치적으로 해석하고픈 이들이 있는 모양이다.

나도 갑자기 좀 정치적으로 이 상황을 보고도 싶어졌는데...
오늘 뉴스를 보다가, 솔직히 아버지를 대통령으로 둔 딸이라는 인간이 자기 딸까지 데리고, 페루, 인도, 스위스 여행하느니 아이티 가서 봉사를 하는게 그들이 말하는 "국가 이미지"나 "국익"에 훨씬 도움이 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미국 대통령가족도 한국에 놀러왔었네 어쨌네 하면서 정당화 하는 모양인데, 미국이 무슨 면죄부 발행해주는 국가인가?
이번에 보니 클린턴은 딸과 같이 아이티에 가서 구호활동을 하더만.
그런 것은 배울생각 안하고, 스위스 다보스의 최고급 리조트에서 열리는 부자들 포럼에 가서 "파티" 참가할 생각만 하는 "가족"이라는게 한국의 대통령 가족이라는 건 정말 머리 아픈 일이다.

적어도 그런식으로 쌓이는게 "월드 비젼"은 아니지 않겠는가?




2010년 1월 17일 일요일

3-3-3 아이러니.

David Harvey 가 이젠 고인이 된 Giovanni Arrighi 와 함께 했던 세미나(2008)에서 소개한 농담.

"아카데미에는 이런 농담이 있습니다. 당신이 어느 곳에 3주간 머무른다면 당신은 (그곳에 관한) 책 한권을 쓸 수 있습니다. 당신이 어느 곳에 석달간 머무른다면 논문하나를 쓸 수 있습니다. 만약 당신이 어느 곳에 3년간 머무른다면 당신은 아무것도 쓰지 못 합니다. 나는 <신자유주의의: 간략한 역사>란 책을 중국에 3주간 방문해 썼습니다."

농담이지만, 사실 어찌 보면 맞는 말이기도 하다. 아는 만큼 익숙해진 만큼 말하기 힘들어지는 아이러니가 학문의 세계에 없는 것은 아니니.  

논문집필 작업에 갈피를 못잡고 망설이는 내게 지도교수가 해 준 말도 별반 다른 것도 아니었는데,
"베트남에 대해 너무 많이 알고 있다는 것이 지금 너의 문제다."

이 아이러니를 극복해야 되는데,

이렇게 쓰고 난 후, 중국에 거의 3년째 머물고 있는 후배한테서 연락이 왔다. 뭘 어찌 써야할 지 모르겠다고.
사실 진정한 역설은, 알수록 모르는 것이 확연해 지고, 익숙해진 만큼 채 익숙해지지 못한 것들이 더 민감하게 다가온다는 사실이 아닐까?

2010년 1월 16일 토요일

연극 <웃음의 대학>

무지하게 추운 날이었다. 내가 대학로에 갔던 날은.
좀 호러틱 하게 말하자면 온몸을 칭칭 동여매고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볼 때마다 물어 뜯고 싶을 정도였는데, 뜨거운 피가 콸콸 쏟아져나와 날 덥힐 수만 있다면 그러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호객행위를 하지 않겠다고 여러 극단들이 공동 선언 비슷한 것을 하며 자정노력을 하기로 했다던데, 그래도 혜화역 2번 출구로 올라오자 마자 들려오는 소리는 "지금 곧 시작합니다, 연극 000. 연극 보러 오셨어요? 이거 한번 보세요" 였다. 꽁꽁얼어 붙은 거리에서 바삐 움직이는 발들과 주머니에 들어가 빠져나올지 모르는 손들은 따라오는 호객꾼들을 이리저리 흩어놓을 뿐 별다른 영향력은 없었다.

한편에서 보면, 추위 속에서 고생하는 이 호객꾼들은 많은 매체가 이른바 "연예인"출연작들에만 관심을 가질 뿐 무명 배우들과 영세 극단들에는 여전히 차가운 시선을 보이는 한 어쩔 수 없는 일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보다 많아졌다는 관객들도 여전히 "나 누구 봤다" 수준에서 작품을 선정하고 말이다.

어쨌든 나도 별반 다르지 않게, 동행자가 보고 싶었했던 <웃음의 대학>이라는 연극을 보았다.
내가 봤던 날은 안수찬과 백원길이 출연하였는데, 안수찬은 이래저래 TV에서 낯이 익은 그런 배우였다.

연극 내용은 대충 아래 블로그를 참조.
http://cafe.naver.com/museonandon.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2020

오랜만에 본 연극이었는데, 솔직히 나는 좀 그저 그랬다.
평일 공연이었음에도 객석 점유율이 상당히 좋았고 연기도 연출도 나름 깔끔하단 느낌이 들었지만,
뭐랄까 너무 매끈하달까? 마음을 움직이는 무언가가 부족했다.

