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1월 30일 월요일

세종시가 "RTP"를 모델로 한다는데...

잘 못 봤나 했다.
미디어 오늘에서 각 신문 헤드라인 기사를 비교하는 글을 읽는데, 어디서 눈에 읽은 알파벳 조합이 보인다.

서울신문 1면 머릿기사 "RTP·드레스덴 닮은 명품도시로"
설마 이게 이 동네 RTP?


#사례1 1950년대 면화 등 농업으로 먹고살던 노스캐롤라이나주는 미국에서 가장 낙후된 곳 중 하나였다. 1952년 1인당 주민소득은 1049달러로 미국 평균 1639달러에 한참 못 미쳤다. 이 고리타분한 땅은 1955년 주지사가 반경 15㎞ 안에 위치한 3개 도시 더램, 채플힐, 롤리의 가운데 지점에 ‘연구삼각지대(Reserach Triangle Park·RTP)’를 만들어 국립보건원 산하 환경보건연구소 등을 유치하면서 운명이 바뀌었다. 세 도시가 품고 있는 듀크대 등 3개 명문대는 지식산업의 시너지 효과를 가능케 했다. 현재 119개의 연구소, 170개의 첨단기업, 90개의 기업지원기관에 4만여명이 종사한다. 2005년 이들 세 도시의 소득수준은 미국 평균을 5%가량 상회했다.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091201001008)


최근에 공무원들 "골프연수"를 이쪽으로 많이 보내고, 강남 아줌마들 사이에 아직 한국인들이 "드글드글"하지 않은 학군좋은 동네로 인기를 구가한다더니만, 그렇다고 RTP가 한국에서 첨예한 논란을 빚고 있는 세종시 "수정안"의 주요 모델로까지 언급 될지는 몰랐다.

기사 문체가 번역체인 것을 감안하고 정부 보도자료를 "Copy & Paste" 한 티가 난다고 해도, "농업으로 먹고살던", "이 고리타분한 땅"은 등과 같은 표현을 거침없이 쓸 수 있는 과단성은 일단 놀라운 것이었다.

RTP 개발 사례가 새로운 경제개발 모델로 알려져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개발의 역사와 내용이 세종시의 모델이 될 수 있는지는 생각해 볼 문제다. 일단 사실관계가 좀 다른데, RTP 지역이 개발 되기 전에 이미 이지역엔 듀크,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학 (채플힐), 그리고 NC STATE 같은 학교들이 있었다.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학은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주립대학이기도 하다.)
 
그리고 랄리는 NC의 주도이고, 더램은 한때 흑인 월스트리트 (Black Wall Street) 라고 까지 불리웠던 경제호황기를 누렸던 곳이다. "고리타분한 땅"이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지역의 주요 "산업"이었던 "담배 (듀크대학은 American Tabacco 를 소유했던 담배 재벌 Duke가 설립했다. Lucky Strike가 최대 히트작이었고)"산업이 세계 제 2차 대전 이후 사양길에 접어들면서 높은 실업률등 사회적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뭔가 새로운 "변화"가 필요했던 상태였고, 그 상황에서 연방정부의 주요 연구기관들이 대거 RTP에 자리를 잡고 주정부도 엄청난 세제해택등 인센티브를 주면서 IBM등을 유치하는데 성공하면서 오늘날 그마나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한데 상황은 그리 녹녹하지 않다. 대체로 연구센터 중심으로 구성된 단지이기 때문에, 경제 위기의 여파와 시장의 변화에 가장 결정적으로 취약하게 되었다. 물론 전미국에서 단위면적당 "박사학위 소지자"가 가장 많은 지역이라는 우스갯 소리를 할 만큼 연구인력 인프라가 풍부한 것은 사실이지만, 각 기업들이 가장 먼저 규모를 축소하고 "폐쇄"나 "이전"을 단행하는 것이 또 이 연구소들이다.

얼마전에는 Sony Ericsson 의 미주본사가 이 지역에서 철수한다고 해서 한참 시끄러웠는데, 도대체 한국에서 어떤 식으로 이 RTP 모델의 성공과 실패의 역사를 효율적으로 적용한다는 것일까?
그저 미국의 사례니까 있어 보이긴 하다는 "전시효과"를 노린 것일까?
RTP 지역 아니 노스캐롤라이나의 실업률이 최근 12%에 이른다는 사실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데?
 
나는 세종시 문제는 잘 모르고 행정전문가도 아니다. 하지만 수도권에 과도하게 모든 것이 집중되어 있는 한국에서, 국가기관들이 각 지역과 대체로 동일시간대에 접근 가능한 곳으로 이전해 균형발전을 유도하겠다는 생각 자체는 의미있다고 본다.
어차피 행정기관이야 "대국민 서비스"를 하는 기관들이고 요즘 무슨 "파발"을 띄워서 문서들을 주고 받는 세상도 아님에야 도대체 왜 "서울"과 "수도권"을 못 떠나겠다고 우기는 것인지가 이해가 안간다.

"미국은 피를 섞은 형제"라면서 자기민족에겐 몽둥이질이나 화형시켜 불사르고도 죄책감을 못 느끼겠다고 하시는 분들이니 애초에 이해를 바라는게 말이 안되지만, 그렇다면 최소한 경제와 행정을 공간적으로 분리해 권력의 분산을 시도하고 독립성을 존중하며 상호 견제의 룰을 가지려고 하는 그런 미국의 사례는 좀 배우셨으면 하는 바램이다.

RTP 모델. 그래 좋을 수 있겠다. 하지만 RTP 에서 먹고 살만한 상당수 사람들은 현지인도 아니고, 대부분 언제든 뜰 수 있는 계약직 연구원들이라는 사실도 좀 생각하고, 연구단지라는 것이 세종시 근처에 있는 "대덕 연구단지"도 있으니까 그런 "우리 경험들"로 부터도 좀 배우려고 시도를 했으면 한다.

"미제"라고 디밀기만 하면 다 있어보이는 세상이 아니다 요즘 세계가...  

일요일 밤에서 월요일 아침사이

이번 학기에는 이상하게 일요일 밤에서 월요일 아침사이의 시간이 가장 견디기 힘들게 느껴진다.
불면증에 잠을 이루지 못하기가 일쑤이고,
뭔가 손에 잡히는 것도 없으면서,
의자에 허리를 비스듬히 걸쳐 요통을 유발하는 나쁜자세로 멍하니 있다던가,
뭘 써 넣어야할지 망설이게 되는 달력을 쳐다보거나 하면서, 
"국방부 시계"처럼 흐르는 인생을 답답해 하다가
결국 잠을 못 자고 해뜨는 것을 창너머로 지켜본다.

한주를 시작하는 기대와 설레임을 언제 가져보긴 했던 것일까?

일주일이 금, 토, 일, 일, 화...이런 식이 되어선 안되는데
자꾸 출발선에서 미끄러지거나 넘어진 불운한 육상선수마냥
한주를 시작하며 달려가는 느낌이다.

젠장 젠장을 외치면서...스스로에게 쪽팔림과 한탄을 더하면서... 

2009년 11월 26일 목요일

박쥐를 보다.

불법 다운로드로 박쥐를 봤다는 사람을 알게된지 한달도 못 되어
나도 그런 어둠의 터널을 통해 박쥐를 보게됐다.

박쥐가 박.쥐로 바뀐 채였고,
어디선가 신문기사에서 읽었던 것 처럼,
영문자막이 그대로 입혀져 마치 DVD 출시 본 같은 그런 "콸러티"를 가지고 있더라.

그건 그렇고, 내가 참 황당 했던 것은 그간 내가 읽은 이른바 "잘 쓰여진" 영화평들이었다.
박쥐가 무슨 대단한 영화인 것 처럼 읽고 싶어하는 안달이 느껴지던...

원래 그런거 대충 읽고 말기도 하고 대단한 영화로 보고 싶은 사람은
그렇게 복잡하게 보시던가 해라 뭐 그런 주의이긴 한데,

어쨌든 난 무슨 거창한 상징 읽기 시도와 같은
그런 시도가 이 영화를 보는데 중요할까 싶더라.
보고나서 든 생각이었다.
 
난 생각없이 영화 보고 내 맘대로 느꼈고,
생각 없이 봐도 그러저럭 기본은 하는 영화긴 하던데, 그렇다고 특별한 느낌은 없었다. 
하긴, "난 부끄럼 타는 사람이 아니예요" 와 같은 대사가 튀어나오던 장면은 나름 날 웃겨주기도 했다.

내가 좀 불편 했던 것은 이 영화가 약간 뻔한 결론으로 흘러가 버린데다가,
전혀 희망이랄지 욕망의 해방이랄지 뭐랄까 마음 속 빗장을 여는 "코드"가 없었다는 것이다.
영화는 필요이상으로 무겁게 뭔가 "들어있어" 보이기만 하다만 것 같아서,
그러다 보니 재미도 좀 반감되는 듯 했다.

그래서였을까?
내가 영화 보고 나서 든 생각은 좀 엉뚱한 버젼이었는데,
딴생각을 계속해서 그랬던지, 
느닷없이 노무현의 초상이 떠올랐다.

그러니까 노무현과 지질이도 억눌린 인간들이
서로 별반 다를 것도 없는 인간들 피빨다가 그만 죽기로 결정한 듯 한 그런 슬픈 이야기가 겹쳐졌달까? 
내 눈에는 자꾸 눈먼 휠체어 탄 신부는 김대중이고... 송강호는 노무현이라고 보이던데...
내가 생각해도 그렇게 떠오른 이미지가 좀 묘하긴 하다.

어쨌든 뭔가 과잉이 느껴지는 영화다. 이 영화. 그만큼 상투적인 듯. 
박찬욱 분발 좀 하시지.
박찬호는 하더만!

2009년 11월 25일 수요일

NC State Fair 2009 #9: World's Smallest Woman

인간들은 부끄러움을 모른다. 돈을 위해서라면.

State Fair 를 대충 다 둘러 본 후 잠깐 커피를 마시며 앉아 있는데, 그 앞에 사람들로 북적이는 전시관이 있었다.