그것은 아마도 일본원작을 "착실히" 해석한 작품이고, 두명의 배우도 "성실히" 연기를 펼쳤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웃음"의 대학이었지만, 그닥 웃기지 않아서일까? (내 앞줄 몇몇 아주머니 관객들은 아주 좋아하셨다. 역시 아저씨들 끼리만 연극 보러온 관객은 없었고.)
간단히 말하자면, Fairly tale 을 본 듯한 느낌이었는데, 그러다 보니 자꾸 내가 이 연극을 어디선가 보았던 것은 아닐까 하는 진부함이 때때로 몰려왔다. 
일본원작을 한국적으로 과감히 재해석 했었다면 어땠을까 싶던데, 지금이 무슨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의 시대도 아니고 아니 어쩌면 제 2차 세계대전 말기의 일본사회는 우리의 경험속에서는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의 시대와 닮아 있음에도 스토리를 굳이 "이국적"인 것으로 만들 필요가 있었을까 싶었다.

나중에 보니까 대학로의 상당수 연극들이 해외의 작품을 가져다 그대로 공연하는 것도 같던데, 새로운 희곡과 연출이 사라지고, 인지도 높은 배우들을 중심으로 한 "연기"만이 중심이 되는 한 연극 무대는 영화나 TV드라마에 배우 대주는 시스템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할 것 같다는 의심도 들었다.

모 인디 밴드가 공중파에 출연섭외를 받은 후에, PD로 부터 그들 대표 히트곡의 가사를 고쳐달라는 부탁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다. 공중파 방송에 부적절하다는 PD자신의 자기검열 때문이었는데, "미쳤어"라는 가사를 그러면 "솔쳤어"라고 바꾸란 말인가 해서 모두가 웃고 말았다.

이처럼 <웃음의 대학>이 다루는 검열 상황이 여전히 우리 사회에도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고, 최근엔 이 "낡은 시스템"이 아주 뻔뻔스럽게도 작동하는 것을 상기한다면, 연극무대가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을 낯익은 배우가 보여주는 깔끔한 연기에만 제한하는 것은 좀 문제적이지 않을까? 

찾아 보니 이 연극은 일본에서 영화화도 되었었나 보다. 그럼 이젠 좀 원작으로 부터 자유로워질 때도 되었을 텐데.


2010년 1월 12일 화요일

다시 미국.

"OO한 귀환"이라고 뭔가 거창하게 써볼까도 했는데,
테러범을 공항검색대와 입국심사장에서 잡겠다는 미국공항에서의 악몽이 떠올라 그만 뒀다.
한명이 여럿 잡을 수 있니까 그 한명을 잡기위해서 여럿은 계속 잡혀있어라라는 권력의 "경찰"업무 정당화는 가끔 내 머리에 폭탄이 설치된 듯한 느낌을 줄 때가 있다.
어쩔 수 없지 이미 제발로 들어왔던 미국이고,
난 이제 미국에서 하루빨리 나가기 위해서 다시 들어온 셈이기도 하니까.

그래도 어쨌든 돌아왔다.
한국에서의 한달이 자고 일어나니 꿈같이 느껴질 정도로 낯설지만 또 익숙한 공간으로 말이다.

생각해 보니 꽤 많은 일들을 하고 온 듯하다.
여행도 갔고, 난생처음 예술의 전당에 가서 발레도 봤고, 대학로에서 오랜만에 연극도 봤고, 영화도 꽤 많이 봤으며, 책도 한주에 한권은 읽었으니...

술도 꾸준히 마셨다.
지루하지 않은 술자리들이 몸이 허락하고 사람들이 날 반겨 해주던 한에서 이어졌었다.
아카데미 내부의 인간들은 역시나 별 재미가 없는 사람이란 걸
오랜만에 한국에서 만났던 사람들을 통해 재확인했다.
 
정작 내 본업과 관련된 그 어떤 일도 무려 한달동안 하지 않았고,
그때문에 남은 이달내내 "피똥쌀" 각오를 해야 할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시간의 무게가 삶과 더불어 묵직하게 느껴지고,
그만큼이나 비현실적인 어느 겨울날들을 가질 수 있었음에 뿌듯하다.

돌아오자 마자 새학기 강의보조 업무로 정신이 없는 상태지만,
간간히 그날들의 기억을 정리할 시간을 가져보긴 해야할 텐데...

아~ 다시 미국. 다시 일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