"살아있는" 세계에서 가장 작은 여인. 29인치! 

커피를 쏟을 뻔 했다. 사람을 구경꺼리로 만드는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고 하지만, 나름 "교육적"인 내용을 담기 위해 노력했다는 주정부가 주관한 State Fair 에 "작은 여인"을 전시물로 내세워 돈벌이를 하게 하는 것은 도대체 이해 할 수가 없었다.

한 가족단위 관람객은 대표로 아이 한명에게 50센트를 줘서 보고 오게 하더니 아빠, 엄마도 덩달아 가서 보고 나온다. 보고 나온 사람들의 표정에서는 그로테스크한 무언가를 보고 나왔다는 근육경직이 엿보였고, 어린아이들은 "살아있어 정말로!"를 외치며 뛰어 나오기도 했다.

도대체 사람들은 무엇을 50센트와 교환하고 있는 것일까?

한국에서 논란을 불러 일으켰던 "루저"기준에도 한참이 모자란, 29인치 인간을 보면서 자신들의 "정상성"을 다시 한번 검증 받고 싶어했을까?

하루종일 저 칸만이 안에 앉아 낯선이들의 시선을 받고 있을 여인은 무엇을 "팔고" 있는 것일까?

"만약 살아 있지 않으면, $ 10,000 를 주겠다!"

2007년 9월 더램의 가장 큰 쇼핑센터인 South Point Mall 에서는 The Bodies..전시가 열렸었다.
사람들의 시체를 이용 "인체의 신비"를 보여준다는 그 전시는 전세계에 뜨거운 윤리적 논란을 일으켰던 것은 알려진 바이다. 

그때 듀크대학의 문화인류학과 교수들이 직접 나서서 "전시 반대 시위"를 조직했었다.
출처: Duke Human Rights Center
듀크대학 문화인류학과의 Orin Starn 교수(현 학과장)이 시위를 막는 경찰과 대화중. 이후 검거됐다.

인간의 몸을 (그것이 죽은 것이던 산 것이던) 가지고 이윤을 만들어내는 전시를 중단할 것을 전시회 매표소 앞에서 요구했는데, 미국의 집시법(영업방해)에 따라 연행되는 사태까지 이르렀다. (한국의 교수들 그 누구가 직접행동에 나섰는지 좀 궁금해졌다.)

나는 그때 함께 하지 못 했지만, 두고두고 이일은 내 머리속에 남아 있다.
페루에서는 유럽의 연구소(주로 화장품회사들로 추정되는)에 납품할 지방을 채취하기 위해서 산사람을 죽이는 일이 있었다고 하고 (기사보기), 장기매매를 위해 사람을 납치한다는 말이 뜬소문이 아닌 세상이 된 오늘날 "인체의 신비전"은 결국 돈이 될만한 신비함이 인체에 있음을 재발견 하는 전시였던 것 아닐까?

별다른 논쟁없이 "성황리"에 이루어졌던 한국에서의 "인체신비전".
일본 제국주의가 한국인들과 중국인들을 상대로 생체실험을 자행했던 731 부대를 "항일 독립군"으로 기억하는 대학 총장출신 총리가 있는 한국이 생각나 씁쓸해진다.  

그러니 벌써 몇달째 냉동고에 보관된 용산참사 희생자들의 시신을,  
얼렁뚱땅 "파묻어" 버리고 싶은 "폭도들의 몸" 보듯 하는가도 싶고.... 


NC State Fair 2009 #8: Churky 는 아니지만...

NC State Fair 2009 #7: Village of Yesteryear

State Fair 전시 프로그램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옛날 마을"

노스캐롤라이나 지역에서 남북전쟁 이전 부터 지속된 "남부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장이었다.
75명의 "전통 장인" (우리로 치면 무형문화재들인가?)들이 부스를 열고 직접 공연하거나 세공을 시범해 보였다.

"초원의 집"이 갈비집 이름이 아닌 다른 것이기도 하다고 느끼는 한국 사람들에게도 나름 추억의 장소. 

악기를 만드는 가족이 직접 노래를 불렀다. 아버지와 딸들 이었던 듯.
가장 오른쪽 꼬마는 음색이 참 고왔는데, 나중에 한국의 "예솔이" 처럼 성장했으면 하는 바램.


살면서 해본 것이라곤 "스킬 자수"밖에 없는 남정네에게는
그저 바느질로 보였던 Quilt (맞나?) 하는 아주머니.


"할머니 인형" 만드는 할머니
할머니 인형과는 다르게 할머니는 피곤해 뵈셨다.


보석 및 금속 세공 아저씨.
가죽 앞치마가 정말 멋졌다. 돋보기는 최신 모델인 듯.


금속 공예하는 할아버지 할머니 부부
갑자기 나도 저런 공예하나 배워서 노년을 보내고 싶다는 생각이 잠깐.

금속 세공의 세계에는 대장장이 부터 굳어진 남성성의 포스가 쫘악~

"미싱은 돌고 도네 돌아가네~"

우리 어머니도 저런 미싱을 가지고 계셨는데.
어렸을 적 이사를 다니면서 끝내 고물상에 넘겨버렸던 듯.
사진에는 짤렸지만, 패달로 작동하는 미싱이다.
어렸을 적 어머니 몰래 패달을 밟고 미싱이 돌아가는 소리를 들을 때면 오르간을 연주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었다.

NC State Fair 2009 #6: Canival

물총을 정해진 시간동안 표적에 맞춰 인형을 높이 올리는 사람이 상품을 타가는 "야바위"성 게임.
이젠 지구상 어디서든 보이는 총쏴서 넘어뜨리기, 풍선터트리기, 고리걸기, 공으로 탑 쓰러트리기도 있었다.
중국산 봉제 인형들이 선사하는 기쁨의 축제랄까.
줄은 인형이 타고 돈은 사람이 현찰로 챙기는 근대적 카니발이다.

 

전에 Carrboro Music Festival 때도 그렇고 이 State Fair 에도 그렇고 이 "훌라후프" 쇼는 어떤 의미가 있는지 잘 이해가 안가는 것 같다. 그나마 얼마전 결혼했다는 이 "부부" 훌라후프 쇼단은 자기들 후프가 중국산 싸구려 후프와는 비교가 안될 만한 내구성과 "실용성"이 있다고 광고를 하면서 팔기도 했다. 날씨가 추워서 "후프언니"의 옷차림이 상당히 안쓰러웠던 듯. 남편이란 사람은 털모자에 조끼도 입고 있던데 말이지...

2009년 11월 24일 화요일

NC State Fair 2009 #5

실제 말들(조랑말인가?)이 묶여서 빙글 빙글 돌고 있었다.
"회전마"라고 해야하나? 말 "목"에 사슬이 걸려있으니..

누가 타나 했더니 역시나 꼬마들의 몫: 코가 딸기코가 되어 아빠를 찾았던 듯.
지역 방송에 올해 등장한 신종 놀이 기구라고 선전을 했던 미끄럼틀 기구.
별로 재밌어 보이진 않던데. 늙어서 시니컬해진 걸까?
 

한국의 상설 놀이 공원에도 있을 법한 놀이기구.
다른 점이 있다면 이 놀이기구는 "이동 설치"식이라서 뭔가 좀 불안해 보였달까?
한국의 해수욕장 같은데서 가끔 보는 그런 놀이 기구들 처럼.


2009년 11월 22일 일요일

NC State Fair 2009 #4 : Agri-Culture

도시에 사는 아이들에게 직접 "농업"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도 있었다.

Fair Ground 한켠에 노스캐롤라이나에서 생산되는 각종 농작물들을 길을 따라 걸으며 직접 보고 느낄 수 있도록 가꾸어 놓은 곳이 있었다. 날씨가 추워서 다 시들거나 했다는 점을 제외하면 나같은 사람에게도 제법 "공부"가 되는 농작물 전시였다.

전시 프로그램의 하나였던, 지극히 미국적이고 자본주의적인 방식으로 기획된 "교육" 프로그램은 특히 눈길을 끌었다.
유아들에게 입구에서 바구니를 하나 쥐어주고, 각종 농산물들을 바구니에 담게 한 후 전시장 끝에서 무게를 달거나 갯수를 셈해 "수확한" 농산물의 합이 얼마인지를 알려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물론 수확물을 가져갈 수도 없고 모든 과정은 말그대로 "게임"이었지만, "부자 농민"의 꿈을 심어주는데는 부족함이 없었던 것 같다.

목화꽃이던가? 처음 봤다. 미 남부 흑인들에게는 눈물의 꽃일 수도 있을 듯.



담뱃잎
긴 흡연인생에 말리기전 담뱃잎을 보는 것도 처음. 역시 NC의 특산품 중의 하나.

"브로콜리 You Too"
사실 브로콜리는 마트에서 자주 봤다. 그냥 밴드 생각에 찍었던 듯.


농산품 경연대회에 출품된 사과들


농산품 경연대회에 출품되어 입상한 호박들.


이것도 상탄 "박"들이었나? 조롱박이었던 것도 같은데 기억이 잘 안난다.

터키. 조만간 전 미국에서 집단 학살(Thanksgiving Dinner 용으로)이 이루어질 운명의 터키들이다. 난 사실 조류들 안 좋아하는데, 터키도 예외는 아니다.


한쪽에는 터키 우리가 있고 그 한켠엔 "터키 햄"을 먹자는 광고판이. 묘한 호러 광고전략이다.
심지어 바로 옆에서 터키햄을 기름에 튀겨서 시식행사를 하고 있었다.


쿠킹 호일에 뭔가를 싸서 물어 뜯고 다니는 애들이 있어서 뭔가 했더니 바로 이것, 터키 다리 바베큐다.
닭 다리 열개 정도보다도 커보이는 이 터키 다리는 State Fair 에서 가장 인기 있는 음식 중에 하나였다.
근데 터키 몸통들은 다 햄만드는 공장으로 보내진 걸까?

NC State Fair 2009 #3

이동식 놀이기구 치곤 참 "옹삭한" 구조물이다. 물도 새나 본데.
대야에 물받아 수영하는 느낌과 비슷한 것도 같고. 


"Bacon Dipped in Chocolate"
돼지고기를 초컬릿에 담가 핱아 먹는 독특한 식성을 가진 미국 남부인들이다.
"돼지야 널 핱아 먹을 기회를 줘서 고마워~" 으~~

실내에서 찍다보니 지나치게 아웃 포커싱이 되었지만.
이건 사과에 초컬릿 옷을 입히고 그 위로 또 크림 사탕등등을 뿌려 먹는 음식.
"설탕과 권력"이란 책을 보면 "단 것" 먹기 위해서 전쟁도 불사했던 사람들이니까 그 중독성을 이해할 만도 하지만 난 보기만 해도 신물 넘어 왔다.
그러고 보니 반대편엔 소금을 위해 여아들을 팔아치운 아시아도 있군.


Funnel Cake

State Fair 간다니까 한번 갔다온 대학원생이 꼭 먹어보라고 강추하던 음식이 이 "꽈배기"다. 한국의 튀김집에서 고구마 감자튀김 만들다 떨어져 나간 조각들과 맛이 똑같았는데, 그 위에 "스위트너"를 뿌린다고 달라 질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런 걸 돈주고 사먹는 식문화라니! 가끔 미국사람들이 불쌍할 때가 있다.
그나저나 이걸 왜 사먹으라고 했던 거지? 싸구려 와인에 쩔어있는 데다가, 아무것도 못 먹은 내 배 속을 부글부를 끓게 했던 음식. 죽기전엔 다시 돈 주고 안사먹을 듯.

"군대 가세요."

미국의 쇼핑 몰들에도 있지만, 입영을 권유하는 부스가 여기도 설치되어 있었다. 남자들만 군대가는 미국이 아닌데도 여전히 남자들 위주로 입영 광고를 하는 것은 군대의 폭력성이 지극히 남성적인 것이란 이야기겠지. 군대가면 저 빨간 Hummer 를 준다고 한다면 나도 좀 흔들리게 될까?
난 "재입영"인데...


신종플루가 여기도 유행이지만, 이건 품귀현상을 빚고 있다는 신종플루 예방 백신이 아니라 그냥 독감 예방 주사. 놀이동산에 와서 감기 예방 주사도 맞는다는 "원스탑"서비스의 기획 의도가 좀 이해가 잘 안되지만 뭐 모든게 가능한 미국이래지 않는가? 


NC State Fair 2009 #2: Cars that matter.

광활한 State Fair Ground 를 오고가는 트랙터 셔틀 자동차.
농기계를 이용한 아이디어가 색달라 보였다.


신형 스쿨버스를 소개하는 전시.

아이들의 안전에 보다 많은 신경을 쓴 신형 모델이랬던 것 같다.
저런 스쿨버스는 천장에도 쿠션이 있다. 전복 사고시 충격완화를 위한 것이라고 한다.
미국에서 스쿨버스 사고가 일어날 때마다 스쿨버스 자체의 안전성에 대한 대대적인 논쟁이 있다.
학생들에게 안전밸트를 채우니 마느니, 의자에 안전밸트를 설치할 예산에 세금을 쓰네 마네 하는....

공립학교 등하교용으로 이용되는 "안전한" 스쿨버스를 물끄러미 바라 보다가, 잠시 만원버스 지하철에 고생하는 한국의 초중고생들의 얼굴이 떠올라 씁쓸해졌다. 차없는 부모 아침 일찍 일나가는 부모를 둔 학생들의 어깨는 학교 가는길에 이미 쳐져 있는 한국인데... 

그러고 보니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에도 스쿨버스가 있었다. 옆학교 스쿨버스 전복사고로 몇명의 학생이 죽고 보상문제로 시끄러워진 다음에 없어졌던가 그랬는데...

그 색깔이 "군내버스"와 똑 같아서 시골로 향하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무심코 차에 오르는 웃지 못 할 일들이 항상 벌어졌었다. 한번은 학교 스쿨버스로 지리산에 수련회를 가는데, 한시간에 한대나 올까 말까 한 군대버스가 자신을 무시하고 지나쳤다고 생각한 아저씨가 차 뒤를 따라 달음박질을 하기도 했던 듯. 실상 그때 우리 학교 스쿨버스는 군내 버스와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낡은 차였는데, 자꾸 멈춰 서는 바람에 "집단 지각"사태를 만드는 근거가 되곤 했다. 학생주임은 여러 지각생들 중에서 "O호차 타고 오다 늦은 학생"과 그렇지 않은 지각생을 구별해 내야 하는 문제에 봉착하기도 했었다. 

인근 남자 고등학교 스쿨버스와 신호대기 중에 서로 창문열고 침뱉고 욕하며 싸우다 결국 두 학교간 집단 패싸움으로 번진 사건도 있었고, 선배들한테 자리 양보 안했다고 끌려가 맞는 애들도 있었고.

1931년의 스쿨버스였단다. 그땐 학교 다니는 학생이 그리 많지 않았던듯. 하긴 흑인들은 그때 까지 백인과 쉽게 "겸상"하며 공부할 수 없었으니까.


NC 경찰서에서 준비한 "교통안전 캠페인" 광고물
"140 명의 노스캐롤라이나의 십대들이 집에 돌아올 수 없었다.
이 자리를 네 (차-집) 열쇠가 걸리는 마지막 장소가 되게 하지 말라!
살기 위해 운전하라!"

섬뜩한 내용이다. 교통사고 사망자 유품 전시를 과감히 하는 미국식 호러 공익 광고랄까.. 

2009년 11월 20일 금요일

어느 신문기사가 주는 씁쓸함.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고 했지만,
이름만 들어도 기분이 나빠지는 사람이 내 인생에 없는 것은 아니다.
대체로 그런 사람들은 이름 석자와 더불어 떨어지지 않는 어떤 나쁜 기억들이 있고,
이 세상에서 여전히 반성할 줄 모르고 "잘 나가는" 인생들이다.
피끓게 하거나 가래 끓게 하는.. 그런 인생...

기사 하나를 읽었다.
내가 다녔던 학교에서 임권택 감독에게 명예 졸업장을 줬단다.

임권택 감독 58년만의 명예졸업장


별로 놀라운 것은 없었다. 내가 그 학교를 다닐 때
이미 임권택 감독이 한때 내가 다니던 학교에 다녔던 사람임을 알고 있었으니까.
다만 난 그가 졸업을 못 했었는지는 몰랐다.
졸업시즌도 아닌 이때 명예 졸업장 수여식을 한 게 좀 난데 없긴 하지만 한국영화사에 큰 획을 그은 임권택 감독이니 명예 졸업장을 준다고 해서 뭐가 문제 될 것은 없으니 말이다.

한데.. 아..
내 개인사적으로는 임권택 감독 보다는 1000배는 가까운 낯익은 이름 하나가 보였다.
임권택 감독에게 명예 졸업장을 수여한 교장선생의 이름.

이게 누구신가?
내가 학교 다니던 시절, 폭력 교사로 이름을 떨치던 그가 "교장"이 되셨나 보다.
기술 과목을 가르쳤던가? 공업이던가? 그 시기엔?
하나의 시험이 끝날 때 마다 그 반 학생들은 엉덩이 실핏줄이 터져 팬티가 안떨어질 정도로 맞았다는 소문이 횡행했고, 그의 수업시간에는 언제나 교실 공기를 팽팽하게 만드는 살기로 가득찼다.
다행인 것은 그가 국/영/수 교사가 아니어서 일주일에 한 두번만 만나면 되는 사람이었달까?

학교 일보다는 집안에서 운영한다던 타월 회사에 관심이 많다는 이야기가 떠돌았었고,
학교 행사에 자기가 관계하는 회사 물품을 납품한다는 소문도 있었고...

그래도 교회에서는 무슨 장로가 되서 학생들을 교회에 나오라고 닥달하던 그런 선생이었는데,
내 모교의 교장이시란다. 지금..

사립고등학교 그것도 "미션스쿨"이라는 교회재단 학교의 교장이 애초에 무슨 "훌륭한 스승"들이 되는 자리가 아니라는 것은 모르는 바 아니지만,
성추행 교사가 교육감되고 교육위원되고, 폭력교사, 비리교사가 교장되고 하는,
이런 악순환은 대체 언제나 끝날 수 있는 지 모르겠다..

그래 다 내 책임이다. 고등학교때 좀 더 확실하게 움직였어야 했는데!!

1991년 6월 폭력교사 추방 학내 민주화 쟁취 투쟁을 좀 더 치열하게 전개 했었더라면 그가 교장은 되지 못 했을까?

낯익은 이름 하다가 나를 다시 고등학교의 "피끓는" 시간으로 이끈다.

금요일 오후 카페

학교를 갈까 하다가,
주차하고 걸어가는 것도 귀찮고, 날씨도 좋고 해서 집근처 카페에 와서 책이나 읽어볼까 하고 왔는데,
금요일 오후 미국 아줌마들이 다들 마실 나오셨나 보다.

아. 옆 자리 아줌마는 느닷없이 숨을 헐떡거리며 소리를 지르는데,
영화 "When Harry met Sally"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아.. 역시 카페에서 책읽기도 쉬운 일은 아니다.
뭐 도서관은 아니니까...뭐라고 할 수도 없고....

NC State Fair 2009 #1

North Carolina 의Raleigh 에서는 1853년 이래로 매년 State Fair 가 열린다 (남북 전쟁기간, "농업사회"가 해체 되었을 때, 제 2차 세계대전 동안에는 중단되었다고).

원래 NC의 농부들이 한해 수확한 농산물들을 서로 비교 하고 새로운 농기계나 농법들을 배우기도 하는 교류와 축제의 장이었던 모양인데, 최근 들어서는 별다른 상설 놀이공원이 없는 이 지역에서 그나마 놀이기구들을 탈 수 있는 카니발로써 성격이 더 강해졌다고 한다.

학교에서 입장권을 싸게 팔아서 한달전에 (귀차니즘도 역시 트랜스-내셔널 하고 글로벌하다) 다녀왔다.

주차비를 $5나 내다니 여기가 무슨 뉴욕도 아니고!
Fair Ground 에 들어서자 마자 찍은 사진. 9번 게이트였었나?
알고보니 저런 놀이 기구가 이곳 저곳에.



천막안에서 댄스 경연대회를 하고 있었는데, 참가 번호를 보니까 대단한 성황을 이루었던 듯.
여성과 남성들이 따로 따로 조별로 올라와서 탭댄스 비슷한 춤을
남부 컨트리 음악에 맞춰 30초정도씩 추고 들어갔다.
그러고 보니 컨트리 음악의 거성 Randy Travis 도 North Carolina 출신이었다는게 기억이 나네.

꼬마들도 참가를. 공연을 보지는 못했다.
한나절에 다 돌아보기는 Fair Ground 가 너무 광활해서..


아저씨들은 참여가 저조 했던 듯. 참가번호가 100대 미만이다.
못 볼 것을 본 느낌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바삐 걸음을 옮겨야 했다.
전날 술을 마셔선지 컨디션도 영 아니었고 날씨는 정말 무지하게 추웠던 듯..




2009년 11월 18일 수요일

아침 밥

아침에 일찍 일어났는데도,
밥을 안먹고 멍하니 앉아,
"꼬르륵 꼬르륵"을 뱃가죽을 접어 압박하고 있을 때는,
 
하루의 시작을 유예하고 싶은
어떤 욕망이 관계하고 있는 것도 같다.

한데 말이지 이젠 정말 너무 배고프다.

2009년 11월 17일 화요일

미국에 세번째로 많다는 한국 국적의 학생들.

네이버 초기 화면에 "한국학생 미국에서 세번째"라는 낚시글이 떴다.
저급한 낚시글들은 삐끼체와 이주일체의 무단 도용이다.

"형님~ 일단 한번 읽어보시라니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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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미국에서 통계가 나왔다. 외국의 유학생 현황 그리고 자국학생들의 해외 유학 실태에 관한.

미국내 외국 학생들 중에 한국학생들은 "쪽수"로 당당히(!) 3위를 했다.
작년보다 9% 증가 했으니, 한국의 경제성장률보다는 확실히 높다. (일본은 14%가 줄었다.)

3위와 4위간의 격차가 이렇게 크기도 쉽지가 않다. 우리가 캐나다를 제쳤다고 좋아해야하나?

한국 사람들은 별 관심 없을 수도 있겠지만,
인도, 중국, 일본에는 미국 학생들도 공부하러 많이 가는가 보다.

반면 한국에는 대체로 미국학생들이 영어선생으로 돈벌러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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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opendoors.iienetwork.org/

* 미국내 유학생 현황

India is the leading place of origin for international students in the United States with 103,260 in 2008/09 (an increase of 9% from the previous year), followed by #2 China (98,510, up 21%) #3 South Korea (75,065, up 9%), #4 Canada (29,697, up 2%), #5 Japan (29,264, down 14%), #6 Taiwan (28,065, down 3%), #7 Mexico (14,850, up 0.1%), #8 Turkey (13,263, up 10%), #9 Vietnam (12,823, up 46%), #10 Saudi Arabia (12,661, up 28%), #11 Nepal (11,581, up 30%), #12 Germany (9,679, up 9%), #13 Brazil (8,767, up 16%), #14 Thailand (8,736, down 3%), #15 United Kingdom (8,701, up 4%), #16 Hong Kong (8,329, up 1%) #17 Indonesia (7,509, down 2%), #18 France (7,421, up 5%), #19 Colombia (7,013, up 5%), #20 Nigeria (6,256, up 1%), #21 Malaysia (5,942, up 10%), #22 Kenya (5,877, up 1%), #23 Pakistan (5,298, down 1%), #24 Russia (4,908, up 0%), and #25 Venezuela (4,678, up 5%).


* 미국학생의 해외 유학 현황

The United Kingdom was once again the most popular destination, with a total of 33,333 students (an increase of 2%). Italy is second, with a strong 10% increase to 30,670 students; followed by #3 Spain (25,212 up 5%), #4 France (17,336, up 0.6%), and #5 China (13,165, up 19%). Other destinations in the top 25 were: #6 Australia (11,042, up 3%), #7 Mexico (9,928, up 5%), #8 Germany (8,253, up 12%), #9 Ireland (6,881, up 19%), #10 Costa Rica (6,096, up 13 %), #11 Japan (5,710, up 14%), #12 Argentina (4,109 up 14%), #13 Greece (3,847, up 13%), #14 South Africa (3,700, up 15%), #15 Czech Republic (3,417, up 9%), #16 Austria (3,356, up 19%), #17 India (3,146 up 20%), #18 Ecuador (2,814, no change) #19, Chile (2,739 down 3%), #20 Brazil (2,723 up 8%), #21 New Zealand (2,629, down 3%), #22 Israel (2,322 up 4%), #23 Netherlands (2,038, down 5%), #24 Switzerland (1,942, up 10%), and #25 Russia (1,857, up 8%).

2009년 11월 11일 수요일

관계의 흔적, 이야기의 주름

Oct. 2. Surf City, NC

그녀/그가 말했다.
실상 둘은 그 사건에서는 하나였으므로 그녀의 이야기 속에서는 그가,
그의 이갸기 속에서는 그녀가 말하고 표정지으며 나를 향하고 있었다. 
음소거의 상태인 것들의 부산함.  

하여 내가 들은 그녀/그의 그녀-그의 이야기는,
비록 한사람이 내게 들려준 것이었지만 이미 다채널로 녹음
혹은 기억된 것이었다.

내가 그것을 재생 할 때,
채널들의 발랜스를 맞추거나 이큘라이저를 조작하거나 하는 것은 순전히 나의 몫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가끔은 그녀/그가 들려준 것이었으나
그녀/그의 목소리는 지워지거나 희미해지기도 하고,
그녀/그에 의해 지워지거나 늘어진 소리들이
환청 대역에서 라이브로 들려오기도 한다.

내가 굳이
타인들 사이의 관계가 써내려간 자전적 이야기들 속에 깃든
그 무음과 잡음의 세계로 "탐험"을 떠날 때는,
대체로  화자들이 그녀/그사이의 사건에 대해 언급하면서
"잘 들어", "놀라지 마", "화내지 마" 등등의 "최적환경"을 미리 제안하거나, 
"솔직히" "사실을 말하자면"과 같은 말로 베이스를 극대화 한 채,
"MONO-logue" 로 말할 때다. 

그럴 때면 대체로,
나는 내 귀나 머리 혹은 가슴을 세팅하기 보다는,
얼굴 근육을 긴장시켜 표정관리 준비를 하는데 더 급급해 질 뿐이다.

하지만 때론,
사랑의 거친 파도 혹은 지하수로 흘러 든 뜨거움이,
단단한 바위 위에 주름을 만들고,
어느날 지나가는 물소리에
때론 흘러가는 바람소리를 붙잡고
주름선들을 튕겨 이야기를 들려줄 때는 
그 독특한 음색에 몰입하게 되는 어떤 경향이 있다.

타인들의 사랑은 나의 그것 보다 항상 경외롭다.

그래서일까?
어떤이는 그 공명소리에 화들짝 놀라 뒷걸음질 치기도 하고,
어떤이는 귓구멍을 후비며 딴청을 부리거나,
숨소리를 죽이며 경건한 체 하고..
또 편집증적인 어떤이는 "스크랩"을 하거나,
실시간 디지털 인코딩으로 머리라는 외부 기억장치나 가슴이란 메인보드에 분산 저장하기도 하고..

하고. 하고. 하고...
하지 않고..않고..않고..
않해야 하고.. 하고.. 하고..
하고 싶고 싶고 싶고..
...

그렇게
타인의 이야기가 만들어낸 주름을 스스로에게 쓴다.

2009년 11월 10일 화요일

아침 일찍 등교

얼마만일까?

아침 일찍 학교에 나와야 했던 날들을 제외하고서,
내가 "헐레벌떡"하지 않고, 유유자적 셔틀의 창밖으로 보이는 나무들을 물끄러미 쳐다본다던가 부슬부슬 내리는 가을비를 정겹다고 느낀다던가 하면서 아침을 시작한 것은?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도서관에 나와 앉아있으면서 벌써 한시간이 넘게 인터넷 서핑만 하고 있다.

나가서 담배나 하나 피우고 들어와 이젠 뭔가 시작해 봐야 겠다.



2009년 11월 9일 월요일

"You calling me colored."

인터넷을 돌아다니다가 본 "UN이 뽑은 최고의 어린이 시."
어느 "흑인" 아이가 썼단다.

그나마 한국에서 "살색"이 "살구색"이 되어서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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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날 때 내 피부는 검은색

When I born, I Black

자라서도 검은색
When I grow up, I Black

태양 아래 있어도 검은색
When I go in sun, I Black

무서울 때도 검은색
When I scared, I Black

아플 때도 검은색
When I sick, I Black

죽을 때도 나는 여전히 검은색이죠.
And When I die, I still Black

그러데 백인들은
And You, White fellow

태어날 때는 분홍색
When you born, you Pink

자라서는 흰색
When you grow up, you White

태양 아래 있으면 빨간색
When you in sun, you Red

추우면 파란색
When you cold, you Blue

무서울 때는 노란색
When you scared, you Yellow

아플 때는 녹색이 되었다가
When you sick, you Green

또 죽을 때는 회색으로 변하잖아요.
And When you die, you Gray

그런데 백인들은 왜 나를 유색인종이라 하나요?
And you calling me Colored?

2009년 11월 8일 일요일

전투축구의 유산?- 미 대학 여자 축구팀 선수의 "거친 플레이"


미국 뉴멕코대학의 여자축구팀선수가 "거친 플레이" 때문에 출장 정지를 먹었단다.
뭐 내가 축구"하기"를 싫어하는 이유도 경기중에 감정을 조절하기 힘든 운동이라는 느낌 때문이었는데,
어린 여대생의 플레이가 한편에서 이해 되면서도 "오금이 저린다."